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희라, 채시라, 유호정, 심혜진(좌측부터)
형사인 남편(유오성)은 휴가도 없이 범인 잡는 일에 여념이 없다. 범인을 체포하다 다친 그는 유급휴가를 받아 오랜만에 집에 들어간다. 그러나 찾아간 집에는 딴 여자가 살고 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내(채시라)가 이사를 간 것이다. 그리고 이사한 집에서 만난 두 아이는 아버지를 손님 보듯 한다. 7월5일 방송을 시작한 KBS 수목 미니시리즈 ‘투명인간 최장수’의 첫 회분은 이렇다.
일에 파묻혀 가정에 소홀한 남편과 이혼한 뒤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아내 이야기가 극의 주된 내용. 아내는 남편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사실을 안 뒤 다시 남편에게 돌아간다. 이 드라마의 시청자 타깃은 철저히 기혼, 특히 30, 40대 여성에게 맞춰져 있다.
30, 40대 여성을 겨냥한 드라마들이 안방극장에서 득세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10, 20대를 겨냥한 ‘트렌디 드라마’에 밀렸던 ‘아줌마 드라마’가 다시 힘을 내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드라마로는 MBC가 7월17일부터 방영할 아침드라마 ‘있을 때 잘 해’가 꼽힌다. 이 드라마에서는 바람둥이 남편과 이혼한 뒤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는 여성(하희라)의 삶이 그려진다.
미국 ABC 방송의 인기 TV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의 한국판으로 방송 전부터 눈길을 끌고 있는 MBC 새 미니시리즈 ‘발칙한 여자들’(가제)도 30대 주부의 생활과 사랑을 다룬 대표 드라마가 될 예정이다. 7월29일 첫 방송할 ‘발칙한 여자들’은 바람난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이혼당한뒤 복수의 칼을 가는 여자(유호정)의 ‘생활과 사랑’이 극의 흐름을 구성한다.
신세대도 아니고 구세대도 아닌 40대 주부의 삶을 빙의라는 독특한 소재로 포장해 전달하는 SBS 수목 미니시리즈 ‘돌아와요 순애씨’역시 30, 40대 주부층을 겨냥하고 있다. 12일부터 방송될 이 드라마는 억척스러운 40대 주부 순애(심혜진)와 청순한 20대 스튜어디스 초은(박진희)이 교통사고로 인해 영혼이 뒤바뀌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이 주된 내용이다.
이처럼 30, 40대를 겨냥한 드라마들이 봇물을 이루는 현상은 당분간 단발성 트렌드가 아닌 안방극장의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을 것 같다. 여기에는 대중매체와 드라마 환경의 급변에서 오는 구조적인 상황이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드라마의 주 소비층이자 여론 주도층이었던 10, 20대들의 드라마 외면현상이 심화하면서 이들을 내세운 트렌디 드라마가 퇴조했기 때문이다.
30, 40대 여성 드라마들의 주요 모티브는 여성의 사랑이나 주부의 삶이다. 하지만 많은 드라마들이 일상성과 현실성이 거세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게다가 사회가 다원화하고 변화하면서 부부 결별과 이혼 뒤 모습이 다양해지고 있는데, 이들 드라마는 천편일률적인 삶만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가족 해체의 원인은 곧 ‘남성의 외도나 가정에 대한 무관심’, 이혼 후 여자의 진정한 자아실현은 곧 ‘새로운 사랑의 시작’과 같은 틀이 공식화·박제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는 사회와 수용자의 변화된 모습까지 현실적으로 담보할 때 시청자를 사로잡을 수 있다. 소비층이 30, 40대 여성이라면 그에 걸맞은 눈높이와 콘텐츠가 필요하다. 시청자들의 눈과 가슴을 사로잡지 못하는, 시청자들의 인식변화를 현실감 있게 담아내지 못하는 드라마는 생명력을 갖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