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1

2006.09.05

스트레스와 뇌 건강

주간동아·한국뇌확회 공동기회

  • 한평림 이화여대 나노과학부 교수

    입력2006-09-04 14: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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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트레스와 뇌 건강

    영화 ‘괴물’은 ‘스트레스 영화’다. ‘괴물’은 가장 강도가 큰 스트레스를 주는 것으로 생각되는 괴물 앞에서의 생존, 가족의 죽음 등을 다뤘다.

    최근 개봉된 영화 ‘괴물’은 일종의 ‘스트레스 영화’다. 한강에서 괴물의 공격에 처한 영화 속 인물들은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영화배우 송강호 등이 분한 주인공들은 가족을 잃는 고통, 가공할 폭력적인 힘을 가진 괴물에 고독하게 대적해야 하는 중압감, 그리고 사회적·국가적 시스템의 불합리성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괴물’을 맞이해야 하는 등 영화는 관객에게 다양한 성격의 스트레스 반응을 요구한다. 마치 스트레스 신경생리의 활성화를 어떻게 적절히 담아내느냐가 영화 성공의 중요 요소라고 판단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설령 ‘괴물’과 같이 제한된 주제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등의 말을 자주 하는 걸 보면 스트레스는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음이 틀림없다.

    신경과학자들은 외부로부터의 ‘자극’과 이에 대응하는 ‘신체 내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구분하여 스트레스는 주로 ‘신체 내의 반응’을 의미하고, 자극은 ‘스트레스 인자 또는 유발원(stressor)’이라고 부른다. 신경생리학적 관점에서 스트레스는 대체로 ‘외부로부터의 물리적·대사적·정서적 자극으로 인해 신체생리의 항상성 붕괴가 유발되는 비특이적 생리 반응’, 또는 간단하게 ‘신체생리의 과부하’라는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다.

    스트레스 받으면 감각기관 더 예민

    영화 ‘괴물’에서도 그렇지만, 위급상황에 대처하는 법은 위급상황 자체를 제압하거나 아니면 재빨리 몸을 피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괴물이 나타나자 모두들 재빨리 몸을 피하거나 괴물을 제압하려 들었다. 어느 경우든 생존의 문제가 달린 위급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강하고 즉각적인 행동반응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신체는 교감신경계와 뇌하수체가 관련된 신경내분비계의 활성화라는 비상 시스템을 작동시킨다. 위급상황에 처하면 즉각적으로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어 아드레날린(에피네프린) 같은 케티콜라민계 호르몬이 분비되고, 연이어 대뇌의 시상하부가 활성화되어 CRH(부신피질자극호르몬 분비촉진호르몬)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면 CRH는 다시 뇌하수체의 전엽을 자극해 ACTH(부신피질자극호르몬)를 분비하게 한다. ACTH는 혈류를 타고 이동해 신장의 위쪽 끝에 위치한 부신피질 부위에 작용함으로써 코티졸(cortisol)을 분비하게 한다. 케티콜라민과 코티졸 등은 스트레스 상태에서 분비되고 스트레스 생리반응을 매개하기 때문에 이들을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부른다.

    스트레스 반응의 초기 과정에서 분비되는 케티콜라민 호르몬은 동공을 확대하고, 털이 꼿꼿이 서게 하여 상대에게 무섭게 보이도록 한다. 동물의 경우 특히 유효하며, 사람도 위급상황에서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심폐 기능을 증가시켜 뇌와 근육 등에 산소와 에너지원인 포도당의 공급을 원활하게 한다. 따라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감각기관이 더 예민해지고 정신이 더 명료해져 상황 판단과 빠른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

    한편으로 위급상황에서는 기능이 저하되더라도 즉각적인 지장이 없는 피부, 소화기관, 신장, 손발 등에는 혈류 공급이 감소된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화가 잘 안 된다. 특히 코티졸은 체내의 생리 및 대사 활동을 변경시켜 위급상황을 극복하는 데 요구되는 순발력과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생성되도록 한다. 코티졸은 단백질 및 지질의 분해를 촉진시켜 혈당수치를 올린다. 또한 스트레스가 있는 상태에서는 외상을 입었을 때 출혈 방지를 위해 혈소판이나 혈액응고인자가 증가한다.

