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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만 봐도 ‘척’, ‘착’ 붙어서 미행, 범죄 순간에 ‘확’

남대문경찰서 소매치기전담반의 잠복근무 24시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행동만 봐도 ‘척’, ‘착’ 붙어서 미행, 범죄 순간에 ‘확’

행동만 봐도 ‘척’, ‘착’ 붙어서 미행, 범죄 순간에 ‘확’

남대문서 소매치기전담반 오연수 팀장(가운데)과 팀원들이 남대문시장에서 소매치기 검거 활동을 벌이고 있다.

“아이고, 또 나오셨구먼.”

“아, 예. 안녕하세요. ○○할머니는 오늘 안 보이시네요.”

서울 남대문경찰서 오연수(42) 경위와 안경복·인승룡 경사, 이수배 경장은 남대문시장의 ‘단골손님’이다. 쉬는 날을 제외하고 매일 오후 시장에 나오기 때문. 덕분에 상인들과도 거의 안면을 트고 지낸다. 기자와 동행한 4월25일, 오 경위는 ‘달러 할머니’들과 인사 나누는 것으로 이날의 업무를 시작했다.

이들은 남대문서 ‘소매치기전담반’ 소속으로 행인들 사이에 숨어 있는 소매치기를 잡아내는 것이 주요 임무다. 이들은 매일 6~7시간씩 남대문시장, 명동 거리, 롯데백화점, 인파로 붐비는 버스정류장이나 지하보도 등을 천천히 배회하며 행인들을 관찰한다.

“소매치기는 얼굴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잡아냅니다. 일반인들과 달리 잰걸음으로 걷고 눈동자가 빨리 움직이죠. 시선도 허리 부위를 향해 있습니다. 성추행범과 행동 유형이 비슷한데, 단 범행 대상자에게 접근할 때 성추행범은 가방을 메지 않은 쪽으로, 소매치기는 가방을 멘 쪽으로 다가간다는 게 차이점입니다.”(오연수 경위)



시장·백화점 주무대 … 8개월간 11명 검거

남대문경찰서에는 유독 소매치기가 많이 잡혀 들어온다. 관할구역 내에 남대문시장과 명동 쇼핑거리, 대형 백화점 등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 다수 포함된 까닭이다. 소매치기전담반은 지난해 7월 말 오 경위가 남대문서로 발령 받으면서 새로 생겼다. 그는 경찰에 입문한 1990년부터 남대문서, 서울지방경찰청 소매치기전담반 등에 근무하며 주로 소매치기 검거 활동을 벌여왔다. 지난해 전문수사관 제도가 처음 도입되면서 15개 분야 92명이 전문수사관 인증을 받았는데, 소매치기 전문수사관은 오 경위가 유일하다.

전담반이 가동된 지난 8개월 동안 모두 11명의 소매치기가 검거됐다. 적은 수라고 여기기 쉽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소매치기는 범행 특성상 범행 현장에서 발각되지 않으면 잡기 힘들다. 살인이나 강도와 달리 사건 현장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소매치기는 불과 1~2초 사이에 벌어지는 ‘깜짝’ 범죄다. 소매치기를 당한 사람조차 한참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지갑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을 정도다.

과거 남대문서에 잡혀 들어오는 소매치기는 시민들이 현장에서 범행을 목격하고 붙잡은 ‘우연의 산물’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오 경위는 전담반을 꾸린 뒤 매일 범행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소매치기를 색출해내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검거된 10명은 이러한 ‘아날로그식’ 노력의 산물이다.

“오랫동안 소매치기를 잡다 보니 행동거지만 봐도 소매치기일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용의자’를 발견하면 조용하게 미행을 합니다. 남의 지갑에 손을 대는 순간 덮치는 거죠.”

4월18일 남대문시장 내 대도수입상가에서 딸의 혼수용품을 마련하러 온 중년여성의 700만원이 든 지갑을 훔친 박모(47·여) 씨도 이렇게 해서 잡혔다. 이 수입상가는 복도 너비가 1m가 채 되지 않을 정도로 비좁아 붐비는 시간에는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걸을 수밖에 없다. 고가 물품을 파는 곳이라 고액의 현금을 들고 오는 손님들도 많은 편. 소매치기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인 셈이다. 오 경위는 일주일에 두세 건씩 소매치기가 발생한다는 상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 상가를 집중 순찰하다 박 씨를 잡는 데 성공했다. 박 씨는 1997년 역시 남대문경찰서에 검거된 적이 있는 전과 6범의 전문 소매치기로, 10년 동안 한 번도 적발되지 않아 소매치기들 사이에서 ‘10년 무사고’로 불리던 인물이다.

