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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민심의 쓰나미’와 ‘민주 국민’

  • 서병훈 숭실대 교수·정치학

‘민심의 쓰나미’와 ‘민주 국민’

‘민심의 쓰나미’와 ‘민주 국민’
‘씨원-하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집권당에서는 곡소리가 드높지만 국민들은 좋기만 하다. 순자(荀子)도 말했듯이, 물이 배를 띄우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 뒤집기도 한다. 국민을 그저 물로만 여겼으니 그 물맛 한번 제대로 봐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물을 너무 먹였나, 정치권 전체가 정신을 못 차린다. “선거 개표방송을 바라보며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는 표현은 분명히 열린우리당 쪽에 해당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환호작약하고도 남을 법한 한나라당이 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표정 관리 차원에서 그러는 것일까? 2002년의 쓰라린 경험 때문에 신중한 행보를 보이는 것일까?

그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자신들이 예뻐서 국민들이 표를 몰아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한나라당 스스로가 더 잘 안다. 집권당은 ‘무능’에다 ‘얼치기 좌파’에 ‘인간에 대한 예의 부족’(점잖은 자리에서 ‘싸가지 없다’는 말은 차마 못하겠다)까지 3박자를 골고루 갖췄다. 그러니 유권자들에게서 내팽개침을 당해도 이상할 것 하나도 없다.

그럼 한나라당은 얼마나 나은가? ‘차떼기’로 압축되는 부패와 비리, 각종 추문의 원조가 바로 한나라당 아닌가? 엄밀하게 말하면 오십보백보다.

그런데도 ‘민심의 쓰나미’는 열린우리당에만 집중됐다. 개표방송을 보면서 한나라당이 경악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순간에 처지가 바뀔 수도 있었던 것이다. 집권당을 쓸어버리듯, ‘다음은 너야!’라며 경고음을 내는데 어찌 무섭지 않겠는가. 더구나 탄핵 민심에 궤멸 일보 직전까지 갔던 것이 불과 2년 전 아닌가. 민심이라는 물이 어느 순간에 배를 뒤집을지 모른다.



유권자들의 시선이 싸늘하기는 다른 정당도 매한가지다. 기성 정당에 대한 불신이 위험수위를 넘었다. 그러나 정당이 없으면 정치도 없다. 이것이 중요하다. 밥을 먹으면서도, 술을 마시면서도 정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한국 사회다. 그런데도 정작 정치는 실종 상태다. 정치 없는 곳에서는 민주주의도 살지 못한다. 한국 민주주의가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한국 정치가 실망스러운 모습을 띠는 데 대한 1차적 책임은 두말할 나위 없이 정치인에게 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모두 다 썩었다고 개탄하지만, 웬만한 나라에 비해 그리 처지는 것도 아니다. 총체적 거부를 당할 정도는 더욱 아니다. 문제는 유권자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정치인에 대한 기대치도 상승한다는 데 있다. 기대가 크니 실망도 커지는 것이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정당정치는 오히려 위축된다. 민주주의도 활력을 잃게 된다. 심각한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정당마저 내팽개치는 데 익숙 … 싹 키우는 여유 가져야

한국 정당은 거듭나야 한다. 이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다고 민심이 이쪽저쪽 오가면서 수시로 쓰나미로 쓸어버리면 정당은 살지 못한다. 아무리 못마땅해도 정당이 있어야 정치가 된다. 3~4년 하고 정당 간판을 내려야 하는 곳에서는 정당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없다. 선거 때마다 정당이 생기고 스러져 가는 후진적 현상은 이쯤에서 끝나야 한다. 우리도 수십 년 연륜을 자랑하는 정당을 가져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자면 싹을 키우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마음이 내키지 않더라도, 그럴수록 더 냉철하게 ‘미워도 다시 한번’을 불러야 한다.

강금실 후보가 마지막 유세방송에서 한 말이 자꾸 귀에 남는다. 강 후보는 떨리는 목소리로 “여러분의 선택이 정당이 아니라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호소했다. 집권당의 후보가 당이 아니라 자신을 보고 찍어달라는 것이다. 그런 정당은 정당이 아니다. 그걸 보고 덩달아 두려워하는 정당도 정당이 아니다. 이성적으로 분별하고 키우기보다 내팽개치는 ‘씨원함’에 맛을 들이면 민주 국민이 될 수 없다. 패자가 열린우리당 하나로 끝났으면 좋겠다.



주간동아 539호 (p104~104)

서병훈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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