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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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이루마 “전 변했고, 음악도 복잡해졌어요”

7월에 해군 입대 … “제대 후 영화 직접 만들고 사업도 할 거예요”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6-05-04 17: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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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곡가 이루마 “전 변했고, 음악도 복잡해졌어요”
    영국에서 대학 다닐 때부터 언젠가는 군대에 갈 거라고 생각해왔어요. 새삼스럽게 결심한 건 아니고요. 아버지는 잘 생각했다고 하시는데 아무래도 어머니가 걱정이 되시나봐요.”

    이루마(28)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말보다 훨씬 더 복잡해 보였다. ‘생각이 많아서인지’ 요즘 잠이 잘 안 온다고 했다. 그는 7월10일 해군에 입대할 예정이다. 열 살 때 영국으로 이민 간 그가 영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굳이 입대한다는 사실은 한동안 화제가 됐다. 그리고 4월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이루마의 ‘페어웰(Farewell) 콘서트’는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기획사 측은 원래 3층인 세종문화회관의 1, 2층 객석만 열려고 했으나 너무 빨리 예매가 진행돼 3층 티켓까지 판매했다고 한다. 서울과 부산, 광주창원을 거친 그의 고별 연주는 5월12일과 13일, 14일에 울산, 대전, 대구로 이어진다.

    “이중국적이 허용되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한국에서 활동을 하려면 군대를 다녀와야 하잖아요. 그렇지만 꼭 그 이유 때문에 군대에 가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에요. 저는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질 않아서 남들처럼 학교 동기나 선후배가 없어요. 5년간 활동하면서 친구도 선후배도 많이 생겼지만 그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벽이 있어요. 학교로 엮어지지 않는 이상, 마음을 터놓는 친구나 선배를 만나려면 둘 중 하나가 뻗을 때까지 술을 먹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웃음) 남자들의 세계에 완전히 들어갈 수 없다는 외로움 같은 게 군대에 가게끔 결심하게 만든 이유이기도 해요.”

    서울서 매진 페어웰 콘서트 전국 투어

    이루마는 육군이 아닌 해군에 지원했다. 그 때문에 한동안 ‘이루마가 해병대에 간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음악인 중에 해군 출신이 많아서 그 역시 자연스레 해군에 가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입대해서는 해군 홍보단에 소속돼 활동하게 된다. 이루마는 “해군 홍보단 간다니까 아는 형이 ‘트로트 300곡 외워 가라’고 하더라”며 웃었다.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들어가면 ‘우와~ 이곳에 오신다면서요? 제가 잘 해드릴게요^^’ 같은 해군 소속 군인의 쪽지를 받기도 한다고. “말은 그렇게 해놓고, 제가 신병으로 들어가면 그런 고참들이 더 ‘갈굴’지도 모르겠어요. 하하하~.”



    2001년 데뷔한 이래 이루마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라는 참으로 드문 길을 걸어왔다. 영국에서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지만 대중과 호흡하는 그의 음악은 클래식과는 거리가 있다. 2집 ‘퍼스트 러브’에 실린 곡 ‘When the love falls’가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최지우의 테마곡으로 사용되면서 유명세를 탄 그는 그 인연으로 윤석호 PD의 ‘여름향기’와 ‘봄의 왈츠’ O.S.T 작업에도 참가했다. 작곡과 연주, 드라마와 영화음악 작업은 물론이고 가끔은 가요나 힙합을 작곡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에세이집 ‘이루마의 작은 방’도 낼 만큼 그의 활동은 전방위적이다.

    그러나 이루마는 자신이 ‘뉴에이지 피아니스트’라고 소개되는 게 싫단다. “저는 한 번도 피아니스트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남들보다 피아노를 잘 친 것도 아니고요. 그냥 누나들이 피아노를 배우니까 따라서 배운 거지요. 그리고 전 결정적으로 무대공포증이 있어서 그걸 극복하는 게 너무도 힘들었어요. 제 자신을 소개할 때는 항상 ‘작곡가’라고 말해요.”

