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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구멍 뚫린 혈액관리

농협이 씨 뿌리고 당국이 키운 브루셀라 공포

정읍축협 감염된 임신우 분양이 화근 … 당국, 초기 진압 못해 소·사람 감염 확산

  • 당진·정읍=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농협이 씨 뿌리고 당국이 키운 브루셀라 공포

농협이 씨 뿌리고 당국이 키운 브루셀라 공포

브루셀라로 소 402두를 도축한 전북 정읍시의 E농장.

오후 3시 반, 용달트럭에 실려온 브루셀라 감염 소 두 마리가 마취주사를 맞은 뒤 차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소는 큰 눈을 껌뻑이며 다가올 운명을 예감한 듯 숨을 헐떡거렸다. 포클레인은 이 소들을 구덩이로 밀어넣었고, 그 위로 석횟가루와 흙이 뿌려졌다. 소의 형체가 보이지 않을 만큼 흙이 덮이자, 이를 지켜보던 축산업자 K 씨는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주간동아’ 424호가 전한 2004년 2월20일 전북 정읍시 신태인읍 매립장의 풍경이다. 당시까지 브루셀라에 감염된 것으로 공식 확인된 사람은 17명. 그들 중 12명이 정읍에 거주하고 있었다. 브루셀라 치료를 받기 전과 후에 142차례나 무차별적으로 헌혈을 한 A 씨도 정읍시에서 피를 뽑았다. 2002년 처음으로 환자가 발견된 후 4년 사이 브루셀라는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2002년 1명`→`2003년 16명`→`2004년 47명`→`2005년 158명).

브루셀라 감염자에게 “헌혈해도 괜찮다”

브루셀라는 선진국에선 거의 사라진 전염병이다. 축산대국 미국에서는 4개 목장을 제외하곤 소 브루셀라가 박멸됐다는 보고가 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 브루셀라가 창궐하고 있는 것이다. 브루셀라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까닭은 무엇일까? 2002년 12월 농협이 브루셀라에 감염된 소를 분양하면서 시작된 정읍시의 브루셀라 파동은 한국의 법정전염병 관리 실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소뿐 아니라 우리도 브루셀라에 걸렸다. 헌혈해도 되나?”



“괜찮다.”

정읍시에서 브루셀라에 감염된 K 씨는 헌혈 가능 여부를 묻는 감염자들의 질문에 당국자가 “헌혈을 해도 된다”고 말해 귀를 의심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 A 씨가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헌혈하지 말라”는 말이 전해진 시기는 그로부터 3개월가량 뒤라는 게 주민들의 얘기다. 또 다른 관계자는 “브루셀라에 감염되지 않은 부위는 먹어도 된다”고 말해 브루셀라에 감염된 E 씨가 그 당국자의 입에 쇠고기를 밀어넣기도 했다고 한다. 정읍시의 감염자들은 2004년 2월 “헌열 시 검사항목에 브루셀라를 추가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당시 대한적십자사의 답변은 이랬다.

“현재 브루셀라를 선별하는 데 유용한 통상적인 헌혈 혈액 검사가 없으므로 헌열지원자의 헌혈 적격 여부 판정 시 활용하는 문진 항목에 ‘브루셀라 관련 헌혈자 선별 기준’을 추가하고자 한다.”

문진은 실제로 강화됐을까? 브루셀라 감염 검사를 할 수는 없었을까? 전북대 백병걸 교수는 “브루셀라를 검사하는 데는 혈액 샘플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꼬집었다. 한나라당 박재완 의원은 “비용이 늘고 원활한 혈액 수급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전체 헌혈 혈액에 대한 검사가 현실적이지 않다면, 소 브루셀라가 많이 발생하는 특정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혈액에 대해서라도 브루셀라 감염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북 정읍시의 소, 사람 브루셀라 발병은 농협 산하의 정읍축협(현 순정축협)이 브루셀라에 감염된 임신우를 일반 농가에 분양한 게 주요 원인으로 확인됐다. 정읍축협은 2002년 12월16일~2003년 2월3일 8개 농장에 74두의 임신우를 분양했는데, 이 중 49%인 36두가 유산했다. 정읍시 E농장은 축협에서 구입한 임신우 33두 중 91%에 해당하는 30두가 브루셀라에 감염돼 새끼를 유산했고, 기존의 사육우들에게도 브루셀라가 전염돼 키우던 소 402두 모두를 도축해야 했다.

