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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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정부 “대학 평준화 더 이상 못 참아”

학력 수준 낮아지고 두뇌 유출 심각 … 5년간 2조원대 투자해 엘리트 대학 육성 시동

  • 슈투트가르트=안윤기 통신원 friedensstifter@gmail.com

    입력2006-10-25 15: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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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최고의 일류대학은 어디일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독일인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한심하다는 표정과 함께 “독일에는 그런 것 없다”는 핀잔 섞인 대답만 들었을 것이다. 소위 ‘68세대’ 이래 교육 분야에서 경쟁의 원리를 배제해 온 독일로서는 ‘일류대학’이라는 용어 자체가 생경하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일정 수준의 학력, 우리로 치면 수학능력시험인 ‘아비투어’ 점수만 있으면 누구나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학교를 옮기기도 쉬운데, 학교가 학점 관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개개인이 ‘샤인’이라고 불리는 강의수료증을 모아 학점 관리를 하기 때문이다. 독일 대학생들은 대부분 저학년 때는 부모 집에서 가까운 대학에 다니다가 원하는 전공과 교수를 찾아 한두 번 학교를 옮긴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대학 평준화 덕분이었다.

    이공계대 지원 편중 탓 잡음 생기기도

    그러나 이러한 독일 대학 시스템은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바로 ‘하향 평준화’ 문제다. 입학이 수월하고 등록금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넘쳐나지만(약 200만 명), 주 정부의 재정 지원이 넉넉하지 못해 교육 여건이 날로 뒷걸음치는 형편인 것이다. 그렇다 보니 우수 연구 인력들이 좀더 나은 보수와 여건을 찾아 해외로 나가는 ‘두뇌 유출’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 결과 독일 대학들은 지난 10여 년간 이렇다 할 연구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히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미국보다 30년 가량 뒤져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노벨상을 휩쓸고 세계 과학계를 주도하던 독일의 학문적 명성에 비춰볼 때 수모가 아닐 수 없다. 세계의 각종 언론이 발표하는 대학 경쟁력 평가에서 상위 50위권 안에 이름 하나를 올릴까 말까 할 정도로 독일 대학은 몰락했다. 영어권 대학은 물론, 아시아 대학들에도 밀리는 형편이다.



    이러한 현실 탓에 슈뢰더 정부는 2004년 초 독일에도 ‘엘리트 대학’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같은 해 1월 당시 연방교육부 장관이던 에델가르트 불만은 ‘브레인 업(Brain up)! 독일 최우수 대학을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야심찬 구상을 내놓았다. 그 구체적인 방안이 ‘우수연구 장려 프로그램’으로, 연방과 주 정부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무려 19억 유로(약 2조2800억원)를 투자해 소수 대학에 특별 지원할 계획이다.

    지원 대상은 크게 △전문 대학원 △우수 산학협력체 △최우수 대학 등으로 나뉜다. 이 중 최우수 대학 지원이 이른바 ‘엘리트 대학’ 구상으로서 이번 방안의 핵심이며, 10여 개 대학을 선정해 매년 2100만 유로(약 252억원)씩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10월13일 제1차 엘리트 대학 세 곳이 발표됐다. 영광의 주인공은 뮌헨대학, 뮌헨공대, 카를스루에공대다.

    독일을 조금 아는 사람들은 이 같은 선정 결과에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우선 세 대학 모두 남부 독일에 자리하고 있다는 지역적 편중성이 눈에 띈다. 옛 동독 지역은 물론 중부와 북부에는 일류대학이 하나도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게다가 뮌헨은 한 도시에서 두 학교가 선정되는 갑절의 영예를 얻었다.

    선정 과정에서 잡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엘리트 대학 선정위원회는 연방교육부 장관, 각 주의 교육부 장관들, 독일연구협회 관계자들로 이뤄졌는데 객관적 잣대만 고집한 학자들의 의견이 정치인들에 의해 짓눌렸다는 후문이다.

    최종 후보 10개 대학에 이름을 올리고 또한 세계 대학 경쟁력 순위에서 그나마 독일의 체면을 지켜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삼두마차(하이델베르크대학, 튀빙겐대학, 프라이부르크대학)가 하나도 뽑히지 못했다는 점도 문제가 됐다. 특히 하이델베르크대학은 독일에서 전통이 가장 오래되고 해외에도 잘 알려진 대학이라 탈락의 충격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 대학이 탈락한 이유는 삼두마차 대학 모두 인문계열이 강세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엘리트 대학으로 선발된 3개 대학 중 2개 대학이 공학전문 대학이고 뮌헨대학도 이공계 연구를 강조하고 있다. 요컨대 독일의 엘리트 대학 사업은 통상적인 의미의 일류대학 선발 대회라기보다는, 독일에도 MIT 같은 대학을 육성해 독일의 과학기술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자는 데 근본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평등주의 근간 무너진다” 우려 소리도 높아

    과연 독일의 엘리트 대학 육성 정책은 성공할 것인가. 뮌헨대학 총장 베른트 후버는 기쁨을 감춘 채 “미국 대학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경우 기본 자산이 200억 달러(약 19조1200억원) 이상인 데다가 매년 10억 달러의 예산이 편성되니 연간 2100만 유로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학생 선발권, 교수의 임금 지급방식 등을 학교 재량에 맡겨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독일학술위원회 의장 페터 슈트로슈나이더는 “내년 중 2차 엘리트 대학이 선발되며, 궁극적으로 독일 대학계에 ‘분데스리가’가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축구 분데스리가에서는 매 시즌 최하위 성적을 거둔 2개 팀을 2부 리그로 떨어뜨리고 2부 리그 상위 두 팀을 새로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와 유사하게 각 대학들이 선의의 경쟁을 벌인다면 독일 대학 전체의 국제경쟁력 또한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다.

    그렇지만 반발의 목소리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엘리트 대학 선정은 독일 공교육 이념인 평등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사회적 불평등을 고착화할 것이라는 염려가 그것이다. 현재 독일 대학의 경쟁력이 약한 이유는 국가적 지원이 시원치 않기 때문인데, 그나마 있던 정부의 지원을 소수 대학에 집중한다면 대학 간 격차가 더욱 벌어져 국가 전체의 경쟁력은 오히려 약화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독일의 엘리트 대학 육성 정책은 경쟁원리가 작용하는 세계화 시대에 독일이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생존의 몸짓으로 보인다. 이러한 과감한 변화가 성공해 독일은 과연 과거의 학문적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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