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4

2006.07.18

홈리스 월드컵 “진짜 월드컵 안 부럽네!”

해마다 참가국·응원단 늘어 열기 후끈 ... 빈곤 문제 이슈화·취업 자신감 ‘두 토끼 몰이’

  • 애들레이드=최용진 통신원 jin0070428@hanmail.net

    입력2006-07-14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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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리스 월드컵 “진짜 월드컵 안 부럽네!”

    전·후반 7분씩 진행되는 홈리스 월드컵의 경기 모습.

    호주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올려 분위기가 들뜬 호주축구계에 또 하나의 경사스러운(?) 일이 생겨 화제다. 빅토리아주의 멜버른이 2008년 월드컵 개최 도시로 선정된 것.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앞서 열리는 이 대회는 다름 아닌 ‘홈리스 월드컵’이다.

    홈리스 월드컵이란 전 세계 홈리스(home less)들이 모여 축구 경기를 벌이는 대회다. 홈리스 월드컵 참가선수의 자격 조건은 오랫동안 직업을 얻지 못한 실업자이거나 집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이는 상관없다.

    홈리스 월드컵의 경기 장소는 일반 축구 경기장과 다르다. 가로 14m, 세로 20m인 구장은 사방이 나무로 만든 벽으로 둘러쳐 있고, 바닥에는 시멘트가 깔려 있다. 선수들은 나무 벽을 활용해 공을 찰 수 있어 공의 움직임이 매우 빠르다. 그 때문에 민첩성이 필수. 경기시간은 전·후반 7분씩 모두 14분이다. 아직까지 한국은 홈리스 월드컵에 참가하지 않고 있다.

    올해로 4회째 ... 호주 2008년 대회 유치

    2003년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처음 시작된 홈리스 월드컵은 개최국을 달리하며 해마다 열리고 있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홈리스들이 선수가 되어 토너먼트로 시합을 벌인다. 매 대회 때마다 각국 대표선수들은 물론 이들을 응원하는 팬이 대거 몰려 열기가 진짜 월드컵 못지않다.



    지난해 에든버러에서 열린 대회는 본래 미국 뉴욕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참가선수 중 3분의 1이 미국 비자 발급을 거부당해 개최 도시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로 급히 바뀌는 해프닝 끝에 열렸다. 그러나 모두 27개국 217명의 선수들이 경기에 참여했으며, 전 세계 5400여 명의 홈리스들이 곤궁한 형편임에도 직접 에든버러를 찾아와 열띤 응원을 펼쳤다.

    홈리스 월드컵의 열기는 해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올해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9월24일부터 30일까지 열릴 예정. 모두 48개국이 참여한다. 이 기간 동안 전 세계 1만여 명의 홈리스들이 케이프타운을 방문할 것으로 주최 측은 예상하고 있다.

    홈리스 월드컵에 대한 열기가 뜨겁자 개최국 선정 경쟁도 치열해졌다. 2008년 제6회 대회 개최국 선정을 놓고 영국과 이탈리아, 스위스, 호주가 치열하게 경합했다. 이 같은 경쟁을 뚫고 7월1일 호주가 개최국으로 선정됐으니 호주 안에서 화제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 홈리스 월드컵 공동창시자이자 홈리스월드컵협회 의장인 멜 영 씨는 “홈리스 자활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는 멜버른 시당국의 노력이 개최도시로 선정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밝혔다.

    홈리스 월드컵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두 명의 공동창시자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오스트리아 시민운동가인 멜 영과 헤럴드 쉬마이드가 그 장본인이다. 쉬마이드는 과로한 탓에 제1회 대회가 열리기 한 달 전 심장마비를 일으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홈리스 월드컵 개최국과 우승국가
    년도 개최국 우승국
    2003년 오스트리아 그라츠 오스트리아
    2004년 스웨덴 예테보리 이탈리아
    2005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이탈리아
    2006년 남아공 케이프타운  
    2007년 덴마크 코펜하겐  
    2008년 호주 멜버른  


    홈리스 월드컵의 개최 목적은 축구가 갖는 단합과 열정의 힘을 통해 홈리스 문제와 빈곤 문제를 국제적인 이슈로 만들고, 대회를 통해 참가자들이 빈곤 극복에 대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현재 홈리스 월드컵의 주요 후원자는 홈리스 실태를 전 세계에 알리고 있는 언론사 ‘The Big Issue’와 ‘Street Newspapers’ 이다. 이 밖에도 나이키, 유럽축구연맹(UEFA),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유명 프로축구클럽과 루이스 피구, 리오 퍼디낸드 등 세계적인 유명 축구선수들이 적극 후원에 나서고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홈리스 월드컵 홈페이지(www03.streetsoccer.org/ en/home)에 “나를 포함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은 홈리스 월드컵을 지지한다”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홈리스 월드컵 “진짜 월드컵 안 부럽네!”

    홈리스 월드컵에 참가한 일본 축구대표팀. <br>아직 한국은 참가하지 않고 있다.

    홈리스 월드컵에 참가한 홈리스들의 ‘재활 성적표’는 매우 우수하다. 주최 측은 참가선수 중 다수가 대회가 끝난 뒤 홈리스 생활을 청산하고 직업을 찾았다고 밝히고 있다. 일례로, 제3회 홈리스 월드컵에 참가한 217명 중 80명의 선수가 대회가 끝난 뒤 정규직으로 취업했으며 91명의 선수는 마약과 술을 완전히 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 대회에 영국팀 선수로 참가했던 게리 화이트사이드 씨는 “홈리스 월드컵을 통해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선수 상당수 참가 후 취업하고 마약 끊어

    호주의 홈리스 월드컵 축구팀 이름은 ‘스트리트 사커루’. 2004년 결성되어 자선단체들의 도움으로 매년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선수들 대부분이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 빠졌거나, 홈리스 생활을 다년간 한 사람들. 지난해 호주팀 대표선수로 3회 대회에 참가했던 마틴 휴 씨는 “축구에 대한 도전 정신은 대회가 끝난 뒤에도 이어져 동료 선수들 대부분이 지금은 사회생활을 잘 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2008년 멜버른에서는 홈리스 월드컵 대회 기간과 비슷한 시기에 ‘국제홈리스컨퍼런스’가 열려 홈리스 문제를 연구하는 국제 관계자들이 대거 호주를 방문할 예정이다. 빅토리아주는 전 세계 홈리스 월드컵 축구팀의 훈련을 위해 발라라트, 질롱, 세파파톤 등지에 축구훈련장을 새로 건설한다는 계획. 이와 같은 호주정부의 적극적인 대회 유치 및 준비에 대해 호주인들은 “호주에서는 이번 독일 월드컵 못지않은 또 다른 축구 열기가 이미 시작된 느낌”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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