전북 최대의 목장이던 E농장은 현재 풀만 무성하다. 목장주 E 씨와 그의 부인도 브루셀라에 감염됐는데, E 씨의 부인은 확진을 받기까지 6번이나 혈액검사를 했다고 한다. “너무나 괴로워서 병원에서‘살려달라’고 외쳤죠. 그런데 검사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거예요. 지금도 자신이 어떤 병에 걸렸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농장은 막대한 손해를 보면서도 의심소를 한 마리도 유통시키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감염 소 2001년 754마리서 2005년 1만7690마리로

사람 브루셀라 발병 현황
구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3월
합계
1
16
47
158
28
250


소 브루셀라 발병 현황
연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1~5월
건수
131
110
172
711
2,590
1,194
두수
754
845
1,088
5,383
17,690
9,264
한우(건/두수)
4/71
5/183
62/590
595/

4,101
2449/

15,524
1,121/

8,199
젖소(건/두수)
127/684
105/662
110/498
116/1,282
141/2,166
73/1,065


브루셀라 감염 소는 754두(2001년)`→`845두(2002년)`→`1088두(2003년)`→`5383두(2004년)`→`1만7690두(2005년)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표2 참조). 한국은 전체 소를 브루셀라 검진대상에 포함하지 않고 있으며, 도축장과 가축시장에 출하되거나 농가에서 문전거래 되는 한우 및 육우 암소(암송아지도 포함)만을 대상으로 브루셀라 검사를 실시 중이다. 따라서 브루셀라에 걸린 소는 통계치보다 많다. 문제는 한우 및 육우 수컷은 브루셀라 검진대상에서 제외돼, 이들 소는 제대로 된 브루셀라 안전검사 없이 유통된다는 것이다. 브루셀라 감염 소는 도살해 땅에 묻도록 돼 있지만 브루셀라 감염 의심 소는 고기를 유통시킬 수 있다. 당진에서 만난 충남동물병원 정한영 원장의 말이다.

“수소도 검사를 해야 합니다. 현재는 브루셀라에 감염된 소가 시중에서 팔릴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정말로 끔찍한 일이죠. 생고기나 간 처녑을 날로 드시는 건 정말로 위험합니다. 젖소에서 갓 짜낸 우유도 반드시 피해야 하고요. 농장주뿐 아니라 수의사, 정육점 주인 등 쇠고기를 정기적으로 만지는 사람들도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정부는 브루셀라 살처분 보상 비용을 축소할 예정(현재는 시세의 100%를 보상금으로 지급하는데, 11월부터 시세의 80%, 내년 7월부터 시세의 60%로 줄이겠다는 것)인데, 보상금이 줄어들면 농민들이 브루셀라 발병 사실을 은폐하는 사례가 지금보다 늘어날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 보상금을 유지하자니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고, 보상금을 줄이면 브루셀라 감염 소 유통이 늘어날 수 있다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관계 당국이 머뭇거리는 사이 소 및 사람 브루셀라가 국민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취재진은 취재과정에서 “브루셀라에 감염된 소가 몰래 시중에 유통된다”는 얘기를 다수의 수의사와 농민들에게 전해 들었다. 소 브루셀라에 대해선 예방백신 투여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법정전염병인 브루셀라의 사람 및 소 감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동안 당국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소를 잘 키운다는 이유”로 석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한 E농장 주인 E 씨는 오늘도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고 소주를 들이켠다.



주간동아 546호 (p32~33)

당진·정읍=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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