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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결혼 동화 속 환상으로 도피

정체불명 예식장 건물·생뚱맞은 예식 ‘황당’ … 궁전 같은 러브호텔도 민망하긴 마찬가지

  • 중앙대 겸임교수 mkyoko@chollian.net

사랑과 결혼 동화 속 환상으로 도피

사랑과 결혼 동화 속 환상으로 도피

국회의사당과 교회, 예식장을 풍자하고 있는 옥정호의 작품과 일본의 예식장 모습.

옥정호의 작품에는 유머가 있다. 서구의 돔 양식을 어설프게 흉내낸 국회의사당. 그 앞에서 그는 의사당 위의 돔과 똑같이 생긴 모자를 쓰고 포즈를 취한다. 양철 탑 하나로 겨우 종교건축의 체면치레를 한 교회. 그 앞에서는 양철 탑과 똑같이 생긴 모자를 쓰고 오토바이를 몬다. 이로써 달랑 돔 하나로 고대의 만신전을 흉내낸 의사당은 희롱의 대상이 되고, 알량한 종탑 하나로 중세의 성당을 흉내낸 교회는 조롱의 대상이 된다.

사랑과 결혼 동화 속 환상으로 도피
그가 교회와 의사당 건물을 풍자 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아마도 상징성 때문일 게다. 다른 건물은 실용성만 있으면 되지만, 의사당 건물이라면 모름지기 정치적 상징성을 표현해야 하고 교회 건물이라면 최소한의 종교적 상징성을 드러내야 한다. 먹고 살기에 바빠 취향을 발전시킬 틈이 없었던 사회에서 건축에 상징성을 부여하려 할 때, 취향으로 뒷받침되지 못하는 근엄함과 엄숙함은 눈 뜨고 봐주기 민망한 우스꽝스러움으로 전락하게 된다.

옥정호의 또 다른 풍자는 장식성을 갖고 싶어 안달하는 또 다른 건물로 향한다. 생명 없는 회색 시멘트 건물들 틈에서 요란하게 양식적 파격을 자랑하는 한국의 예식장 건물들. 중세의 궁전이고 싶어하는 예식장을 배경으로 은발의 왕자와 금발의 공주가 드라마를 연출한다. 유치원 꼬마들을 위한 동화극(童話劇)을 연상시킨다. 백마 탄 왕자와 드레스 입은 공주는 결혼의 ‘이상’이요, 저 뒤에서 무뚝뚝하게 빨래를 걷는 여인은 한바탕 꿈을 꾸고 난 왕자와 공주들 앞에 닥칠 결혼의 ‘현실’이다.

한국의 포스트모던

독일 유학 중에 그곳 TV에서 한국의 혼례문화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가장 재미있었던 것이 신부가 입장하는 장면이었다. “신부 입장!”이라는 말과 함께 신부가 예식홀로 들어오자 바닥에 갑자기 안개가 깔리기 시작한다. 결혼이라고 하면 그래도 인생에서 꽤 의미 있는 행사일 텐데 그렇게 중요한 행사를 굳이 눈 뜨고 봐주기 민망한 ‘키치’로 연출할 필요가 있을까? 이 우스꽝스러움이 독일 TV 팀의 눈에는 매우 이색적으로 보인 모양이다.



독일 사람들은 대개 동사무소에서 혼인신고를 하면서 동시에 결혼식을 올린다. 그것으로 부족하면 동사무소에서 혼인신고만 하고 교회에서 한 번 제대로 된 예식을 올린다. 1년 내내 교회에 나가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인구의 대부분이 명색만은 기독교인이다. 촌락공동체의 급속한 해체와 더불어 전통혼례식의 맥이 끊어진 한국에서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딱히 식을 올릴 장소가 없다. 그러다 보니 오로지 혼례만을 위한 ‘예식장’이라는 건물이 필요한 것일 게다.

사랑과 결혼 동화 속 환상으로 도피

박홍순 작, ‘양수리’.

그 전에는 거리에서 보는 예식장을 무심코 지나쳤는데, 90년대 지어진 어떤 예식장 건물들은 눈을 잡아끈다. 21세기의 거리에서 갑자기 신고전주의풍의 파사드, 르네상스의 돔, 중세의 궁전, 고딕의 플라잉 버트리스(아치형 버팀벽), 나아가 그리스의 도리스, 이오니아, 코린트식 기둥과 마주치는 것은 상당히 당혹스러운 체험이다. 이 양식적 파격은 너무 어처구니없어 폭소를 터뜨리게 한다. 내가 본 것 중에는 예식장 건물의 사면에 벽을 뚫고 나오는 백마들을 줄줄이 박아 넣은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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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중세 궁전 형태의 건물들. 박홍순 작 ‘전농동’.

과거의 언어를 다시 차용하는 것이 포스트모던 건축의 특징이기는 하다. 하지만 포스트모던 건축에 차용된 전통적 모티브는 일단 현대적 미감으로 걸러져 건축의 다른 현대적 모티브들과 조화를 이루도록 배치된다. 그렇게 지어진 건물은 주변의 모던한 건축물과도 잘 어울리면서 풍경에 악센트를 준다. 하지만 한국의 예식장 건물이 연출하는 양식적 파격은 차마 눈 뜨고 봐주기 힘든 민망함을 안겨준다. 이것이 한국식 포스트모던의 도시 풍경이다.

키치의 외화

사랑과 결혼 동화 속 환상으로 도피
아마도 결혼식에 신부들이 입는 화려한 드레스에다 건물의 양식을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 게다. 사실 드레스 입고 결혼식을 올리는 문화는 서구에서 한국으로 들어와 복제되기 전의 원본 상태로도 이미 키치다. 한국의 상민들이 혼례식에서만큼은 양반들이나 입는 옷을 입은 것처럼, 서구의 평민들도 혼례식만큼은 귀족들이 입는 드레스와 연미복을 입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현대인이 중세나 절대왕정 시대 궁정에서나 볼 수 있을 드레스를 입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가 아닌가.