    반복·장기적 스트레스는 몸이 대가 치러

    스트레스와 뇌 건강

    뇌의 전두엽에 위치한 신경세포의 조직학적 구조. 왼쪽은 정상 신경세포, 오른쪽은 만성 스트레스를 받은 신경세포. 수상돌기의 길이와 가짓수가 감소되어 있다.

    스트레스 생리반응은 생명이나 촌각을 다투는 위급상황에서만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일상적인 삶이 원시 자연상태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삶을 둘러싼 물리적 환경의 문제, 국가, 사회, 공동체, 가족 간의 문제 등으로부터 끊임없이 자극과 도전을 받는다. 예컨대 소음, 강력한 빛과 열, 주거공간 등과 같은 물리적 환경, 타인과의 격돌, 따돌림, 부당한 대우, 규칙·규정·형식과 같은 사회적 관계, 끝이 보이지 않는 정치인들의 무능함, 사회적 갈등, 친인척의 죽음, 업무, 과로, 시험, 승진, 직업 상실 등과 같은 생활의 사건들, 수면 부족, 지나친 운동 등과 같은 생활양식 등은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결국 스트레스는 일상에서 맞이하는 삶의 일부이며, 삶이 있으면 함께 주어지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단기적으로, 그리고 그 정도가 과하지 않을 경우 가벼운 긴장을 유도하고, 활력을 주며, 주위 환경에 대한 집중력을 증가시키는 등 우리 몸에 필수적이며 유익하다. 또 강도 높은 스트레스라고 하더라도 필요할 때는 활성화돼야 한다. 그러나 스트레스는 일종의 고비용의 응급 반응이다. 따라서 신체생리가 ‘스트레스 모드’로 변화되는 것이 반복적이고 장기적으로 지속될 경우 신체는 전반적으로 일종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과다한 스트레스로 인한 결과는 위궤양, 소화불량, 고혈압, 당뇨병, 관상동맥 질환, 발기부전 등을 유발하거나 촉진한다. 불안감, 공포, 우울증, 불면증, 노이로제, 알코올 및 니코틴 탐닉 등의 심리적 질환 등도 초래할 수 있다. 고밀도 콜레스테롤(HDL)의 혈중 수치는 낮으면서 혈압과 혈당, 혈중 중성지방이 높고 복부비만이 수반되는 대사성 증후군도 전형적인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스트레스 반응 자체가 작동하지 않도록 하면 건강에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를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이다. 스트레스 반응이 잘 작동하지 않으면 먼저 주위의 자극이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정보 분석 및 판단이 어렵게 되어 결국 생존에 불리해진다. 위급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사소한 상황에서조차 오히려 고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 스트레스 반응이 작동하지 않았을 때 생길 수 있는 신체생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연구의 대상이다.

    스트레스 호르몬 코티졸 강력한 면역억제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은 매우 강력한 면역억제제다. 안약 등에 첨가되는 코티졸의 변이체인 덱사메타손은 강한 항염증 작용을 지닌다. 많은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감기에 잘 걸리거나 잠복하던 허피스 바이러스가 발동해 입술 주위가 헐게 되는 것을 경험한다. 더 나아가 일부 임상의들까지도 강한 스트레스와 암 발생의 상관성을 말한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일부 세포에 돌연변이가 일어나 암세포로 발전할 경우 건강한 상태라면 면역세포가 작동해 암세포를 퇴치하는 자연적인 방어 기능을 가지지만, 면역력이 떨어져 이 기능이 억제되면 암으로 나타나리라고 보는 것이다.

    미국 뉴욕 록펠러대학의 브루스 맥귄 박사를 포함한 연구자들은 실험동물을 이용한 연구를 통해 반복적인 스트레스가 대뇌의 신경세포를 손상시킬 정도로 해롭다는 사실을 밝혔다. 장기간 스트레스를 받은 쥐는 학습 및 기억 능력이 떨어지고, 학습과 기억에 중요한 해마나 전두엽 신경세포 수상돌기의 가짓수가 줄어들고 길이도 상대적으로 짧아지며, 심지어 신경세포 수가 줄어드는 증거들을 제시했다. 실험동물에 코티졸만 반복적으로 투여해도 해마의 신경세포에 손상을 주었다.

