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8

2006.03.28

맛있는 식당이 왜 그리 없는지!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발해농원 대표 ceo@bohaifarm.com

    입력2006-03-27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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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있는 식당이 왜 그리 없는지!

    대구지리

    맛 칼럼니스트라고 하니 사람들은 나를 미식가로 안다. 남다른 미각을 지니고 있어 여기저기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다가 그 정보를 바탕으로 맛 칼럼을 썼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주면 주는 대로 먹는, 음식을 맛으로 따질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맛 칼럼니스트가 된 것은 순전히 내 인생을 기획하다가 나온 의도적 결과물이다. 밥벌이로 잡지쟁이 노릇을 하게 되었는데 그대로 그냥저냥 살다 보면 내 인생이 너무 평범할 것 같아 평생 취미거리 하나 만들자고 한 것이 맛 칼럼니스트였다.

    맛 칼럼을 쓴다고 해서 큰돈을 버는 것도, 대단한 명예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세 끼 밥 먹으니 그걸 취재거리 삼아 글쓰기를 하면 재미있겠다는 발상에서 시작한 것이다. 사실 문화나 정치 칼럼 같은 폼 나는 글을 쓰고도 싶었지만 10여년 전 그 분야에는 이미 쟁쟁한 글쟁이들이 포진해 있어 얼굴 내밀기가 어려웠다. 당시 맛 칼럼은 식당 소개 글 정도로 여기며 쓰는 이들만 있어 만만해 보였던 것이다.

    일단 음식 관련 책을 모조리 사다가 읽기로 했다. 요리책부터 소설책까지 음식과 관련 있을 것 같으면 닥치는 대로 읽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음식도 그렇다. 아는 만큼 혀에 느낌이 왔다. 가령 이런 식이다. 음식에 열을 가하는 방법에는 대류, 전도, 복사가 있다는 사실을 어느 조리학 책에서 읽으면 삼겹살을 구워낼 때 어떤 가열 방식이 가장 나은지 이 식당 저 식당 다니면서 따져보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복사열이 고기 굽는 데 좋다고 알려져 있으나 대패삼겹살 같은 경우는 전도열이 더 낫고 복사열도 열원의 종류, 고기와의 거리 등에 따라 맛이 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다음은 하나의 음식을 정해서 식당끼리 비교해보는 것이었다. 이 작업은 시간과의 싸움이 중요하다. 한 식당의 음식 맛이 입에서 채 가시기 전에 비교 대상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어야 맛의 차이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문할 식당들을 지도에 그려놓고 최단의 동선을 파악한 뒤 2시간 만에 냉면집 서넛, 3시간 만에 돈까스집 네댓을 잽싸게 돌았다. 최후에는 위장이 음식과 힘겨운 싸움을 했다.



    마지막으로 집에서 요리를 해보는 것이었다. 일단 맛있다고 소문난 집에 가서 맛 내는 비법을 알아내는 게 순서였다. 소문난 음식점 주인들이 비법이라며 잘 안 가르쳐줄 것 같지만 칭찬하고 어르고 하다 보면 실토(?)를 하게 돼 있다. 비법을 알아내 집에서 그 식당 식으로 해보는 것이다. 이때 불이나 조리도구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비슷한 맛이 나면 다음에는 그보다 맛있게 하는 방법은 없는지 연구하고, 그 식당보다 나은 방법으로 요리하는 곳은 없는지 찾아보는 것이다.

    맛 칼럼니스트가 되려고 이 같은 일을 3~4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는지 ‘어느 집이 맛있네, 어느 집이 맛없네’ 써도 잘못 평가한 것이라고 시비해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입맛이 까탈스러워져 맛 칼럼니스트로 일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맛있는 음식을 내는 식당이 왜 그리 없는지! 그래서 요즘은 외식을 거의 안 한다. 솔직히 외식이 지겹다!

    맛 칼럼을 쓰겠다고 덤빈 지 올해로 10년째다. 까탈스러워진 입맛 탓에 한 2년간 식당 음식 평이 빠진 잡글만 쓰다가 혹시 내가 알지 못하는 내 입맛을 만족시키는 식당이 있을까 싶어 ‘주간동아’의 청탁을 받아들였다. 모쪼록 이 칼럼이 밥 투정, 반찬 투정으로 채워지지 않기를 바라며.

    추신 : 첫 회라 그런지 쓰다 보니 음식 소개는 없고 잡소리만 늘어놓았다. 지난주 닷새 동안 러시아 출장을 다녀왔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느끼한 러시아 음식으로 버려진 내 입맛을 되돌려줄 음식을 떠올려보았다. 단연 내 집 음식이 먼저 눈앞에 어른거렸으나 이 칼럼을 생각해서 식당 음식으로 바꾸어 생각하니 딱 한 집이 떠올랐다. 다음 호에 그 식당 음식부터 소개하고자 한다.

    사진은 집에서 내가 끓이는 대구지리다. 단순한 음식인데도 내 서툰 솜씨보다 나은 대구지리를 내는 식당 찾기가 어렵다. 대구철은 지나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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