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4

2006.12.12

적 탄저균 공격 땐 7만명만 안전?

생물학무기에 완전 무방비 … 치명적 병원체 치료제 극소량 보유에 그쳐

  • 송홍근 기자 carrot@dong.com

    입력2006-12-06 13: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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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탄저균 공격 땐 7만명만 안전?
    D-3(한반도 전쟁 3일 전), 북한 특수8군단 소속 특수요원들이 경기 동두천시 미 2사단 주둔지에 접근했다. 가스마스크와 고무장갑을 착용한 이들은 부대 주변의 풍향을 정밀하게 관측했다. 이윽고 가방에서 생물학작용제가 들어 있는 금속제 통을 꺼내 마개를 연 뒤 야음 속으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이틀 후(D-1). 수천 명의 미군 병사들이 호흡곤란과 심한 기침, 고열을 일으키는 괴질에 걸리기 시작했다. 북한의 특수요원들이 바람에 날려 퍼뜨린 생물학작용제는 탄저(Anthrax). 한국은 이 공격으로 일대 혼란에 빠져들었으며, 탄저균에 노출된 미군 부대의 전투력은 50% 가량 감소됐다.

    미국 국방장관을 지낸 캐스퍼 와인버거가 저서 ‘넥스트 워(The Next War)’에서 언급한 가상의 시나리오다. 한반도는 이 시나리오의 묘사처럼 유사시 생물학무기가 실제로 사용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다. 문제는 생물학무기에 대한 한국군의 방어 능력이 미흡한 데다 민간인 보호 대책이 거의 전무하다는 데 있다.

    국방부, 北 병원체 13종 보유 추정

    9·11 테러 이후 국제정치에서는 비대칭전(Asymmetric Warfare)의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북한의 비대칭 전력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화학 및 생물학 무기다. 핵실험에 성공했다면 북한은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핵보유국이 된다. 더구나 북한은 2500∼5000t의 화학무기와 생물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재래식 군비경쟁을 계속하면서 꾸준히 비대칭 전력을 생산, 배치해왔다. 재래전으로는 그들의 일관된 군사 목표인 한국의 적화는 고사하고, 한국과 미국의 선진군사력에 대응해나가는 것조차 버겁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한미 군사력에 맞서는 균형자로서 북한이 핵과 생화학무기를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의 비대칭 전력 중 생물학무기는 세균무기의 개념이 확대된 것으로, 세균 바이러스 등으로 사람·가축·식물을 살상하거나 고사(枯死)시키는 무기를 말한다. 생물학무기는 국제법으로 사용이 금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1975년 3월 발효한 생물학무기협약은 개발·생산·저장까지도 금지하고 있다.

    국방부는 북한이 13종의 병원체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국방부 국회제출 자료). 탄저, 페스트, 콜레라, 세균성이질, 장티푸스, 야토병, 브루셀라, 발진티푸스, 황열, 유행성출혈열, 천연두, 보툴리눔, 황우가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탄저, 천연두가 가장 위협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북한은 장사정포·항공기·미사일 등 생물학무기로 한국을 타격할 수 있는 다양한 투발(投發·던져서 폭발시킴) 수단을 갖고 있다. 가장 은밀한 생물학무기 운반수단은 사람인데, 와인버거의 시나리오처럼 고정간첩이나 특수작전부대 요원을 이용해 북한이 생물학전을 감행할 수도 있다.

    당국, 백신 연구도 거의 이뤄지지 않아

    북한의 비대칭 전력이 유사시 미군의 한반도 전개에 장애물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일각에서 나온다. 북한이 공항·항만 등 주요 군사시설에 생화학 공격을 벌이거나 핵 공격에 나서겠다고 위협할 때, 미군의 증원 전력(항공기 2000여 대, 함정 160여 척, 증원군 69만여 명)이 적시에 투입될 수 있을지 우려된다는 것이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한 관계자는 “증원군이 도착할 항만이나 공항에 생물학무기 등이 살포될 경우 미국이 고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뉴스위크’도 인터넷판(10월19일자)에서 “미군의 6개 공군기지가 생화학무기를 장착한 북한 미사일 공격에 취약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북한의 생물학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한 미국은 주한미군을 상대로 탄저 예방 백신을 접종하고, 오산기지에 생물학작용제 탐지장비를 배치하는 등 한반도를 생물학전 발발 위험지역으로 인식하고 대비 태세를 강화해왔다. 그렇다면 한국은?