    스트레스와 뇌 건강

    스트레스는 뇌세포를 서서히 죽인다. 쥐의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부위의 신경세포 변화. 정상적일 때 밀집돼 있던 뇌세포들이 장기간 스트레스를 받자 상당수 죽어서 사라졌다.

    최근 다수의 연구자들은 2만~3만 개의 유전자를 고밀도로 집적한 DNA 마이크로어레이(microarray)를 이용해 대뇌에서의 유전자 발현 상황을 조사한 결과, 반복적인 스트레스를 가하면 뇌의 여러 부위에서 유전자 발현의 프로파일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런 변화를 보이는 유전자들 중에는 항산화 작용 등 신경세포의 생존에 중요하거나 시냅스 또는 신경세포의 신호 전달에 참여하는 유전자들도 있다. 이러한 유전자 발현의 변화들은 결과적으로 신경세포의 상호 교감을 비효율적으로 만들어 신경세포의 기능에 영향을 주거나 생존에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스트레스는 우울증의 주요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쥐와 같은 실험동물에 대해 물리적·심리적 스트레스를 가하면 행동학적으로 우울증 증상으로 해석되는 행동 특징을 보인다. 항우울증 치료제를 투여하면 스트레스에 의해 유도된 이런 증상들이 사라진다. 스트레스에 의한 우울증의 유발은 스트레스에 의한 해마, 중격측좌핵 및 편도체 등의 퇴행성 기능 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물 모델을 이용한 다수의 또 다른 최근 연구 결과들에 의하면, 과도하고 반복적인 스트레스는 대뇌에서 자유 래디컬(free radical)의 생성을 증가시키고, 신경세포막의 구성성분인 지질의 산화를 증가시킨다. 스트레스는 또 세포 내 항산화 작용을 담당하는 물질인 글루타치온의 농도를 감소시키고, 산화성 산소 및 질소화합물의 생성을 증가시킨다. 이 같은 변화들은 그 자체로 신경세포에 유해하거나 신경세포의 생존에 매우 불리함을 주는 상황이다.

    이밖에도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스트레스가 뇌중풍(뇌졸중) 발생의 가능성을 증가시키고(스트레스가 지속되면 혈관의 탄력성이 떨어지고 혈액 점성이 증가해 뇌중풍 발생의 확률이 커지며, 뇌의 신경세포에 해로운 활성산소를 증가시켜 뇌중풍 발병 시 신경조직의 손상 범위를 넓히는 등의 현상), 치매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트레스 완화는 운동으로

    사람들의 중요 관심사 중 하나는 과연 어떻게 스트레스를 조절할 수 있는가다. 스트레스 반응에 대한 과학적 연구나 생활 속의 경험 등을 고려할 때 다양한 스트레스 조절법이 있을 수 있다. 스트레스 완화에 대한 실제적 효과는 연구가 이뤄져야 할 부분이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방법들이 주장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스트레스 중화책의 하나는 운동이다. 운동을 통한 온몸의 생리적 활성화와 혈액순환의 증가는 스트레스에 의한 뇌신경계의 생화학적 변화 등을 정상화하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추측된다.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운동을 하는 사람보다 우울증 발생 빈도가 3~3.5배 높다. 그 기전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마도 스트레스의 완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적절한 휴식이나 오락, 취미생활도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러는 명상이 스트레스 완화에 좋다고 주장한다.

    종합해볼 때 비록 이러한 방법들을 지지하는 구체적인 증거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방법이 더 나은지, 얼마나 왜 더 나은지 등을 정량적 지표로 비교할 수 있으려면 앞으로 적극적인 신경생물학적 연구가 필요하다.

    스트레스의 조절은 삶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 조건이다. 스트레스가 여러 가지 질병의 위험요소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스트레스에 대한 연구는 국내외적으로 이제 생명과학의 주요 영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스트레스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머지않아 스트레스를 조절할 수 있는 효과적인 기술과 약물의 개발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삶의 질을 생각한다면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데도 사회적 동의와 투자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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