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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럽고 샘났던 한여름밤의 춤판

日 도쿠시마현 ‘아와 오도리’ 축제 … 신분·계급 잊고 거리 곳곳서 마음껏 흥겨움 발산

  • 도쿠시마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부럽고 샘났던 한여름밤의 춤판

부럽고 샘났던 한여름밤의 춤판

밝고 산뜻한 색상의 옷을 입은 랜(連)들이 펼치는 아와 오도리(우).

8월15일. 우리에게는 광복절이지만 일본인에게는 패전 기념일이다. 이날 일본 신문에는 ‘12시에 전몰자에 대한 묵념을 하자’는 정부 공고문이 실렸다. 8월15일의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해서일까?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함으로써 한국과 일본에서 가장 큰 뉴스를 만들었다.

이날은 일본의 ‘오봉절’이기도 하다. 농경사회 때의 여름 제사가 불교의 우란분절과 결합해 음력 7월15일을 오봉절로 정했다는데, 메이지(明治) 시절 양력을 도입하면서 양력 8월15일로 바뀌었다고 한다. 오봉절은 공휴일이 아니지만 학교는 방학이고 기업체는 일주일가량 휴가를 주므로 일본 최대의 연휴가 되고 있다.

일본은 네 개의 큰 섬으로 이뤄져 있다. 이 중 가장 작은 섬이 ‘시코 쿠(四國)’다. 우리나라에서 진돗개를 최고의 토종견으로 치듯, 일본에서는 시코쿠견(犬)이 이름 높다. 옛날 이 섬에는 아와(阿波)·토사(土佐) 등 네 개 나라가 있어 사국(四國)이 됐다는데, 이 나라들이 현재는 네 개 현(縣)이 됐다. 아와국은 지금의 도쿠시마(德島) 현이다.

100만명 이상 관광객 몰려들어

오봉절이 다가오면 도쿠시마 현의 수도인 도쿠시마 시에서는 일본 3대 축제 가운데 하나인 ‘아와 오도리’ 축제가 열린다. 도쿠시마 시의 인구는 26만명 정도. 그런데 오봉절이면 본토와 연결된 세 개 다리 등을 통해 100만 명 이상의 휴가객이 몰려들어 130여 만명이 즐기는 초대형 축제가 벌어진다.



아와 오도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하이던 하치스 가에마사(蜂須賀家政)가 1587년 도쿠시마 성을 지은 뒤 이를 자축하기 위해 신분과 격식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춤추며 놀게 한 데서 비롯됐다. 이 축제에 참여하는 팀을 ‘랜(連)’이라고 한다. 오봉절이 다가오면 도쿠시마는 물론이고, 전국에서 1000여 개 이상의 랜이 축제 참가를 신청한다.

아와 오도리에 참여할 수 있는 랜은 20개 정도. 따라서 980개가 넘는 랜을 탈락시키는 예선이 열리는데, 예선이 시작되는 한 달 전부터 도쿠시마 시는 축제에 들어간다. 지방 벽촌에서 열리지만 인기가 높다 보니 일본의 유명 기업들은 거액의 찬조금을 내고 자기 회사의 아와 오도리 랜을 출전시킨다.

부럽고 샘났던 한여름밤의 춤판

밝고 산뜻한 색상의 옷을 입은 랜(連)들이 펼치는 아와 오도리.

이렇게 해서 선발된 20여 개의 랜이 8월12일부터 15일까지 도쿠시마 시내의 간선도로를 막고 설치한 무대에서 아와 오도리 경연 대회를 펼친다. 일본 특유의 밝고 산뜻한 옷을 차려입은 랜들은 ‘짱까, 짱까, 짱까’를 거듭하는 단순한 리듬에 맞춰 손동작을 위주로 한 아와 오도리를 추며 도로를 행진한다.

남자 단원들의 허리춤에는 ‘효단’이라는 술병이 매달려 있다. 술병은 술을 마시려고 차는 것이니, 아와 오도리는 취무(醉舞)가 될 수밖에 없다. 적당히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무릎을 굽히고 상체를 낮추어 손목을 날렵하게 꺾는 동작을 반복하기에 집단 ‘취권무(醉拳舞)’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날만은 신분이나 계급을 잊고 ‘술과 춤으로 하나가 돼보자’는 철학은, 앞에 선 여성 소리꾼이 간드러지게 “야토사~(우리말의 ‘얼씨구’ 정도에 해당)”란 선소리를 외친 후 함께 부르는 단가(短歌)에 잘 표현돼 있다. “야토사~ 야토, 야토! 춤추는 바보에 바라보는 바보. 똑같은 바보라면 춤추지 않는 것이 진짜 바보지~. 숑숑~.”

