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8

2006.03.28

한국 예술인들 러시아 ‘꿈의 무대’ 서다

성악가 이종미 키로프 극장서 오페라 공연 … 발레리나 유지연도 키로프 발레단서 맹활약

  • 김기현 동아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kimkihy@donga.com

    입력2006-03-27 09: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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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예술인들 러시아 ‘꿈의 무대’ 서다

    성악가 이종미(왼쪽)와 발레리나 유지연 씨. 아래는 마린스키 극장의 화려한 내부 모습.

    “키로프 극장과 마린스키 극장 중 어느 쪽이 더 오래됐나요?”

    발레와 오페라에 문외한인 어느 한국인 관광객이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옛 레닌그라드)를 여행하던 중 러시아인 가이드에게 느닷없이 던진 질문이다. 이 가이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키로프와 마린스키는 같은 극장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마린스키 극장(옛 키로프 극장)은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과 함께 세계 최정상의 러시아 발레와 오페라를 대표하는 무대다.

    러시아의 클래식 발레와 오페라 하면 흔히 볼쇼이 극장을 떠올린다. 하지만 알고 보면 러시아 발레와 오페라는 마린스키 극장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오히려 키로프 발레나 오페라를 볼쇼이보다 ‘한 수 위’로 치는 클래식 애호가도 많다.

    마린스키 극장은 1840년대에 지은 서커스 극장이 화재로 불타자 그 자리에 새로 지어 1860년 10월 문을 열었다. 당시 차르(러시아의 황제)였던 알렉산드르 2세의 왕비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의 이름을 따서 마린스키라고 이름 붙였다.

    볼쇼이 극장과 함께 세계 최정상의 무대



    러시아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작곡가 미하일 글린카의 오페라 ‘이반 수사닌’을 초연한 것이 마린스키 무대의 첫 작품. 이 오페라가 러시아 최초의 오페라 공연이었으니 마린스키 극장에서 러시아 오페라가 탄생한 셈이다. 그 후 모데스트 무소르크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 등 오페라와 표트르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등 러시아 발레와 오페라의 걸작 대부분이 이 극장에서 초연됐다. 마린스키 극장은 그때까지만 해도 러시아보다는 수준이 높았던 유럽의 발레와 오페라를 소개하는 창구 구실을 하면서 자연스레 러시아 발레와 음악의 중심이 됐다.

    그러면 키로프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옛 소련 지도자인 세르게이 키로프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키로프는 1930년대 독재자 스탈린의 강력한 라이벌 중 한 사람이었다. 특히 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인 레닌그라드에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키로프는 1934년 의문의 암살을 당한다. 스탈린의 짓이라는 의혹이 일었다. 스탈린은 민심을 달래기 위해 1935년 마린스키 극장을 키로프 극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군은 레닌그라드를 무려 900일 동안 포위했다. 시민들은 끊임없는 폭격과 굶주림, 추위에 시달렸다. 키로프 극장도 크게 파괴됐다. 하지만 극장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극장의 불빛을 보며 전쟁의 공포와 고립의 절망을 이겨냈다. 당시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가 포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7번 교향곡을 작곡해 시민들에게 헌정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소련 시절 키로프 발레는 서방에서 유명했다. 안나 파블로바와 루돌프 누레예프,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등 전설적인 발레 무용수들이 활동했기 때문이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극장은 마린스키라는 옛 이름을 되찾았다.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여전히 ‘키로프 발레’와 ‘키로프 오페라’라는 낯익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다. 너무나 유명한 브랜드여서 쉽게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예술인들 러시아 ‘꿈의 무대’ 서다

    마린스키 극장 외관.