행동만 봐도 ‘척’, ‘착’ 붙어서 미행, 범죄 순간에 ‘확’

사람들이 붐비는 버스정류장도 빼놓지 않는 순찰지역이다.

소매치기는 단순한 좀도둑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소매치기를 검거하고 보면 소매치기 전과가 최소 3회 이상일 정도로 ‘전문꾼’에 의한 범죄라고 한다. 전국적으로 소매치기 전과를 가진 사람은 7000명 정도인데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서 활동하는 소매치기는 대략 100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30%는 단독범이 아닌 조직범이다. 소매치기 조직은 보통 각 팀당 4~7명 규모로 안테나(범행 대상을 정하는 사람), 바람(대상자의 시선을 끄는 사람), 기계(지갑을 절취하는 사람), 경리(돈을 분배하는 사람), 사장(조직을 관리하고 범행 장소를 물색하는 사람)으로 구성된다.

소매치기 수법은 다양하다. 빽따기(가방 지퍼를 몰래 열어 금품을 훔침), 빽째기(면도날로 가방을 찢고 지갑을 꺼냄), 안창따기(양복 안주머니를 찢고 지갑을 꺼냄), 굴레따기(피해자가 머리를 숙이는 틈을 타서 목걸이 등을 끊어 도망감), 들치기(지하철 선반 위에 놓인 가방을 가로채 달아남), 아리랑치기(취객을 상대로 금품을 훔침) 등이 고전적인 수법이라면, 엿보기는 신용카드 사용이 보편화된 요즘 생겨난 신종 수법이다. 신용카드로 돈을 인출할 때 뒤에서 비밀번호를 엿보고 있다가 대상자 뒤를 따라가 지갑을 훔쳐 돈을 인출하는 것. 휴대전화만 훔쳐 달아나는 소매치기도 등장했다.

최근에는 시장이나 백화점 이외의 새로운 장소가 소매치기 단골 지역으로 부상했다. 스타벅스 같은 커피전문점이 바로 그곳이다. 소매치기전담반은 2월4일 커피전문점에서 지갑을 훔친 여성 소매치기 이모(34) 씨를 붙잡았다. 이 씨는 광화문과 종로 일대의 커피전문점만 돌아다니며 소매치기를 일삼았는데, 경찰에 붙잡힌 이날 하루만 세 군데 커피전문점에서 51만원어치를 훔친 것으로 드러났다. 인승룡 경사는 “의자에 핸드백을 놔두고 주문한 커피를 가지러 가는 사이에 소매치기 피해가 자주 발생한다”고 말했다.

“1~2초만에 쓱싹 … 형사 눈은 더 빨라요”

인기드라마 ‘형사24시’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40년 경력의 베테랑 형사 최중락 에스원 고문은 “1960년대에는 출퇴근 만원버스에서 소매치기가 횡행해 사회적으로 큰 문제였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 소매치기는 급격히 줄고 있다. 2005년 구속된 소매치기는 218명으로 322명이었던 2004년에 비해 32%나 감소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신용카드 사용이 보편화돼 현금을 갖고 다니지 않으면서 나타난 변화다. 오 경위는 “3~4년 전부터 20대 소매치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소매치기는 고령화하는 추세”라며 “소매치기 수입이 좋지 않자 마약판매상으로 직종을 바꾸거나 일본으로 원정 소매치기를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밤 10시쯤 종로 거리를 걸으면 소매치기들이 여럿 눈에 띄었습니다. 골라잡는 재미가 있었죠.(웃음) 하지만 요즘에는 소매치기 사건이 10년 전에 비해 10분의 1로 줄어들었습니다.”

일선 형사들에게 소매치기 검거는 그다지 인기 있는 분야가 아니다. 발생 건수가 점점 줄어들 뿐만 아니라, 범행 현장을 목격하지 않는 이상 잡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소매치기라고 확신이 드는 사람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범행을 저지를 때까지 몇 시간씩 미행해야 하는 것도 매우 고된 일이다. 이수배 경장은 “하루에 6~7시간씩 다리 아프게 걸어다녀도 허탕 치는 날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지루한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오연수 경위는 “범죄피해 예방 효과가 높기 때문에 소매치기 검거는 소홀히 할 수 없는 치안활동”이라고 강조했다. 1명의 솜씨 좋은 소매치기가 사람들로 붐비는 장소에 스며들면 순식간에 5~10명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시간씩 미행하며 남의 지갑에 손 댈 때까지 기다렸다가 몸싸움 끝에 소매치기를 검거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제 주변을 빙 둘러싸고 ‘잘했다’고 박수를 보내주죠. 그러면 그동안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집니다. 지루하고 따분한 싸움이지만, 그 맛에 끈질기도록 소매치기를 쫓아다니나 봅니다.”(웃음)



주간동아 2006.05.09 534호 (p36~37)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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