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5

2006.12.19

‘된장찌개’ 기준 통일될 날 오려나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발해농원 대표 ceo@bohaifarm.com

    입력2006-12-13 17: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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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된장찌개’ 기준 통일될 날 오려나

    된장찌개

    처음 가는 음식점에서 나는 차림표를 들고 꼬치꼬치 묻는 버릇이 있다. 만둣국이라면 “육수는 뭘로 내나요? 북한식인가요? 피는 어느 정도 얇은가요? 부추는 넣나요?” 등을 묻는다. 동행자가 있다면 속으로 이렇게 비웃을 수도 있다. “그래, 맛 칼럼니스트다 이거지? 차라리 부추는 몇 센티미터로 잘라서 넣고, 피는 두툼하게, 육수는 진한 사골국물로 팔팔 끓여주세요라고 주문하지 그러냐? 아니, 그냥 갖다 주는 대로 먹을 일이지.”

    그럴듯한 레스토랑이 아닌 평범한 음식점에서는 이 못난 버릇을 나도 버리고 싶다. 그러나 차림표만 봐서는 내가 주문한 음식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가 없어서 자꾸 묻게 된다.

    음식에 이름 붙이는 원칙은 주재료, 조리법, 완성된 모양새, 먹는 방법 등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원칙일 뿐이다. 수많은 변칙 음식 이름이 있고, 또 음식 작명 원칙에 따른 이름이라도 부재료와 변형된 조리법 등으로 이름과 실재에 큰 차이를 보이는 일이 허다하다.

    주문한 음식 예측 가능해야 제대로 된 식당

    ‘된장찌개’라는 음식 이름은 ‘된장’이라는 주재료와 ‘국물을 적게 넣고 바특하게 끓인 음식’이라는 조리법이 설명되어 있어 음식 작명 원칙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먹는 된장찌개는 ‘된장찌개’라는 주재료+조리법으로는 모두 표현되지 않는다. 그래서 좀더 친절한 해물된장찌개, 버섯된장찌개, 된장뚝배기라는 이름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된장찌개는 거의 모든 음식점에서 취급한다. 그래서 된장찌개를 시켰는데 김치찌개가 나오지 않는 한, 해물이 들어갔든 냉이가 들어갔든, 뚝배기에 담겨 나오든 냄비에 담겨 나오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문제는 같은 이름의 음식이라 해도 그 음식으로 즐길 수 있는 맛의 요소들이 완전히 다른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매콤새콤 비벼 먹는 냉면과 시원 담백하게 말아 먹는 냉면, 구수한 된장이 기본이 되는 전라도식 추어탕과 육개장처럼 양지머리가 기본인 서울식 추어탕이 좋은 예다. 또 김치와 돼지고기 맛의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북한식 만두가 있는가 하면, 시원한 배추나 부추 맛을 강조하는 만두가 있고 각종 고기를 맛의 중심에 두는 만두도 있다. 비빔밥도 익힌 나물로 비비느냐 생채로 비비느냐에 따라 추구하는 맛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런데 식당들은 차림표에 이를 친절하게 설명해놓지 않는다.

    서울살이 초창기 때 일이다. 경상도식 추어탕밖에 모르고 살다가 서울에서 아주 유명한 추어탕을 먹으러 갔다. 첫 숟가락에 속이 울렁거렸다. 완전히 기대 밖의 맛이 났기 때문이다. 미꾸라지 맛이라곤 전혀 없이 쇠고기 국물 맛이 확 나는 이 맹탕 같은 국의 정체가 뭔지 실로 난감했다. 그래서 주인을 불러 “이게 추어탕 맞냐”고 따졌다. 옆자리 손님들은 ‘이 맛있는 음식을 두고 왜 저러지?’라는 듯한 뚱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요즘도 간간이 식당 주인과 싸우는 일이 있는데 바로 냉면 때문이다. 차림표에는 분명 ‘평양냉면’이라고 적혔는데 면을 먹어보면 질긴 감자녹말로 된 집이 허다하다. 물냉면은 평양냉면, 비빔냉면은 함흥냉면이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평양식 냉면은 메밀로 면을 뽑고 여기에 찬 육수를 부으면 물냉면이 되고, 양념장을 넣고 비비면 비빔냉면이 되는 것이다. 함흥냉면은 감자녹말로 면을 뽑고, 마찬가지로 물냉면과 비빔냉면으로 구별한다. 그러니 처음 가는 식당에서는 냉면 하나도 이것저것 물어보고 주문할 수밖에 없다.

    비빔밥도 그렇다. 익힌 나물을 넣고 비비는 비빔밥과 생채를 넣고 비비는 비빔밥은 분명 다른데도 이를 구별해 파는 식당은 별로 없다. 설렁탕과 곰탕도 구별이 모호하며, 잔치국수도 멸치육수와 사골육수를 구분해놓지 않는다. 막회는 얇게 썰어 펼쳐놓기만 하는가 하면, 아예 채소와 함께 비벼 나오는 집도 있다.

    식당마다 내놓는 음식에 개성을 유지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손님이 주문하는 음식이 어떻게 나올지 예측할 수 있게 해주어야 제대로 음식을 하는 식당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아무리 작은 식당이라 해도 문 옆에 음식 모형을 진열해놓는데 이를 배웠으면 좋겠다. 그것이 어렵다면 차림표에 좀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면 좋지 않을까. 가령 이런 식이다. “된장국 : 바지락과 마른 새우로 낸 육수에 된장을 풀어 두부와 냉이를 올린 국”. 손님 주제에 요구사항이 너무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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