    3월11일 재미 성악가 소프라노 이종미(45) 씨가 오페라 리골레토의 프리마돈나인 질다 역으로 마린스키 무대에 섰다. 한국인 성악가가 마린스키 오페라 무대에, 그것도 프리마돈나로 선 것은 처음이다. 줄리아드 음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줄곧 뉴욕에서 활동해온 이 씨는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에도 한동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마린스키 무대는 성악가라면 누구든 한번쯤 서보고 싶어하는 ‘꿈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이 씨를 캐스팅해 이 무대에 세운 이는 ‘키로프의 황제’로 불리는 발레리 게르기예프(52) 마린스키 극장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였다. 유네스코가 뽑은 ‘세계의 아티스트’ 중 한 사람인 게르기예프 감독은 현재 세계 클래식 음악계를 쥐락펴락하는 거장. 1991년 옛 소련 해체 후 밀어닥친 혼란기에 잠시 침체에 빠졌던 마린스키를 되살린 것도 바로 그였다. 게르기예프 감독의 존재 하나만으로도 마린스키 극장의 위상을 잘 알 수 있다.

    당연히 외국인 성악가나 무용수가 키로프 무대에 서기는 무척 어렵다. 특히 키로프 발레단은 철저한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키로프 발레단 부속학교인 바가노바 발레학교를 졸업해야만 입단 기회를 주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키로프 발레의 분위기와 스타일을 익힌 무용수만 무대에 세우겠다는 것이다.

    키로프 발레단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특이한 이름이 눈에 띈다. 유일한 외국인 단원인 한국인 발레리나 유지연(28) 씨다. 1991년 예원학교 3학년 재학 중인 13세 때 단신으로 러시아에 와 바가노바 발레학교에 입학했다. 1990년 바가노바 발레학교에서 온 러시아인 교사가 그의 춤을 보고 러시아 유학을 제의한 것이 계기였다.

    유지연 씨 13살에 러시아로 발레 유학

    유 씨는 바가노바 사상 가장 어린 외국인 학생이었고, 러시아에 유학한 첫 한국인 발레리나였다. 클래식 발레의 본고장에서 춤을 배우겠다는 소녀의 용기는 당시로서는 무모하기까지 했다. 90년대 초반의 러시아는 혼란 자체였다. 소련 체제가 붕괴되면서 인플레이션과 범죄가 기승을 부렸고, 빵 하나를 사기 위해 배급표를 들고 몇 시간씩 줄을 서야 했다.

    러시아어도 한 마디 모르고, 가족도 친구도 없는 낯선 나라에 던져진 소녀는 춤에만 매달렸다. 엄마가 보고 싶어 남몰래 눈물을 흘렸어도 한 번도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어린 나이여서 적응도, 러시아어를 배우는 것도 빨랐다. 유 씨는 1995년도 바가노나 발레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해 키로프 발레단 ‘말리’ 컴퍼니에 입단한다. 1997년부터는 키로프 사상 첫 외국인 단원으로 무대에 서게 됐다.

    바가노바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갈 기회도 있었고 영국의 발레단에서 입단 제의도 받았지만 그는 주저 없이 키로프를 선택했다. 바가노바에 입학할 때부터 유 씨의 목표는 오직 키로프 무대였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 서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키로프 무대에 설 수 있는 것만으로 큰 축복이라고 말하는 유 씨는 키로프 발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바가노바 학교에서부터 호흡을 맞춰온 군무 무용수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라인과 우아하고 섬세한 분위기는 다른 발레단은 흉내 내기 어려운 키로프 발레만의 매력이라는 것.

    유 씨의 하루는 정신없이 지나간다. 매일 아침 10시부터 3시간 동안 연습한다. 보통 저녁 7시부터 시작되는 공연이 없는 날이면 저녁에도 연습을 한다. 솔리스트라 독무 연습은 따로 해야 한다. 1년의 절반은 해외 공연을 다닌다. 키로프는 2004년 10월 내한 공연을 했다. 유 씨는 “키로프가 한국 무대에 설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 씨는 키로프에서 현역 발레리나 생활을 마치는 것이 꿈. 전성기를 넘겨서까지 무대를 고집할 생각은 없다. 지난해 9월부터 바쁜 시간을 쪼개 발레 안무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언젠가 귀국해 한국 무용계에 기여하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헤어질 때 받은 유 씨의 e메일 주소는 제니트(zenit)였다. 러시아어로 ‘정상’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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