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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봐라! 기생들 납시오

TV 사극 ‘황진이’發 기생 신드롬 책·영화·뮤지컬 등으로 급속 확산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女봐라! 기생들 납시오

女봐라! 기생들 납시오

기생 신드롬을 대중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KBS 드라마 ‘황진이’의 하지원.

‘황진이 돌아오다.’ 서울 시내 대형서점에 나붙은 선전문구다. 황진이가 돌아온 곳은 20종에 가까운 기생 소재 서적이 나온 출판계뿐만이 아니다.

기생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하지원 주연의 KBS 드라마 ‘황진이’는 20% 안팎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수목 드라마 1위 자리를 굳혔다. 12월25일까지 유니버설 아트센터에서는 뮤지컬 ‘황진이’가 공연된다.

내년엔 송혜교가 주연하는 영화 ‘황진이’가 나오고, 김희선과 박지윤 주연의 MBC 드라마 ‘해어화’ 그리고 동명의 뮤지컬이 기생 트렌드를 업그레이드한다. 여기에 김동화의 인기 만화 ‘기생 이야기’도 에이콤에서 뮤지컬로 만든다.

시각적 자극 원하는 관객 욕구에 ‘딱’

“기생은 시각적 자극을 원하는 요즘 관객들의 취향에 딱 맞는 소재죠. 사랑, 전쟁 이야기를 기발하게 만드는 데도 한계가 있고, 요즘 관객들은 사랑 이야기도 아름다운 색, 화려한 비주얼로 만들어야 좋아해요. 기생이 대중문화의 인기 코드가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 듯해요.”(신병철·드라마 ‘해어화’ 제작자)



황진이의 인기를 먼저 예고한 것은 2002년 일본 호세이대학 가와무라 미나토 교수가 펴낸 ‘말하는 꽃, 기생’과 일련의 소설들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 소설가 홍석중의 소설 ‘황진이’가 남한에서 출간됐고, 김탁환의 소설 ‘나, 황진이’와 전경린의 ‘황진이’가 출간돼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가와무라 교수의 ‘말하는 꽃, 기생’이 풍부한 사료와 사진 등을 동원했음에도 기생을 ‘매춘’의 맥락에서 보는 한계를 지녔다면, 홍석중과 김탁환의 소설은 황진이로 대표되는 기생을 일종의 주변인적 지식인으로 변모시켜 대중의 의식 속에서 기생의 위상을 복원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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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형성된 기생의 이미지에 따르면(1918년 일제는 처음으로 조선의 기생들을 촬영, 관리한 리스트 ‘조선미인도감’을 만든다), 황진이는 재주는 있으되 문란한 여성에 불과했다. 그런 황진이가 최근 부각된 ‘기생 트렌드’를 통해 10년 동안 화담 서경덕의 문하를 지킨 철학자, 도교의 절대자유를 깨달은 인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황진이는 또한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자유연애와 계약결혼을 했으며 여행을 즐긴 근대 여성의 면모도 갖는다. “19세기 프랑스에 조르주 상드가 있었다면, 16세기 조선엔 황진이가 있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래서 홍석중과 김탁환 이전의 황진이가 ‘모든 남성의 영원한 연인’으로 드라마와 영화에서 반복됐다면, 지금 황진이와 기생들은 ‘현시대 여성들의 이상적 모델’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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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민 단이와 황진이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뮤지컬 ‘황진이’.

기생파와 반(反)기생파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는 여학생들은 이 같은 변화와 긴장을 반영한다. 네이버의 ‘황진이 공식카페’에서는 ‘오늘 황진이를 모욕하는 애들과 싸웠다’는 여학생들의 분개 글이 많이 올라온다. 불과 3, 4년 전만 해도 일반인들 사이에서 ‘기생을 역사적 인물로 존경한다’는 생각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에 비하면 기생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알 수 있다.

“요즘 여대생들에게 양반집 마님과 기생의 삶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놀랍게도 대부분 기생이라고 대답합니다. 남자를 선택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자 하는 욕망이 그만큼 크다는 뜻입니다. 바로 기생 캐릭터가 여성들에게 인기를 얻는 이유입니다.”(표은영·뮤지컬 ‘황진이’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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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은 일제의 식민 담론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주장을 담은 근대 연구서 ‘기생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뮤지컬 ‘황진이’는 ‘일부종사의 의무에서 벗어난’ 기생들의 자유를 노래하는 것으로 끝난다.

지난해 말 ‘기생전’을 연 서울옥션의 심미성 부장은 “생뚱맞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다. 하지만 기생 사진들은 ‘패션 화보’로 받아들여졌으며, 많은 관람객과 언론의 시선을 끌었다”고 말했다.

기생이 오늘날 문화 코드와 맞아떨어지는 또 다른 이유는 기생들이 의복에 대한 규제와 관습에서도 자유로운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멋을 만들어낸 ‘트렌드세터’였던 셈인데, 덕분에 기생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한복 디자이너들에게 일종의 ‘로망’이다.

드라마 ‘황진이’에서 의상을 담당한 한복 디자이너 김혜순 씨는 “‘황진이’의 의상을 맡아 더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했다. “한복 디자이너로서 최고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기생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나 뮤지컬에서 의상은 고증을 벗어나 비교적 자유롭게 디자인된다. 문헌에 없는 레이스가 나오고, 현대적인 ‘시스루’(투명한 천)와 전통 여성 한복에서 보기 드문 ‘블랙’(올 겨울의 유행 컬러)이 사극 의상의 트렌드가 됐다. 드라마 ‘해어화’의 최대 승부수는 의상, 그릇, 가구 등에서 보여줄 최고의 조선 ‘럭셔리’ 아이템이다.

문헌 속 황진이 캐릭터는 열정 지닌 현대적 여인상

소재 빈곤에 시달리는 제작자와 소설가들이 황진이의 캐릭터를 바꾼 것은 아닐까? 놀랍게도 문헌에 등장하는 황진이의 캐릭터는 그 자체로 매우 현대적이다. 홍석중의 소설에서 황진이는 ‘붙임성이 없고 늘 욕구불만에 모대기는 계집애, 자기가 처한 환경에 만족할 수 없어서 늘 ‘무엇’을 바라고 있으나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도 모르며 (중략) 늘 꿈속에서 살며 그 꿈에 대한 지향이 무서운 불길로 타오를 때는, 그 불길에 온몸을 맡겨버리는 위험한 열정을 지닌 계집애’다.

기생을 선뜻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를 기획한 남성 연출자와 프로듀서들이 뜻밖에도 깊고 복합적인 기생들의 세계 앞에서 수난을 겪고 있다는 제작 뒷이야기도 들려온다. 연출자들이 줄줄이 교체되기도 하고, ‘엎어질’ 위기를 겨우겨우 넘기고 있기도 하다. 한 스태프는 “최근 기생 드라마와 뮤지컬 스태프들 사이에 ‘황진이 징크스’란 말도 나온다”고 말했다. 황진이와 기생들, 그녀들은 지금도 결코 만만한 존재들이 아닌 것이다.



주간동아 2006.12.12 564호 (p56~57)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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