    2005년 국군의 생물학작용제 예방 백신 및 치료제 보유 현황
    * 자료 : 국방부(2005년 현재)
    품명 구분 수량 용도
    시프로플록사신 주사 앰플 11,286 탄저, 페스트 치료
    시프로플록사신 정 99,385 탄저 치료
    독시사이클린 캡슐 623,201 탄저 치료
    스트렙토마이신 주사 앰플 145 페스트 치료
    겐타마이신 주사 앰플 19,299 페스트 치료
    테트라시클린 캡슐 캡슐 956 콜레라, 야토병 치료
    오플록사신 정 647,775 탄저, 브루셀라 치료
    리팝피신 캡슐 캡슐 75,451 브루셀라 치료
    아목시실린 캡슐 캡슐 10,083,912 탄저, 장티푸스 치료
    합계 - 11,561,410 6종 보유


    * 자료: 질병관리본부 생물테러대응팀(2006.10.7)
    천연두, 탄저, 페스트 백신 및 예방적 투여약제 보유 현황
    생물테러 가능 병원체 예방 백신 보유량 예방적 투여약제  
    두창(천연두) 374만명분 -  
    탄저 - 시프로플록사신 7만명, 7일분, 1,958,800정
    페스트 - 독시사이클린 7만명, 7일분, 980,000정
    보툴리눔 독소증 - - -
    바이러스성 출혈열

    (마버그열, 에볼라열, 라싸열)
    - -


    주요 생물테러 병원체의 위험성과 치사율
    *자료 : '국방저널' 통권 제241호 P23-28(2002), 대량살상무기 문답백서-국방부(2004), 질병관리본부 생물테러대응팀 국회제출자료(2006.10)
    생물테러 병원체 위험성 치사율
    천연두 WHO에는 1979년에 사라진 질병으로 보고됨. 최근 천연두 백신을 거의 저봉하고 있지 않아서 30세 이하 청소년과 예방접종 효력이 덜어진 성인을 합치면 전 국민 절반이 위험에 노출될 수 있음. 대두창의 치사율은 15~50%, 소두창은 1%의 치사율을 보임. 두창이 발생한 적이 없는 인구집단에서는 50~90%의 치사율을 보임.
    탄저 존스 홉킨스대학의 보고서는 탄저균 100kg을 공기 중에 살포하면 최대 300만명까지 사망할 수 있음. 피부탄저, 폐탄저, 장탄저로 나뉨. 사망률은 흡입에 의한 탄저는 100%, 피부탄저는 항생제 치료가 가능하고, 장탄저는 사망률 100%임.
    페스트 중세 유럽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망했으며, 아직까지 효과적인 백신이 개발되어 있지 않은 상태임. 림프절페스트 5%, 패혈증페스트 33%, 급성페스트는 90~100%의 치사율
    보툴리눔 독소증 백신 및 예방치료제 없음. 항독소 투입이 유일한 치료법. 질병관리본부에서 백신 개발 중. 치사율 낮음.
    바이러스성 출혈열

    (마버그열, 에볼라열, 라싸열)
    전 세계적으로 백신 및 예방치료제가 개발되어 있지 않음 5~20%의 치사율을 보이며, 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발발 시 50~90%의 치사율


    적 탄저균 공격 땐 7만명만 안전?
    “한반도 주변의 북한·중국·러시아는 생물학무기 보유국으로 추정되는 국가다. 미국과 일본은 생물학무기를 보유한 경험이 있다. 따라서 이들 국가는 생물학무기에 대한 대응 능력이 충분히 있다고 판단된다. 그럼에도 한국의 생물학무기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신성택 미 몬트레이 비확산연구소 객원교수)

    우선 한국은 북한의 생물학무기 개발과 관련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다. 북한이 생물학무기와 관련, 그 실체와 무관하게 마음대로 위협할 수 있는 셈이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은 생산시설이 노출되지 않아 국방부와 미군조차 북한이 생물학무기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다. 다만 북한의 생물학무기 생산능력은 충분하다”고 밝혔다.

