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8일 GM대우차의 첫 스포츠유틸리티차량인 윈스톰 신차 발표회에서 닉 라일리 사장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지난해 이후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이하 GM대우차)와 관련된 소식이다. GM대우차의 확실한 ‘부활’을 알리는 잇따른 경사다.
GM대우차의 부활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무엇보다 경영난 때문에 GM대우차를 떠났던 근로자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스러운 나날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또 2002년 10월 GM대우차 출범과 함께 사장으로 부임한 뒤 당시 41만 대에 불과하던 판매대수를 지난해 115만 대로 끌어올린 닉 라일리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의 노력도 과소평가할 수 없다.
특히 라일리 사장은 노조원을 비롯한 직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호감을 샀다. 축구 종가인 영국 웨일스 출신답게 그는 직원들과 축구 경기를 즐길 뿐 아니라 때론 소주잔을 함께 기울이면서 격의 없이 대화하기를 좋아한다.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는 ‘폭탄주’를 먼저 제조해 돌리고 2차로 노래방까지 동행하는 등 한국의 ‘술 문화’에 완전히 동화됐다.
‘윈스톰’ 이어 하반기 ‘토스카’ 시판
그러나 최근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는 “GM대우차가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아직 이르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들은 “남의 집 잔치에 재를 뿌리는 일 같아 조심스럽긴 하다”면서도 “GM대우차의 부활은 속 빈 강정”이라고 단언한다.
이들이 GM대우차의 부활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GM 판매망을 이용한 수출이 늘어나면서 전체 판매대수가 증가하고 있으나 내수시장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영업활동보다는 재무활동에 의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산별 노조로 전환한 노조의 향배도 관심사지만 현재로선 속단하기 힘들다.
먼저 상반기 실적부터 따져보자. GM대우차는 올 상반기에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4.4% 증가한 총 73만3420대를 판매했다. 수출 실적이 같은 기간 49.1%나 증가한 데 따른 결과다. 같은 기간 국내 완성차 5개 사 전체 실적이 16.6%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기록이다. GM대우차 다음으로 높은 증가율을 보인 르노삼성차의 30.2%와 비교해도 무려 14.2%포인트가 높다.
그러나 내수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GM대우차는 올 상반기 5만5597대를 팔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0%의 미미한 증가율을 보였다. 이는 국내 5개 완성차 업체의 올 상반기 내수 판매대수 증가율(5.0%)보다 낮은 기록이다. 그나마도 마진율이 낮은 경차(마티즈)와 소형차(칼로스, 젠트라) 비율이 40.2%이고, 준중형 라세티까지 포함하면 54.2%나 된다.
업계 관계자는 “내수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최근 GM대우차의 내수시장 점유율(10% 안팎)은 외환위기 당시의 10%대 후반과 비교하면 ‘심각한’ 상태”라면서 “내수 기반이 없는 자동차 회사는 모래성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GM대우차도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GM대우차 관계자는 “GM대우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해 예약 고객이 차를 운전해볼 수 있는 ‘체험 마케팅’을 도입하는 등 내수시장 공략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올해 출시한 토스카와 윈스톰의 경우 고객이 불만을 제기하면 언제든 환불이 가능한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기 때문에 한번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에 넘쳐 있다”는 것.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윈스톰 출시가 GM대우차의 문제를 잘 보여준다고 말한다. 국제유가의 고공 행진과 국내 경유 값 인상으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대한 인기가 한풀 꺾이고 있는 시점에 출시한 것을 두고 하는 얘기다. 한 경쟁업체 관계자는 “GM자동차는 회의가 많고 의사 결정이 느려 ‘GM이 General Meeting의 준말’이라는 비아냥거림도 듣는데, 윈스톰의 경우가 꼭 거기에 해당된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이어 “GM대우차가 품질이나 애프터서비스 등에서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게 내수 부진의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GM대우차는 내수 부진을 수출로 만회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원화값 급등으로 수출도 효자 노릇을 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렇다면 GM대우차는 어떻게 해서 지난해 수익을 낼 수 있었을까. 지난해에 감사보고서를 분석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GM대우차는 지난해 7조5313억원의 매출을 올려 65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그러나 영업손실이 288억원으로, 회사의 정상적인 영업활동에서는 이익을 내지 못했다.
내수시장 점유율 10% 안팎
GM대우차가 가장 괄목할 만한 실적을 올린 부문은 환율 변동으로 인한 리스크 헤징이었다. GM대우차는 지난해 이를 통해 ‘장부상’으로 무려 6049억5400만원을 벌어들였다(표 참조). GM대우차보다 2배 이상 수출이 많은 현대차의 같은 이익이 5655억1700만원인 것에 비하면 놀라운 기록이다(이는 반대로 현대차의 리스크 헤징 기법이 GM대우차에 비해 떨어진다는 얘기도 된다). GM대우차가 이런 실적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원화값 강세를 예상하고 미리 달러를 매도하는 선물환 계약을 체결해놓았기 때문이다.
GM대우차는 또 감사보고서에서 ‘자본조정에서 매출로 대체된 평가이익은 4211억4700만원’이라고 밝혔다. 이를 검토한 한 중견 공인회계사는 “이는 재무활동에서 비롯된 이익이 영업 쪽에 숨어 있다는 뜻으로 그만큼 영업손실이 줄어들었다는 얘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해서 GM대우차가 차지하는 위상까지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무엇보다 고용을 유지하고 수출에 기여함으로써 한국 경제에 힘이 되고 있다. 또 공장이 풀가동 체제에 들어감으로써 GM대우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들이 활기를 되찾았다. 소비자들은 GM대우차가 내수시장에서도 살아나 현대·기아차와 선의의 경쟁을 통해 한국 자동차 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해주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