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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과 자유 본능 모터사이클을 좋아해!

도시형 베스파, 근육질 할리 데이비슨 라이프 스타일과 패션 아이콘으로 질주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모험과 자유 본능 모터사이클을 좋아해!

모험과 자유 본능 모터사이클을 좋아해!
새털을 겨드랑이에 붙이고 에게해를 날았던 이카로스는 기계와 ‘합체’해 육체적 한계를 넘고자 했던 최초의 인간이다. 인간의 신체는 허약하기 그지없지만, 새처럼 날고 야수보다 빨리 달리려는 욕망은 너무나 강렬했다.

자동차는 이 같은 욕망을 가장 잘 구현한 기계지만, 결정적 단점을 갖고 있다. 실용성과 부의 과시라는 기능에 치중하다 보니, 자동차의 덩치가 날로 커져서 자유롭게 날 수 없게 돼버린 것. 게다가 차량 수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도로와 비싼 기름값이 현대인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이 두 가지 이유, 즉 자유로운 비행에 대한 인간의 꿈, 그리고 교통난과 고유가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만족시키는 기계가 바로 두 바퀴의 모터사이클이다. 2005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고유가로 2004년 모터사이클 판매량이 2000년에 비해 2배 정도 증가했으며, 특히 연비가 좋은 스쿠터는 같은 기간 3배 이상 더 팔렸다”고 보도했다. 2006년 4월 ‘뉴욕타임스’는 대표적인 모터사이클 제조사인 할리 데이비슨이 세계적으로 판매량이 증가해 매년 순이익을 갱신함에 따라 “월스트리트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라는 투자분석가의 의견을 실었다.

끔찍한 고유가 시대 매년 50% 이상 판매 증가

모터사이클의 르네상스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효성, 대림 등 국내 업체들이 매년 50% 이상 판매량을 늘렸으며, 모터사이클을 ‘폭주족’이나 ‘철가방’으로 연결시키던 인식도 어느덧 크게 바뀌었다. SBS 드라마 ‘루루공주’에 재벌가의 조신한 딸이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이 등장했고, MBC 드라마 ‘오버 더 레인보우’를 비롯해 모터사이클을 탄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는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현실 세계에서는 호텔 재벌의 상속녀 패리스 힐튼이 분홍색 스쿠터를 탄 모습이 파파라치들에 의해 목격됐고, 국내의 한 재벌 2세는 ‘모터사이클 마니아’로 외국의 모터사이클 전문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할리 데이비슨 코리아 이계웅 대표는 “모터사이클이 이동수단에서 패션 아이콘과 라이프 스타일로 바뀌고 있다”고 단언한다.



라이프 스타일로서의 모터사이클을 대표하는 것은 할리 데이비슨과 베스파. 할리 데이비슨과 베스파보다 더 성능이 뛰어난 모터사이클이 없지 않으나, 그런 것들은 ‘라이더(rider)’의 기질과 취향, 인생관에 대해서까지 설명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당신은 할리 데이비슨 타입인가, 베스파 스타일인가.

모험과 자유 본능 모터사이클을 좋아해!


하필이면 배기량 1450cc의 할리 데이비슨과 ‘겨우’ 125cc인 스쿠터 베스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이들이 상품명을 넘어 분명히 다른 두 가지 라이프 스타일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배기량이 서열을 이루는 자동차 세계와는달리 베스파는 할리 데이비슨에 ‘전혀’ 꿀리지 않는 경쟁자다.

클래식 스쿠터 브랜드인 베스파는 디자인 강국 이탈리아가 1940~60년대 ‘황금기’의 대표작으로 내놓는 ‘20세기 디자인 사(史)의 명품’ 중 하나다. 베스파를 개발한 피아지오사는 원래 비행기, 기차, 증기선 등을 만들다가 전후(戰後) 몰락한 이탈리아의 경제 상황에 걸맞은 운송수단으로 베스파를 탄생시켰다. 기체공학자 코라디노 다스카니오는 ‘말벌’(이탈리아어로 ‘베스파’는 말벌이란 뜻) 혹은 헬리콥터에서 베스파 형태를 가져왔는데, 이 기본 디자인과 메커니즘은 60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베스파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데는 1953년 영화 ‘로마의 휴일’ 덕이 컸다. 오드리 헵번이 탄 베스파는 왕실 생활에서 탈출한 공주의 ‘자유’와 ‘모험’ 그 자체였다. 서민뿐 아니라 ‘공주도 베스파를 탄다’는 것이 더 중요한 의미였지만, 어찌 됐건 ‘로마의 휴일’로 인해 1940년대 말까지 2000대에 불과했던 베스파는 1953년 말 무려 50만 대로 늘어났고, 60년대 영국 ‘모즈족’에 의해 현대의 패션 리더들에게로 넘겨졌다.

