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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조기유학,藥인가 毒인가

물 건너가서도 인기 짱 ‘대치동式 교육’

수학·논술·영어는 물론 피아노까지 과외…일부는 방학 때 한국서 SAT 학원수강

  • 밴쿠버=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물 건너가서도 인기 짱 ‘대치동式 교육’

물 건너가서도 인기 짱 ‘대치동式 교육’

광역 밴쿠버의 한 초등학교에서 한국 학생들이 방과 후 ‘한국 공부’를 하고 있다.

9월 말, 서울의 B학원이 마련한 조기유학 설명회장. 강사의 설명을 듣는 학부모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선행학습도 한국에서처럼 이뤄지나요?”(학부모)

“물론이죠. 최고의 강사진이 한국과 똑같은 시스템으로 ‘한국 공부’를 가르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강사)

학부모들은 “한국에서 인터넷과 CCTV로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학원수업과 기숙사 생활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는 대목에서 탄성을 자아냈다. 강사의 이어지는 설명.

“팩스 이용 한국 과외선생이 낸 문제 풀이”



“학교 공부를 마치고, ESL 수업을 2시간 받아요. 그런 다음 3시간 동안 학교 숙제와 한국 공부를 합니다. 10시쯤 기숙사에 도착하죠. 토플(TOEFL)과 SSAT(미국 사립고 입학시험) 수업도 마련돼 있습니다.”

학부모들에게 ‘조기유학을 선택한 까닭’을 물으면, 십중팔구 입시지옥과 사교육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대치동식 교육’은 태평양 건너에서도 계속되고 있었다.

9월28일 오전, 광역 밴쿠버 델타의 한 주택. 한국인 아주머니 2명이 카레라이스를 만들고 있었다.

“한국 음식을 만들어주려고요. 학생들이 한국 음식 먹는 시간을 제일 기다려요.”

이 주택은 최초로 관리형 조기유학을 도입한 A사의 게스트하우스. A사를 통해 ‘나 홀로 유학’을 온 학생들은 일주일에 세 번씩 ‘방과후 학교’에서 한국 음식을 먹는다. ‘방과후 학교’는 한국 수업을 가르치는 ‘학원 강의’를 가리키는 말.

정규수업이 끝난 델타의 한 초등학교를 빌려 이뤄지는 ‘방과후 학교’에서는 ‘한국 수학’과 ‘한국 국어’ 등을 밤 7시30분까지 가르친다.

물 건너가서도 인기 짱 ‘대치동式 교육’

방과후 학교의 강의 시간표.

“한국에선 초등학교 4~5학년부터 고등학교 입시 준비에 들어가기 때문에 영어만 배우고 돌아오면 낙오할 수밖에 없어요. 특목고에 진학하려면 한국 공부도 잘해야 해요.”(관리형 ‘나 홀로 유학’으로 초등학생 아들을 캐나다에 보낸 주모 씨)

밴쿠버의 한 유학업체에서 일하는 김모 씨가 전해준 ‘한국 공부’와 관련된 한 학부모의 사례는 다소 황당하기까지 하다.

“제가 관리하던 한 아이의 엄마는 캐나디안 홈스테이 가정의 동의를 얻어 그 집에 팩스를 설치했어요. 그러고는 한국에서 과외 선생님이 만든 문제지를 팩스로 보내고, 자녀가 문제를 푼 뒤 리팩스하게 했어요.”

전통적인(관리형 ‘나 홀로 유학’은 최근의 새 트렌드) 기러기 형태의 조기유학은 크게 ‘철새형’과 ‘텃새형’으로 나뉜다. 철새형은 1~3년의 단기유학, 텃새형은 대학까지 공부하는 유학을 뜻한다.

