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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 150년 만에 불어닥친 ‘秋史 열풍’

박물관 특별전 잇따르고 학문·예술세계 재조명 바람 … 인문주의자로서의 연구도 첫발

  • 김상엽 인천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

서거 150년 만에 불어닥친 ‘秋史 열풍’

서거 150년 만에 불어닥친 ‘秋史 열풍’

추사의 애제자 허련이 그린 \'환당 선생 초상\'.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서거 150주년을 맞이해 주요 박물관에서는 특별전이 앞다투어 열리고, 언론에서는 그의 학문과 예술에 대한 특집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19세기 조선의 학계와 예술계에 끼쳤던 김정희의 영향력을 ‘완당 바람’이라고 하듯, 지금 다시 ‘추사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추사에게는 늘 ‘동아시아 서예문화 최후의 거장’ ‘학예(學藝) 일치의 대예술가’ ‘일세(一世)의 통유(通儒)’ 등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러나 이러한 현란한 평가와 ‘우리가 진실로 추사를 얼마나 아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추사는 위대한 학자와 예술가를 넘어 신격화되기도 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인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엄청난 작품값 덕에 속물화되기도 한다. 신격화도, 속물화도 추사의 뜻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추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왜 추사에 주목하는가’ 하는 점이다. 아울러 추사는 천재이기 이전에 ‘벼루 열 개를 구멍내고 붓 천 자루를 닳아 없앤’ 노력의 화신이며, 서화가 이전에 경학자(經學者)라는 점에도 유념해야 한다.

청나라 대가들도 인정한 학문적 천재성

추사의 일생은 영광과 환희에 찬 전반기와 고뇌에 찬 후반기로 극명히 나뉜다. 종척(宗戚) 가문이라는 후광과 타고난 천재성을 기반으로 다다른 학문적 경지는 청나라 노대가들도 인정할 정도였으며, 이로 인해 그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제주 유배 이후부터 시작되는 추사 인생의 후반기는 육체적으로는 인생의 황혼기였으나 예술적 측면에서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추사 예술의 백미는 역시 ‘추사체’

추사라는 인물은 인간적으로는 대단히 까다롭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오만할 정도로 자신만만했다는 증언을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도량은 무척 넓어서, 서얼이건 중인이건 출신 성분을 가리지 않고 문하에 받아들여 학문과 예술을 교유했다. 추사가 서거하자 사관은 ‘철종실록’에서 그를 송나라의 소동파에 비교했다. 그가 당대에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동아시아 최고의 문장가이자 서화가로 꼽히는 소동파에 비교된 것은 죽은 그에게 한 가닥 위안이 됐을지도 모른다.

추사에 대한 숱한 논문이 나왔지만 우리는 아직 그의 가장 유명한 호인 ‘추사(秋史)’의 의미와 유래를 알지 못한다. 최고의 추사 연구자로 평가되는 후지쓰카 지카시(1879~1948)의 ‘청조 문화 동전(東傳)의 연구’를 능가하는 연구가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도 반성할 일이다. 그리고 그의 글씨, 그림, 불교학 등에 대한 분과학적 접근은 시도되고 있지만, 동아시아의 사상사와 예술사에서 추사의 위상 등에 대한 종합적 연구는 아직 시도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중대한 한계다. 유불선, 문사철, 시서화를 겸비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문주의자로서의 추사 연구는 이제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추사는 근대적 분과학이 아닌 새로운 통합적 학문으로서의 인문학 모범으로 주목되어야 한다. 이것이 지금 추사를 주목하는 이유다.