‘모던’에서 따온 모즈족은 아방가르드한 예술애호가이자 요란한 셔츠에 통 좁은 바지를 입던 당대의 돈 없는 개성파들이었다. 커다란 고글을 쓰고, 담배연기와 목도리를 날리며 좁은 골목을 누비던 모즈족의 모습을 최근의 미국 영화 ‘알피’ ‘아메리칸 파이’ ‘페넬로프’(개봉 예정) 등에서 점점 자주 보게 된다. 70년대의 1차 오일쇼크로 베스파는 아시아 등 세계적으로 더욱 큰 인기를 얻었다.

베스파가 우리나라에 공식 런칭된 것은 올해 5월1일. 세계에서 66번째이니 꽤 늦은 편이다. 여러 차례 수입이 시도됐지만 베스파를 생산하는 이탈리아 피아지오사가 ‘디자인 모방 가능성’ 등을 이유로 망설이는 바람에 무산돼 왔다고 한다. 그러나 런칭 즉시 1차 수입분 200대가 곧바로 다 팔려나가, 한국 공식 수입사 트리비코 측은 “베스파 마니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서울 압구정동에 본점을 내자마자 럭셔리 모터바이크 숍이 모여 있는 한남동에 2호점을 냈고, 내년 3월엔 젊은 층이 많이 모이는 홍대 앞과 지방 도시에 지점을 열 예정이다.

385만원인 주력 모델 LX125와 클래식 베스파의 디자인에 수동 기어가 달린 395만원의 PX가 인기 있다. 999대 한정 제작돼 5대가 수입되는 GT60은 880만원의 고가다.

뉴아메리칸 문화 vs 유럽의 자존심 상징

베스파의 공식 수입은 비교적 최근에야 이뤄졌지만, 베스파 라이더는 이미 3~4개의 동호회를 이루고 있을 정도다. 이들은 대부분 10~40년 된 중고 베스파를 애지중지하며 타고 다니며, 신형보다 70년대 후반에 나와 인기를 끈 빈티지 모델 ET3가 더 비싼, 마니아들의 세계다. 덕분에 국내 업체들에 의해 생산된 ‘베스파 풍’ 스쿠터들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베스파를 스쿠터의 보통명사로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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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호그’들의 랠리 모습.

할리 데이비슨은 1999년부터 공식 수입돼 현재 국내에 3000대 정도가 운행 중이다. 할리 데이비슨을 타는 라이더는 보통 ‘호그(H.O.G)’라 불리는데, 브랜드 충성도 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다. 할리 데이비슨이 미국에서 독점적 판매 지위를 누리다가 일본제 모터사이클에 시장을 빼앗기고 다른 기업에 합병되자 ‘호그’들이 랠리를 기획해 브랜드를 지켰고, 결국 경영권을 되찾아온 일도 있다. 이때 나온 슬로건이 ‘독수리는 홀로 비상한다’. 밀워키에서 ‘라이드 홈’ 행사가 열리면 전 세계에서 15만 명의 ‘호그’들이 모여드는데, 올해 8월 초에 열리는 ‘라이드 홈’에 한국에서는 영화배우 최민수 씨 등 35명의 ‘호그 코리아’가 참가할 예정이다.

할리 데이비슨 역시 ‘이지라이더’(1969)와 ‘터미네이터 2’(1991) 등 미국적인 영화를 통해 유명해졌다. ‘이지라이더’는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미국을 횡단하는 젊은이들을 통해 히피, 마약, 록, 섹스, 그리고 자유를 성찰하는 영화. ‘이지라이더’는 속도가 아니라 자유를 만끽한다는 할리 데이비슨의 아이디어를 가장 잘 보여준다.