    적 탄저균 공격 땐 7만명만 안전?

    현미경으로 관찰한 천연두 바이러스와 탄저균 포자(왼쪽부터).

    예방 백신과 치료제 비축도 미흡한 상황이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국군은 탄저 치료제인 시프로플록사신을 비롯해 9종 1156만여 개의 치료제를 보유(표 1 참조)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확보한 것으로 추정되는 13개의 병원체 중 탄저, 페스트, 콜레라, 야토병, 브루셀라, 장티푸스 등 6종의 병원체를 커버하고 있을 뿐이다. 그중에서도 페스트, 콜레라 등의 치료제 비축량은 크게 모자란다는 지적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생물학전과 생물학 테러에 대비하려면 백신 확보가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은 보건복지부가 2002년부터 비축하고 있는 천연두 백신이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개발하고 있는 탄저 백신을 제외하면 백신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생물학무기 감염자를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기술과 이에 대한 경험 있는 의료진이 거의 없다는 것도 문제다. 천연두, 탄저, 페스트 등은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질병으로 경험을 가진 의사가 절대 부족하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한국은 인구가 조밀하고 인구 이동이 왕성해서 잠복기 환자를 통해 천연두, 탄저 등이 급속히 확산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적 탄저균 공격 땐 7만명만 안전?

    2001년 미국에서 발견된 탄저균이 담긴 우편봉투.

    탄저, 브루셀라 등 6개 병원체의 치료제를 보유하고 있는 국군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생물학무기 및 생물학 테러와 관련해 민간인 보호 대책은 사실 전무하다시피 하다. 질병관리본부가 한나라당 박재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7개 생물테러 전염병 중 3종(탄저, 페스트, 천연두)만 민수용 치료제 또는 백신을 보유하고 있다(표2 참조).

    보건복지부는 북한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13개의 병원체 중 7종을 접촉격리 대상(탄저·보툴리눔)과 호흡기격리 대상(페스트·마버그열·에볼라열·라싸열·두창)으로 구분해 관리하고 있는데, 민수용은 천연두 백신(2006년 말까지 374만명분 확보 예정)과 탄저 및 페스트 치료제(각각 7만명, 7일분)가 전부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북한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병원체 중 보건복지부가 관리하는 7개 병원체를 제외한 나머지 6개는 치사율도 낮고 현행 전염병관리체계로 예방·치료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결국 일반 국민은 생물학 공격 혹은 생물학 테러 시 치명적인 7개의 병원체(표3 참조) 중 4종엔 사실상 무방비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유사시 추가 확보는 가능할까. 탄저와 페스트의 치료제는 유사시 30일 내에 현재 보유량(7만 병 7일분)의 300%를 추가로 확보하고, 추가 납품일부터 60일 이내에 400%를 더 확보할 수 있을 뿐이다(첫 추가 확보 기간 30일은 이미 탄저가 퍼진 뒤일 가능성이 높다). 백신을 확보한 천연두(치사율 50~90%)도 인구의 7.2%만 커버할 따름이다.

    미국은 3억명분 천연두 백신 비축 추진

    북한의 비대칭 전력이 자위용 혹은 협상용 성격이 짙다는 주장도 있다. 북한이 동족인 한국을 상대로 ‘더러운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한국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미국의 전쟁 억지력의 우산 속에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전쟁과 테러는 ‘If(만약)’의 영역이다.

    세계적으로 천연두의 마지막 발병은 1977년. 따라서 의학적으로 천연두 백신을 생산할 이유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미국은 북한·이란 등이 생물학작용제를 대량 보유한 것으로 판단하고 3억명분의 천연두 백신을 비축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이런 대응을 두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박재완 의원은 “유비무환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테러를 대비한다는 측면에서도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 보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국방전문가는 “생물학무기는 스스로 번식, 확산된다는 점에서 화학무기나 전술 핵무기보다 살상력이 더 높은 것으로 평가되므로 생물학무기 방어 능력에 대한 제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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