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1

2006.04.18

사소한 일상, 유쾌한 흔적

  • 이병희 미술평론가

    입력2006-04-17 09: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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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일상, 유쾌한 흔적

    East London Yellow Pages(위쪽 사진). Nach em Raage schiint d’Sunne.

    우리에게 일상은 꿈과 현실, 사랑과 증오, 욕망과 덧없음, 비극과 희극이 교차하는 대하드라마이고, 잔잔한 예술영화의 한 장면이기도 하다(혹은 그렇다고 한다). 물론 우리는 삶이 한 편의 드라마가 되길 기대한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 속에는 삶의 진정한 모습이 담겨 있을까. 우리가 기대하듯 일상은 그렇게 허무하고 멜랑콜리하고, 심지어 스펙터클할 수 있을까. 우리의 일상, 즉 느낌이나 감정, 사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시간 속에서 뭔가 흔적으로 남을 만한 것을 찾아본다면 과연 무엇이 나올까. 나올 게 있기는 할까?

    서울 창성동(서울 북촌 한옥마을 근처) 갤러리 팩토리에서는 작가 안강현의 사소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일상의 수집품들로 만든 작은 풍경들이 전시 중이다. 즐거운 퍼포먼스도 소개된다.

    안강현은 집 안 구석, 혹은 짐 보따리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아두었던 것들을 발견한다.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혹은 쓸데없는 것들이다. 생일을 맞은 사람의 나이 수만큼 딸려오는 생일 케이크의 초, 친구가 준 낡은 셔츠, 무심코 모은 영화나 전시·공연 티켓들, 먹고 난 초콜릿 포장지 등등. 안강현은 이것들을 한데 모아 공들여 작품들을 만든다. 우연한 발견의 즐거움은 계속된다. 박물관에서 만난 멸종동물들(쇠오리, 콰가 등)을 소개하기도 한다. 또한 지역신문(런던이나 스위스의 작은 마을 신문) 종이로 옷을 만들어 입고, 그 지역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안강현이 발견한 일상과 문화와 역사의 흔적들은 유쾌하게 부활한다. 생일 초의 수를 세어보니 ‘343세’. 콰가의 멸종 이유는? ‘너무 맛이 좋아서’다. 안강현이 부활시킨 일상의 흔적들을 보며 웃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쓸데없는 재료들을 정성스럽게 모아 무엇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속에 우리가 기대했던 멜랑콜리와 같은 비극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강현의 유쾌한 발견들을 우연히 발견해 즐거움을 만끽하면 되고, 우리 일상이 비극과 멜랑콜리에 사로잡힌 삼류 드라마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에 정말로 뭔가 대단한 것이 있기는 한 걸까? 4월15일까지, 갤러리 팩토리, 02-733-4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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