주간동아 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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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로 잡힌 사람들의 급변하는 삶

  • 손주연 자유기고가

    입력2007-07-16 09: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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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질로 잡힌 사람들의 급변하는 삶
    ‘나인(The Nine)’은 ‘스톡홀름 증후군’을 소재로 한 13부작 미스터리 드라마로, 우리나라에서는 6월25일 XTM을 통해 처음 방송됐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일어났던 인질극에서 유래한 범죄심리학 용어로, 인질범과 인질 사이에 정서적 유대감이 형성되는 정신분석학적 현상을 뜻한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이 “인질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공포감 때문에 범인에게 동요되는 현상”이라면서 “인질사건에 휘말리게 된 인질간에 특수한 관계가 형성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한다. 즉 인질로 잡혀 있다 풀려나도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케이블 채널 ABC에서 2006년 10월 방송된 ‘나인’은 인질로 잡혔던 경험이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 점이 ‘나인’이 주인공들을 인질로 잡아뒀던 사건 자체가 아닌, 사건 이후 그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다. 그래서 ‘나인’은 인질극을 기본 소재로 하면서도 사건 당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최대한 말을 아낀다. 이는 도입부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드라마는 자신에게 닥칠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고 은행에 모여드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긴박하게 그려내다가 절정에 이르러 인질극이 종료된 한참 뒤의 시점으로 화면을 바꿔버린다.

    유명 정치드라마 ‘웨스트 윙’을 연출한 알렉스 그레이브스가 감독을 맡은 ‘나인’은 인질극의 긴박감을 포기한 대신 인질사건을 겪은 등장인물들의 삶이 어떤 식으로 바뀌었는지를 세밀하게 조명한다. 인질로 붙잡혔다가 53시간 만에 풀려난 사람들은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다정한 연인이던 커플은 소원해지고, 비관적인 인생을 살던 사람은 자신감 넘치는 영웅이 되는가 하면, 인질로 함께 잡혔던 사람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인질로 만나기 전까지는 서로를 잘 알지 못했던 9명의 주인공은 인질 당시의 상황이 빚어낸 강력한 유대감으로 서로에게 큰 영향을 주고받게 된 것이다.

    ‘나인’이 ‘웰 메이드 미스터리 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주인공들의 평범한 삶에 카메라를 비추면서, 인질극이 그들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줬음을 암시하는 오브제들을 곳곳에 배치해 궁금증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특별한 사건을 겪은 이들에게 미스터리한 일들이 일어남에도 그 원인이 되는 사건 전말은 철저히 숨기는 ‘나인’의 방식은 ABC의 또 다른 인기 드라마 ‘로스트’를 연상시킨다.

    7월10일에는 은행강도 사건 뒤 연인 제레미(스콧 울프 분)와 소원해진 리즈가 루카스(오웨인 에오먼 분)와 인질사건 사이에 모종의 연관이 있다고 폭로함으로써 파란이 예상되는 여섯 번째 에피소드 ‘Take me instead’가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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