서거 150년 만에 불어닥친 ‘秋史 열풍’
추사의 그림은 ‘먹을 금처럼 아껴가며’ 심의(心意)를 표출한 것으로, 문인화의 정수(精髓) 자체라 할 수 있다. 추사 예술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추사체’로 널리 알려진 그의 글씨다. 추사의 글씨는 단 한 글자가 쓰여도 여러 글씨체의 기운이 융합되고, 강약과 대소가 자유자재로 녹아 있어서 일찍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그 글자 한 점, 한 획은 중국 역대 금석문(金石文)에 근거가 다 들어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추사 예술의 위대성을 확인할 수 있다. 청나라에서 난숙한 고증학의 예술적 체현을 추사의 글씨 속에서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추사 서거 150주년 기념행사 살펴보니…

글씨·그림전부터 국악 가무악극까지 다채


서거 150년 만에 불어닥친 ‘秋史 열풍’

김정희, ‘小窓多明 使我久坐’(창은 작지만 빛이 많아 나로 하여금 오래 앉게 한다), 39×140cm, 현판 탁본. ‘창(窓)’ 자, ‘명(明)’ 자, ‘좌(坐)’ 자는 추사 글씨 특유의 강한 회화성을 느끼게 해준다.

서거 150주년을 맞이해 추사와 관련된 다채로운 전시와 공연이 열리고 있거나 개최가 예정돼 있다. 주요 행사의 특색을 살펴본다.

먼저 과천문화회관에서 11월7일까지 열리는 ‘추사 글씨 귀향전’은 후지쓰카 지카시의 연구 자료를 아들 아키나오(1912~2006)에게서 기증받아 연 전시회다. 후지쓰카는 추사 제1의 연구자답게 가격이 많이 나가는 대작보다는 소품 위주의 자료적 가치가 있는 것들을 주로 모았다. 특히 1930년대 당시 촬영한 유리원판 사진은 추사 고택 등의 변화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 지금은 행방을 모르는 추사 주변 인물들의 편린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전시 마지막 날인 11월7일에는 국악 가무악극 ‘붓 천 자루 벼루 열 개’가 과천시민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이 공연은 한국 역사의 첨예한 시·공간을 살다 간 추사의 일대기를 창작 국악극으로 그린 것이다. 과천은 추사가 기와 흥이 넉넉한 말년을 보내고 생을 마감한 지역으로서 추사와 인연이 깊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1월19일까지 열리는 ‘추사 김정희 특별전’은 추사의 그림 가운데 가장 유명한 ‘세한도’ ‘불이선란’과 허련의 ‘김정희 초상’ 등 주요 작품을 공개한 수준 높은 전시회다. 추사가 유배되었던 제주에서도 부국문화재단과 추사동호회에서 기증한 수십 점의 유물을 중심으로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山崇海深)’라는 전시회가 열릴 예정인데, 12월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추사 김정희 특별전 순회전이 여기에 합류한다.

10월 말까지 열리는 간송미술관의 특별전은 한국서화사의 정수가 모여 있다는 간송미술관의 명성을 확인해주듯 대작과 소품을 망라한 명품이 출품되었다. 그동안 간송미술관에서 개최된 여러 번의 추사 관계 전시회 가운데 질적, 양적 면에서 손꼽히는 전시회다.

2007년 1월28일까지 열리는 삼성미술관 리움의 ‘조선 말기 회화전’에서는 추사의 작품만 따로 모은 특별실에 추사의 글씨 5점을 전시했는데, 황상에게 써준 ‘죽로지실(竹爐之室)’의 형태미는 압권이다.

부대행사로 11월25일에는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추사 김정희의 삶과 예술’을, 12월16일에는 이태호 명지대 교수가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를 주제로 강연을 한다.

추사 서거 150주년 전시의 대미는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추사특별전’이 장식할 예정. 12월 말부터 3개월간 예술의전당 서예관 전관에서 개최되는 초대형 전시로, 추사 글씨의 변화과정과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매주 개최될 문사철 각 분야 연구자들의 추사 관계 강연과 대규모 학술회의는 지금까지 없었던 대기획으로, 추사 연구의 한 전기가 될 것이다.




주간동아 2006.11.07 559호 (p52~53)

김상엽 인천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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