서구도 아니고 한국의 혼례식에서 서구 중세 궁정을 연출하는 것이 사실 황당한 것이다. 이 생뚱맞음이 예식이 벌어지는 실내에 갇혀 있는 한은 별 문제가 없다. 문제는 그게 바깥으로 나와 버렸다는 것. 90년대 예식장은 식장 내부에 있던 키치를(아마도 그동안에 생긴 경제력을 토대로) 과감하게 건물의 외관으로 외화(外化)시켰다. 도시의 일상에서 갑자기 이 궁정풍의 건물과 마주치는 것은 종로 거리에서 드레스 입고 떡볶이 먹는 여인을 보는 것만큼이나 생뚱맞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다. 미국의 드라마나 할리우드 영화에서 동양의 풍경을 연출할 때 한국풍, 중국풍, 일본풍, 심지어 동남아풍까지 ‘짬뽕’해 놓은 것을 종종 본다. 언젠가 한국에서 전시된 어느 프랑스 작가의 작품 중에는 인도풍의 옷을 입은 여인이 일본식 게다를 신고 중국풍 건물 위에 앉아 있는 것도 있었다. 우리가 그것을 보고 어처구니없어 하듯이 한국의 거리에서 서구의 고대,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에 신고전주의를 보고 서구인들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사랑과 결혼 동화 속 환상으로 도피

우리 시대 사랑과 결혼은 동화 속 환상으로의 도피를 꿈꾼다. 러브호텔이 밀집된 지역(왼쪽)과 결혼식장 내부.

시뮬라크르의 자전

어느 예식장 홈페이지를 보니 패키지 상품 옆에 옵션이라며 ‘드라이아이스, 무지개 방울, 안개’라고 적혀 있다. 사진의 ‘뽀샤시’ 효과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장치일 것이다. 입장하는 신부를 뽀얀 안개로 아련히 감싸는 것. 한마디로 ‘아우라’의 연출이다. 하지만 자연의 현상도 아니고, 돈을 주고 기계로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분위기’가 있겠는가. 인위적으로 연출했기에 분위기를 가질 수 없는 분위기는 결국 눈 뜨고 봐주기 민망한 조잡함으로 전락한다.

기술복제 시대는 과거의 명품 결혼식을 시뮬레이션한다. 연미복과 드레스를 입고 왕자와 공주를 연출하는 것은 서구 중세 궁정의 시뮬레이션이다. 그나마 오늘날의 결혼식은 수공의 단계를 넘어 대량으로 찍어내는 기계적 복제가 되었다. “곧 다음 결혼식이 시작될 예정이오니 빨리 기념촬영을 마쳐주시기 바랍니다.” 자본의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시뮬라크르의 자전을 재촉하는 이 멘트는 방금 안개까지 동원해 연출한 예식의 ‘아우라’가 실은 대량 복제되는 싸구려 상품임을 일깨워준다.

패키지로 묶여 있는 사진 촬영도 마찬가지. 여기서 미적 이상은 영화 속의 결혼식인 듯하다. 사진 속의 신랑 신부는 90년대 홍콩 영화에 나오는 갱단 보스와 피앙세 같다. 영화적으로 연출된 이 사진들 역시 신랑과 신부는 매번 바뀌어도 배경과 포즈는 늘 동일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누구나 머리를 집어넣을 수 있도록 구멍이 뚫린 사진 촬영용 배경이다. 판에 미리 그려진 이국적 배경은 정확히 거기에 뚫린 구멍에 새 얼굴이 나타나는 횟수만큼 반복된다.

토털 키치

1970, 80년대에는 콘크리트로 지은 몸체에 한옥의 기와지붕을 올려놓은 건물들이 우리의 눈을 괴롭게 했다. 건축의 형식과 재료는 따로 가는 것이 아닌데, 자연재료를 전제한 전통적 양식을 콘크리트로 실현했으니 기괴한 느낌을 줄 수밖에. 모든 건축은 그것을 짓는 사람들의 이상을 반영하게 마련이다. 콘크리트 한옥은 아마도 ‘전통사회를 근대화하라’는 당시의 지상명제를 물질로 실현한 것이리라. 무지막지했던 한국적 근대화가 거기서 시각적 표현을 얻는다.

팔각정을 콘크리트로 짓는 이유는 아마 기능성과 효율성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전통건축은 재료도 자연적이며 수공적이다. 반면 콘크리트를 이용한 공법은 인공적이며 기계적이다. 모던 건축은 재료의 인공성을 추상적 형식미와 결합시키나, 한국적 모던은 기능과 효율을 위해 일체의 형식미를 포기한다. 90년대 건축이 여기서 벗어나 다시 장식성과 상징성을 회복하려 했을 때, 미처 발달하지 못한 미의식이 바로 예식장 건물의 민망함으로 구현된 것이다.

그 장식성을 통해 표현되는 상징성 역시 민망하기는 마찬가지다. 90년대에 지어진 건물 중 예식장과 비슷한 것이 바로 러브호텔이다. 언젠가 신문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미술시간에 왕과 왕비가 사는 궁정을 그릴 때 주변의 러브호텔을 모델로 삼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상징적 표현은 아이들이 읽는 동화 속 환상으로 도피한다. 예식장 건물은 콘크리트로 구현된 한국 사회의 발달하지 못한 미감이다.



주간동아 2006.11.07 559호 (p84~86)

중앙대 겸임교수 mkyoko@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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