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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창|사적 린치(私刑)

때론 공권력 능가 … 속시원? 공포?

  • 이명재 자유기고가

때론 공권력 능가 … 속시원? 공포?

때론 공권력 능가 … 속시원? 공포?

‘세븐’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계엄군 출신이었던 대기업 회장이 당시 최고책임자를 처단하는 작전을 꾸민다. 이 작전에는 당시 시민군의 자녀인 경찰관, 건달, 조각가, 사격선수 등이 합세한다’. 인터넷 포털에 연재된 이런 줄거리의 만화가 크게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벌써 잊혀져 버린 먼 ‘역사’가 된 듯했던 5·18에 대한 관심이었을까. 그보다는 불의를 법으로 단죄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뒤집어 보는 통쾌감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커서였을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에는 이런 류의 소설이나 영화가 꽤 인기를 끌었다. 대표적인 작품이 ‘인간시장’이다. 주인공 ‘장총찬’은 정말 이름대로 장총을 찬 것처럼 사회악이나 비리와 싸우는 ‘정의의 사나이’였다. 이 책은 당시로선 기록적인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정작 작가 김홍신은 “인간시장이 팔리는 시대는 불행한 시대”라고 했다. 작가의 말은 이 책이 나왔던 80년대 초반 현실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이었다. ‘정의사회 구현’을 외쳐야 했던 사회, 그러나 전혀 정의롭지 못하던 시대였다.

현대의 대의 민주주의는 정의 실현의 권능 또한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사법부에 위임하고 있다. 그러나 사법부가 국민이 위임해 준 정의의 실현을 제대로 못할 때 ‘사적 린치(私刑)’에 대한 욕구는 커진다.

따지고 보면 영화 속 많은 영웅들은 허가받은 공권력이 아니다. 배트맨도 그렇고 슈퍼맨, 스파이더맨 모두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들은 종종 경찰과 충돌도 빚고 마찰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치안권력의 도덕성이나 능력을 믿지 못하는 절대 다수의 시민으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기에 이들은 ‘불법 치안행위’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사적 린치는 범죄행위와 큰 차이가 없다. 스스로를 정의(正義)의 수호자로 정의(定義)하는 이는 자신의 가치관을 독단화하고 절대화하게 된다. 그의 정의관을 견제할 아무런 제어장치도 없다.

영화 ‘세븐’의 연쇄 살인범은 인간을 파멸에 이르게 한 일곱 가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차례로 살해한다. 끔찍한 방법으로 죽인 시체에 범인은 탐식, 탐욕, 나태, 시기, 정욕, 교만, 분노라는 글자를 남긴다. 범인이 혐오한 습벽이나 품성들이 분명 미덕은 아닐지라도, 이를 죽음으로 응징하는 것을 과연 정의라고 할 수 있는가.

근대 이후 가장 고질적이며 악명 높은 린치는 미국의 KKK단의 그것일 듯하다. 영화 ‘미시시피 버닝’은 1964년 미시시피 주 한 도시에서 흑인 인권운동을 벌이던 청년 3명이 KKK단에 의해 살해된 사건을 옮긴 것인데,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은 어둠 속에서 은밀히 행해지는 린치에 대한 공포가 공권력보다 더 무섭다는 사실이었다.

두 FBI 수사관의 조사는 마을 사람들이 협조를 거부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는다. 지방유지와 보안관은 노골적으로 수사를 방해한다. KKK의 보복이 두렵거나 KKK라는 비밀 결사체의 강한 결속력에 의한 것이었다. 영화는 결국 아무도 처벌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는데, 41년이 지난 2005년에야 이들에게 유죄 평결이 내려졌다고 한다.



주간동아 558호 (p71~71)

이명재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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