철새형 엄마들은 하나같이 수학과 논술 등 ‘한국 공부’를 걱정하고 있었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튜터비(사교육비)가 지출되는 까닭이다. 광역 밴쿠버 서리에 거주하는 기러기 엄마 김모(42) 씨의 말이다.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선생님에게 ‘한국 영어’ 과외를 받고 있고, 캐나디안 회화 튜터를 따로 뒀어요. 국어(논술)와 수학은 팀을 짜줬고요. 다른 집도 수학과 논술은 기본이에요. 캐나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수학은 너무 쉬워서 한국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거든요.”

보습학원 만족 못하는 엄마들 ‘숙제 도우미’ 고용

철새형 엄마들은 자녀의 미래와 관련해 비슷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조기유학→특목고 진학→국내외 명문대 진학이 그것이다(역유학생들이 외국어고와 자립형사립고 입시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건 사실이다). 초등학생의 조기유학이 ‘유학’이 아닌 1~3년의 ‘영어연수’로 개념이 바뀌면서 한국 공부를 가르치는 사교육 시장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는 것이다.

텃새형 엄마들의 고민은 크게 둘로 나뉜다. 아이가 초등학교 때 유학 온 엄마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녀들이 한국을 잊어간다는 게 걱정이다. 한 기러기 엄마는 “초등학교 때 유학 온 이웃의 한 한국인 고등학생이 (엄마가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로 엄마에게 뭐라고 쏘아붙이는 모습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말했다.

사춘기가 지난 자녀를 데리고 온 엄마들은 영어로 진행되는 학교 공부를 아이들이 버거워하는 게 가장 큰 고민이다. 조기유학생들은 특히 역사 등을 배우는 사회과목과 글쓰기(에세이라이팅)를 어려워한다는 게 엄마들의 말.

“한국에서 영어 학원을 5년이나 다녔는데도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었어요. 불안해서 과외를 안 시킬 수가 없었죠. 한국 아이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게 에세이라이팅인데, 한국에서 논술 배우듯이 학원에서 공부한다고 보면 돼요. ”(서리에 거주하는 기러기 엄마 박모 씨)

물 건너가서도 인기 짱 ‘대치동式 교육’

밴쿠버 인근의 도시들에선 한국계 보습학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21세기식 수학교육은 토론식, 발표식 수업이 경쟁력입니다’ ‘최고의 선생님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밴쿠버에서 발행되는 한국계 신문에 실린 학원 광고는 서울의 학원 전단지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학원은 무가지로 발행되는 한국계 신문의 주요 광고주 중 하나. 50개가 넘는 한국계 보습학원은 사회, 과학, 제2외국어 등 전 과목을 가르친다.

“늦게 유학 온 친구들은 학원 공부를 하지 않으면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가 버거워요. 한국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잉글리시 12(고등학교 3학년 영어)’를 통과하지 못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는 유학생도 적지 않아요. 제때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과락(科落)해서 어덜트스쿨에 다니거나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죠.”(밴쿠버의 한 보습학원 관계자)

일부 기러기 엄마들은 보습학원에 만족하지 못하고 시간당 30~40캐나다달러(2만5000~3만5000원)의 ‘숙제 도우미’를 고용하기도 한다. 학교 성적에 반영되는 숙제를 ‘봐주는’ 과외 선생님을 두는 것이다.

“숙제 도우미의 도움으로 세컨더리(중·고등학교) 학점을 따고 대학에 들어가서 낙제하는 친구를 여럿 봤어요. 숙제 도우미는 한국식 교육열이 만들어낸 일종의 속임수죠.”(캐나다 교민 김모 씨)

미국의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고학년 학생들은 토플과 SAT(미국 대학수학능력 시험) 학원에 다닌다. 웨스트밴쿠버의 A학원은 ‘SAT 명문’으로 소문나 있기도 하다. 일부 조기유학생들은 방학을 이용해 한국에서 SAT 수업을 듣고 돌아오기도 한다. ‘대치동식 교육’이 태평양을 가로지르며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간동아 558호 (p34~35)

밴쿠버=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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