탈락한 980여 개의 랜은 공식무대가 아닌 곳에서 행사에 참여한다. 시장통이나 네거리, 골목과 천변(川邊)에 모여 자기들만의 ‘난장’을 만든다. “춤추는 바보에 바라보는 바보. 똑같은 바보라면 춤추지 않는 것이 진짜 바보지~. 숑숑~.” 진득한 취성(醉聲)이지만 난장판이 되지 않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통제하지 않는 난장 한쪽의 도로에서는 차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어, 난장에서 빠져나온 사람을 숙소로 안전하게 보내주고 있었다.

이 행사의 클라이맥스는 한국이 제공했다. 김승일 교수가 이끄는 중앙대 무용과 학생들이 마지막으로 부채춤을 추면서 나타난 것. 일본식 산뜻함을 가볍게 눌러버리는 화려한 한복. 손목을 꺾는 ‘짱까, 짱까’ 스타일이 아니라 ‘휘그르르’ 돌아가다 활짝 핀 ‘부채꽃’ 때문에 열렬한 박수가 쏟아졌다.

중앙대 무용팀은 도쿠시마에서 한국 춤을 전파하고 있는 한국 무용가 김묘선(金昴先)씨의 주선으로 참가하게 됐다. 일본 스님들은 대부분이 대처승이다. 김 씨는 도쿠시마에 있는 대일사(大日寺) 주지인 오구리(大栗) 스님과 결혼해 이곳에 정착했다.

부럽고 샘났던 한여름밤의 춤판

본선에 진출하지 못한 랜들은 길거리에서 ‘난장’을 벌였다(좌).
일본인들로부터 갈채를 받은 중앙대 무용단의 부채춤(우).

한국 춤은 오랜 정지동작 끝에 기(氣)를 넣어 손끝의 한삼을 뿌리는 형태이기 때문에 강하고 폭발적이다. ‘짱까 짱까’형 춤만 춰오던 일본인들은 김 씨가 선보인 한국 춤에 매력을 느꼈다. 그로 인해 아와 오도리를 주최하는 ‘도쿠시마신문’이 2001년부터 한국 무용단을 초청하게 되었다.

아와 오도리가 끝난 후 대일사에 모인 한국 춤 관계자들이 뒤풀이를 했다. 일본인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데 성공했건만 이들은 일본 문화를 부러워했다. 호흡을 중시하며 폭발적으로 에너지를 뿜어내는 한국 춤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 때문에 자신 없는 사람은 선뜻 춤판에 끼어들 수가 없다. 반면 지겹도록 ‘짱까 짱까’를 반복하는 일본 춤은 만만해 보여 쉽게 따라할 수가 있다.

한국도 전 국민 묶어줄 축제 있었으면…

도쿠시마에서는 유치원에서부터 아와 오도리를 가르친다. 아와 오도리 시즌이 되면 대형마트를 비롯한 상점들은 ‘짱까 짱까’ 음악을 틀어준다. 그로 인해 이곳 주민은 누구나 아와 오도리를 추고 즐길 수 있게 됐다. 소도시임에도 130여 만명이 즐기는 전국적인 축제를 갖게 된 것이다.

한국의 지방엔 이런 문화가 없다. 전주대사습놀이를 제외하곤 전국적으로 주목을 끄는 지방민속 축제가 없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에서는 지방 축제로, 미국과 유럽에서는 지역에 연고를 둔 프로 스포츠팀 응원으로 이 욕구를 분출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분출구가 없어 때로는 촛불시위로, 때로는 길거리 응원으로 그 에너지를 폭발시킨다. 이젠 우리도 국민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지역 축제를 만들어갔으면 한다.”

일본인들은 8월15일을 훨씬 더 다양하게 즐기고 있었다.



주간동아 551호 (p54~55)

도쿠시마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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