    이루마가 무대공포증? 그건 좀 의외다. 그는 지금껏 세종문화회관 같은 초대형 연주회부터 정미소 같은 소극장까지 무수한 무대에 서왔다. 연주음악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주말 밤에 TV 채널을 돌리다 교육방송(EBS)의 ‘스페이스-공감’ 무대에서 연주하는 그의 모습을 한번쯤 보았을 법하다(이루마는 ‘스페이스-공감’의 단골 출연자다). 객석에서 손을 뻗으면 무대가 닿을 정도로 작은 공연장에서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며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의 모습은 꽤 인상적이다. 차분하고 붙임성 있는, 그러면서도 예술적 영감이 넘치는 친구를 보는 것 같다.

    작곡가 이루마 “전 변했고, 음악도 복잡해졌어요”

    EBS의 ‘스페이스-공감’ 무대에서 연주하는 이루마. 그는 이 프로그램의 단골 출연자다.

    “해가 갈수록 무대에서 이야기하기가 힘들어져요. 관객들에게 곡에 대한 설명을 지루하지 않게 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다른 무대에서 하지 않은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요. 요즘 라디오 방송을 진행해서 그나마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만년 미소년 같은 해맑은 인상. 그러나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그가 남다른 의지와 야망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궁극적으로 뭘 하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에-이런 질문에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영화음악을 해보고 싶어요’ 같은 대답을 한다-그는 “영화를 직접 만들고 싶고, 사업도 할 거예요”라고 말한다. “아무리 연습해도 제 연주에 만족할 수가 없어서 직접 곡을 쓴 것처럼, 어떤 영화도 제가 생각하는 그림과 딱 맞아떨어질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예 영화도 만들고 그 영화에 맞는 음악도 작곡하고 싶어요.” 의지가 강한 남자일수록 현실에 부딪힐 때의 갈등도 큰 법이다. 그는 지금 그런 갈등과 모색의 순간을 맞고 있는 듯했다.

    그의 갈등은 바로 음악에 투영돼 나오고 있다. 4집 ‘포에뮤직 Poemusic’의 이루마는 더 이상 순수하거나 투명하지 않다. 욕심껏 베이스와 드럼까지 끌어다 썼다는 그의 음악은 치열하고 현란하며 일견 어둡기도 하다. “4집을 내놓은 뒤 음악이 변화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1집이나 2집에 비해 감미롭지 않다고도 하는데 다 맞는 말이에요. 그게 지금의 제 모습이거든요. 어떻게 사람이 평생 순수할 수만 있겠어요. 저는 변했고 복잡해졌어요. 음악도 그런 제 모습을 담고 있는 거고요. 하지만 제 마음만은 그대로예요. 더 나은 음악을 쓰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죠. 아주 새로운 음악을 써서 통영국제음악제 같은 현대음악 페스티벌에 발표해보고 싶기도 해요.”

    기자는 4년쯤 전에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루마를 만난 적이 있다. 채 소년티를 벗지 못했던 그는 자신의 음악에 대해 설명하며 “아직 사랑다운 사랑을 못 해본 내가 사랑에 대한 음악을 쓰는 게 부끄럽기도 하다”고 말했었다. 그로부터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젖살이 빠지지 않았던 그의 얼굴에는 분명한 윤곽선이 생겼다. 그 얼굴에 가끔씩 보일 듯 말 듯한 그늘이 진다. “곡이 써지지 않을 때도 있지요. 그럴 때는… 음… 그냥 쉬어요. 언젠가 음악이 다시 오겠지 하면서요. 지금이 바로 그럴 때예요. 하지만 조급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음악도 인생도요.”

    사진을 찍기 전 그는 “잠을 못 자서 얼굴이 엉망이다”며 머뭇거렸다. 그러나 만년 미소년일 것 같던 그는 남자다워졌다. 그리고 예쁘장한 꽃미남이었던 4년 전보다 지금의 그, 눈이 충혈되고 머리도 부스스한 지금 이루마의 모습은 훨씬 더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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