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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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보 정부, 발빠른 지자체

상하이 임정 청사 철거설 나돌지만 무대책 일관 … 함평군, 4억원 들여 청사 재현키로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6-04-12 16: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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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하이(上海) 임시정부 청사를 찾아가는 길은 도심 곳곳의 공사현장 탓에 을씨년스러웠다. 상하이 루완(盧灣)구 마당(馬當)로 306롱 4호. 임시정부 요인들의 사진과 함께 누렇게 바랜 태극기가 객을 맞는다. 임정 청사가 자리한 루완구는 키 재기 하듯 마천루가 솟아오르고 있는 상하이의 옛 중심지. 중국은 2010년 상하이 엑스포를 앞두고 임정 청사 주변인 마당로 푸칭(普慶)리 일대 1만5000여 평을 재개발할 계획이다. 다행스럽게도 임정 청사와 그 주변 건물인 306롱 1~5호는 재개발 예정지에서 빠져 있다. ‘임정 청사 터를 훼손하지 않겠다’고 루완구청이 약속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 지방정부의 약속을 믿을 수 없어 국내 언론과 전문가들은 “임정 청사가 철거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의 한 지방자치단체가 임정 청사를 한국에 재현하겠다고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전남 함평군이 그 주인공. 함평군은 신광면 함정리에 조성된 독립운동가 ‘일강 김철 선생 기념관’ 대지에 4억여 원을 투입, 임정 청사 원형과 똑같이 지을 예정이다. 이석형 함평군수는 “임정 청사가 철거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누가 하더라도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함평군 출신인 김철 선생이 사비를 털어 임정 청사를 구입했으니 함평군과 임정의 인연은 꽤 깊다”고 덧붙였다.

    “함평 출신 김철 선생이 임정 청사 구입” 인연

    그렇다면 지자체가 애국선열들의 숨결을 되살리겠다며 재현 사업에 나서는 동안 중앙정부는 무엇을 했을까. ‘임정 청사 철거 위기론’이 불거진 2004년 이후 정부 관계자들의 ‘수사’는 넘쳐났으나 중국으로부터 받아낸 ‘성과’는 거의 없다.

    정부는 2004년 2월 임정 청사와 주변 지역을 한국이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실패했다. 한국토지공사·한국관광공사 컨소시엄이 재개발 입찰에 참가해 가장 높은 액수를 적어냈음에도 상하이시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내세우며 유찰시킨 것. 정부의 외교력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당시 통일부 장관)은 2004년 12월21일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과 리자오싱 외교부장을 만나 “임정 청사 문제는 한-중 관계와 국민 정서에 좋지 않다”며 보존 문제를 제기했으나, “중앙정부가 관심을 갖겠다”는 의례적인 답변만 들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도 지난해 6월21일 원자바오 중국 총리를 만나 “임정 건물 일대 4000평만이라도 우리나라 기업이 개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중국 측이 “특혜를 줄 수 없다”는 원칙을 내세워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이후 외교 당국은 임정 청사와 관련한 업무를 사실상 방기해왔다.

    상하이 총영사관 관계자는 “현재로선 지켜보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 예를 들어 중국이 중국대사관 옆에 공원을 만들어달라고 하면 우리도 받아들일 수 없지 않겠느냐. 철거되지 않을 것은 확실하다. 새로 취임한 구청장이 업무 파악 중이라 재개발도 미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돼 있다. 이러한 대한민국이 수숫대 위의 잠자리 신세가 된 임정 청사에 대해 딱 부러진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지켜보고만 있는’ 것을 애국선열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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