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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내빈 국과수 “날 좀 보소”

감정 능력 뛰어나지만 박봉에 격무로 줄사퇴 … 총체적 무관심 속 위상 제고 ‘머나먼 길’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외화내빈 국과수 “날 좀 보소”

외화내빈 국과수 “날 좀 보소”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모습. 현재 정원의 절반 정도인 14명의 법의관만 남아 있다.

11월3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소장 이원태) 법의학부 법의학과가 제2회 과학수사대상 시상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는다. 서래마을 영아유기 사건 해결로 한국의 수사과학 실력을 국제적으로 떨친 직후라 수상 소식에 더욱 뜨거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국과수는 과거 어느 때보다 심한 ‘속앓이’를 하고 있다. 국과수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부검 체계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과수에 근무하는 법의관은 고작 14명. 정원(26명)의 절반을 가까스로 넘긴 형편이다. 2~3년 전부터 하나 둘 떠나기 시작하더니 올 초에는 3명이나 사표를 냈다. 부산에 있는 남부분소의 경우 법의관이 단 한 명도 없어 3월 이후 부검 업무가 중단됐다. 결원 보충이 무리 없이 이뤄지고 있어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법의관 이외의 감정·연구 인력들도 국과수를 떠나는 경우가 잦다. 국과수의 한 관계자는 “얼마 전에는 직원 두 명이 새로 시험을 봐서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 옮겨갔다”고 귀띔했다. 요즘도 몇몇 직원이 사직을 고려하고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국과수 분위기는 침체되어 있다.

법의관들이 국과수를 떠나는 이유는 우선 열악한 처우 때문이다. 국립의료원이나 경찰병원 의사들보다 직급이 낮게 채용되는 데다 급여도 연간 1000만원 정도 차이가 난다. 반면 업무량은 지나치게 많다. 국과수가 연간 처리하는 부검 건수는 5000여 건. 1인당 300여 건의 부검을 하고 있다. 연간 적정 부검 건수를 150건으로 제한하고 있는 선진국과 비교하면 ‘살인적인’ 노동강도다.

체계 미비, 예산 부족으로 ‘속앓이’

그러나 이들이 국과수에 등을 돌리는 이유가 비단 급여와 업무량 때문만은 아니다.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점, 국과수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예산지원이 부족한 점 등이 이들을 좌절하게 한다. 현행법은 법의관의 초동수사 참여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올 초 한 법의관은 “사건 현장을 보지 않고 부검하는 것은 사기”라며 국과수를 떠났다고 한다. 최근 국과수를 그만둔 한 직원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남아서 변화를 이끌어보고자 하는 일이 얼마나 가당치 않은지 절감했다”고 토로했다.



서래마을 사건뿐만 아니라 2005년 쓰나미 현장에서도 세계 각국에서 온 감식반들을 놀라게 했을 정도로 국과수는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국과수가 이처럼 탄탄한 실력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다소 아이러니하지만 역동적인 사회 분위기와 국과수에 대한 ‘불신’어린 시선 덕분이었다. 미국 등 선진국의 범죄는 권총을 이용한 살인사건이 대부분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둔기, 칼, 맨주먹, 목조르기 등 다양한 방식에 의한 살인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국과수에서 1~2년만 일하면 법의학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경우를 경험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 게다가 크게 이슈화된 사건의 경우 언론이 국과수의 감정 결과에 대해 철두철미하게 의혹을 제기하는 탓에 더욱 철저히 감정을 하다 보니 자연 실력이 탄탄해졌다(서래마을 사건에서도 일부 언론은 국과수의 유전자 감정이 잘못됐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국과수는 감정 실력만큼 행정 실력을 키우지는 못했다. 그 일차적인 원인은 국가적인 ‘무관심’에 있다.

남부분소 부검 업무 8개월째 중단

외화내빈 국과수 “날 좀 보소”

서울 강서구 신월동에 위치한 국과수 모습.

현재 국과수는 행정자치부(이하 행자부) 소속이다. 그러나 업무의 성격이 워낙 다르기 때문에 행자부는 국과수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국과수 업무를 총괄하는 부서조차 없다. 다만 예산 관련 부서에서 예산만 내줄 뿐이다.

온갖 국가기관이 도마에 오르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국과수는 ‘왕따’를 당하는 처지다. 사회적 중요도는 매우 높지만 연간 예산이 200억원에 불과한 미미한 조직이기 때문에 피국감기관으로 거의 선정되지 않는다. 지난해에 11년 만에 처음으로 국정감사를 치렀을 정도다. 증거 위주의 공판중심주의로 전환되어 국과수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지만, 정부나 국회 어디에서도 ‘국과수의 미래와 육성방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해본 적도, 고민하지도 않고 있다.

한편 국과수 내부에도 조직의 영향력이나 행정력을 키워나갈 인력이 없다. 감정·연구 인력들은 행정 업무와 거리가 멀고, 행정부서는 경찰청과 행자부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로 채워져 있다. 이들은 짧으면 6개월, 길어야 3년 정도 근무한 후 원래 자리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국과수의 한 연구인력은 “행정직원에게 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겨우 설득하고 나면 얼마 안 있어 원래 소속된 부처로 돌아가고 말아 일을 추진하기가 어렵다”고 호소했다.

요즘 서중석 법의학부장은 오전에는 부검을 하고 오후에는 국회와 정부부처 등을 돌아다니며 ‘예산 확보 투쟁’을 벌인다. 중요 사건이 터질 경우 지방에까지 ‘출장 부검’을 나간다는 그는 “아쉬운 사람이 우물 파는 법”이라며 “국과수의 유일한 관용차량인 1300cc급 낡은 베르나를 타고 국회에 갈 때는 서글픈 기분마저 든다”며 쓴웃음을 보였다.

지난해에는 경찰이 국과수를 경찰청으로 이관해 집중적으로 지원, 육성하겠다고 했다. 국과수에서도 이러한 경찰의 제안을 반겼다. 국과수 내에 ‘독립성 침해’를 염려해 경찰 산하로 들어가는 것을 꺼리는 직원들도 있었지만, ‘우리 기관을 제대로 양성만 해준다면 어느 소속이든 상관없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현재 법무부의 반대로 답보 상태에 있다. 법무부 검찰국 관계자는 “국과수가 경찰청 산하로 들어가면 일개 수사지원 부서로 전락하고 만다”며 “국과수는 신뢰성 있는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감정기관으로 남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국과수 안팎에서는 이러다 국가의 법의체계가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남부분소의 부검 업무는 현재 8개월째 중단된 상태로 이 지역 경찰들은 1구당 25만원의 비용을 지불하면서 의료기관에 부검을 의뢰하고 있다. 부산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올 들어 부검비로 4800여 만원을 지출했다”고 하면서 “따로 부검비 예산 항목이 없어 다른 용도의 예산을 끌어와 쓰고 있다”며 곤란한 사정을 전했다.

11월3일에 받는 대통령 표창의 상금은 200만원. 그러나 국과수 법의관들은 이 상금으로 삼겹살에 소주 한잔조차 걸치지 않을 생각이다. 국과수 지원 정책을 이끌어내기 위한 ‘로비자금’으로 사용하기로 의견을 모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국과수의 위기의식은 심각해 보였다.



주간동아 2006.11.07 559호 (p20~21)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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