‘터미네이터 2’에서는 기계인간 T800(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인간적인’ 심장박동 소리를 배기음으로 차용한 할리 데이비슨을 탄다. T800이 수로로 뛰어내리는 장면이 유명해진 이유는 할리 데이비슨 ‘팻보이’(모델명)가 워낙 ‘폼나게’ 보였기 때문. 할리 데이비슨 역시 구겐하임 미술관이 실물을 전시할 정도로 아름다운 오브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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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휴일’의 베스파. 1999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자선기금에 더해졌다

할리 데이비슨이 ‘뉴아메리칸 문화’의 상징인 데 비해 베스파는 가장 혁신적인(?) 문화를 낳은 유럽의 자존심이다. 할리 데이비슨에는 선글라스와 가죽바지, 징 박은 부츠가 필수품이고, 베스파에는 복고풍 고글과 날렵한 이탈리안 슈트나 라운드넥 티셔츠가 제격이다. 할리 데이비슨이 남성적이고 장거리 여행에 제격이라면, 베스파는 여성적이고 도시의 뒷골목을 누비기에 딱이다. 최민수, 박상민, 이종원, 캔의 배기성, 김현정 같은 스타들이 할리 팬이고 이정재, 주지훈, 윤은혜, 한가인, 고소영 같은 스타들은 베스파를 탄다.

할리 데이비슨과 베스파는 여러모로 대조적이지만, 라이더들에게서 비슷한 ‘기질’이 발견된다는 건 흥미로운 사실. 그래서인지 베스파가 어울릴 것 같은 ‘산울림’의 김창완 씨가 뜻밖에도 열혈 할리 팬이고, 서일대 연극과 신동인 교수처럼 ‘호그’이면서 베스파를 구입한 사람도 적지 않다.

모터 라이더들은 비슷한 기질

할리 데이비슨이나 베스파는 명성이나 가격에 비해 불편한 점이 많은 기계다. 일본제에 비해 잔고장도 적지 않은 데다, 고장이 없을 경우 튜닝이라도 하지 않으면 못 견디게 만든다. 모터사이클에 대한 규제가 많은 도로교통법 때문에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많다. 속도도 빠르지 않아 베스파는 보통 시속 40~50km로 달리고, 저속 토크 엔진을 장착한 할리 데이비슨은 시속 80~100km가 적당하다.

빈티지 베스파의 거래와 수리를 하는 ‘베스파 가라지’의 운영자이자 베스파 마니아인 박광진 씨는 “자동차에 비하면 베스파를 타는 것 자체가 무척 불편한 일이죠. 수시로 손봐야 한다거나, 고가도로를 가지 못하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랍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복잡하고 불편한 아날로그에 대한 옹호, 남과 같기를 거부하는 개성, 속도전에 대한 시니컬한 태도, 옆으로 난 샛길로 빠지고 싶은 끊임없는 호기심 같은 것들 때문에 할리 데이비슨과 베스파를 선택하는 것이다.

“원래 타깃은 20대 스쿠터족이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구입자 10명 중 8명은 베스파를 ‘이해’하는 중·장년층이었어요. 할리 데이비슨 소유자들이 특히 많다는 것도 예상 밖이었죠.”(트리비코베스파마케팅 담당 송지영)

그는 8월12일 W호텔에서 할리 데이비슨과 베스파를 함께 전시하는 공동 행사를 열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바이크 전문지 ‘모터바이크’ 이순수 편집장은 “할리와 베스파, 둘 다 꽤 터프하다. 허공에 신체를 내놓고 바람에 맞서 달리는 건 자동차 운전과 완전히 다르다”라고 말한다.

할리 데이비슨과 베스파를 꿈꾸는 모터사이클족은 똑같이 이카로스의 후예들이다. 두 브랜드 공히 이런 사람들을 위해 자동차를 넘어 ‘날기’ 위한 모터사이클을 만들었다. 새와 깃털을 상징화한 할리 데이비슨과 베스파의 엠블럼을 보고 가슴이 설레는 이유는 ‘명품’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당신은 네 바퀴 자동차 타입인가, 모터사이클 타입인가. 모터사이클 타입이라면 할리파인가, 베스파파인가.



주간동아 546호 (p60~62)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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