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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리 복제한 건 내가 아니다”

윌머트 박사 ‘폭탄 고백’에 영국 과학계 발칵 … “작업과정 감독하고 조정 역할 했을 뿐” 실토

  • 코벤트리=성기영 전 동아일보 기자 sungkiyoung@gmail.com

“돌리 복제한 건 내가 아니다”

1997년 ‘인간 복제’라는 화두를 처음으로 던지며 세상에 선을 보였던 복제양 ‘돌리’. 세계 최초로 복제양을 탄생시킨 당시 로슬린연구소의 이안 윌머트 박사가 붙인 ‘돌리(Dolly)’라는 이름은 풍선만한 가슴으로 유명한 미국의 컨트리 가수 ‘달리 파튼(Dolly Parton)’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윌머트 박사가 복제양이 어미 양의 유방세포로부터 복제됐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풍만한 가슴의 대명사인 달리 파튼의 이름을 영국식으로 발음해 ‘돌리’라는 이름을 붙였을 만큼 복제양 돌리는 영국의 기초과학 수준을 세계에 알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윌머트 박사 역시 돌리를 통해 물리학 분야의 스티븐 호킹과 더불어 영국을 상징하는 과학자 반열에 오른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돌리가 탄생한 지 채 10년도 되지 않아 ‘돌리 아빠’ 격인 윌머트 박사가 돌연 “돌리를 복제한 건 내가 아니다”라고 고백해 영국 과학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최근 영국 ‘가디언’지가 영국 노동심판소의 재판정에 섰던 윌머트 박사의 증언을 인용해 이 같은 사실을 보도했다.

실제 주역은 키스 캠벨 박사

윌머트 박사의 증언은 그와 함께 일했던 인도 출신 연구원 프림 싱으로부터 부당 노동행위 혐의로 제소당한 뒤 노동심판소에 출석해 변호사 심문에 응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윌머트 박사는 이 증언에서 돌리를 만든 공로의 3분의 2는 돌리의 복제 사실을 세상에 처음 알린 97년 ‘네이처’지 논문의 공동저자인 키스 캠벨 박사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복제기술을 개발하거나 직접 실험을 한 것이 아니라, 전체 작업과정을 감독하고 조정하는 역할에 그쳤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윌머트 박사의 증언이 보도된 뒤 지난해 윌머트 박사에게 7만 파운드(약 1억4000만원)의 상금과 함께 최고 과학자상을 시상했던 독일의 폴 엘리히 재단이 시상 취소를 검토하고 나서는 등 파문은 확산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윌머트 박사가 ‘돌리 탄생의 실제 주역’이라고 지목한 캠벨 박사는 실험의 전 과정에 참여했으나 윌머트 교수에게 가려 언론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졌던 인물이다. 게다가 캠벨 박사는 ‘네이처’지에 논문이 발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돌리의 산실인 로슬린연구소를 떠나 의문을 증폭시킨 바 있다. 가디언지는 당시 캠벨 박사가 연구소를 그만두게 된 배경에도 윌머트 박사의 일방적 독주 등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두 사람은 복제양 신화를 탄생시킨 뒤 곧바로 ‘피피엘 세러퓨틱스(PPL Therapeu-tics)’라는 생명공학 기업을 설립해 복제기술을 기반으로 한 사업에 나섰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이 회사는 전성기에 8500만 파운드(약 1700억원)라는 거액의 투자를 유치하는 등 ‘대박’의 꿈을 키워가기도 했다. 하지만 2003년 주요 제휴사들이 투자금을 회수하면서 경영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 게다가 로슬린연구소 주변에서는 ‘윌머트 박사가 정밀한 기술이 요구되는 핵치환 작업 등을 전혀 하지 못할 정도로 손을 떤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이러한 정황을 종합해보면 영국 과학계를 뒤흔든 윌머트 교수의 이번 ‘폭탄선언’의 배경에는 연구 결과의 소유권을 둘러싼 공동 연구자 간의 미묘한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체세포 복제 실험은 성체로부터 난자를 채취해 핵을 제거하고, 다른 체세포에서 분리한 핵을 이식해 전기 자극을 가한 뒤 배양작업을 하는 등 여러 단계의 작업을 거쳐 완성된다. 당연히 이러한 일련의 작업과정은 고도로 세분화된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실험의 규모가 커질수록 역할 분담은 수많은 연구자의 공동 참여를 필요로 한다.

특히 연구 결과가 막대한 금전적 가치를 갖는 특허권 획득으로 이어질 경우 공동 연구자 간의 미묘한 신경전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연구의 공공성을 상대적으로 강조해온 영국 학계에서도 특허권을 따서 돈방석에 앉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 돼가고 있다.

영국 런던대학 웰컴 트러스트 연구소 의학사 분야 전임 연구원인 김기흥 박사는 “1960년대 이후 미국과 영국 등에서 기초과학 실험이 대형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작업처럼 대형화하면서 연구진 내부에서 지적소유권의 지분을 누가 얼마나 갖는가에 대한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고, 윌머트 교수 사건 역시 이러한 갈등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영국에서는 윌머트 교수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 적이 있다. 파문의 주인공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황우석 박사에게 다시 한 번 연구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던 뉴캐슬대학 교수 출신의 미오드락 스토이코비치 박사. 그는 황 교수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간 배아 복제에 성공해 영국을 대표하는 과학자로 떠올랐으나 지난해 9월, 뉴캐슬대학에 갑자기 사표를 내고 스페인의 한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영국 학계에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스토이코비치 교수는 그동안 갑작스런 스페인행에 대해 입을 열지 않다가 1월 영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공동 연구자와의 갈등 때문에 영국을 떠났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에 따르면 자신의 인간 배아 복제 관련 연구가 관련 학술지에 실리기도 전에 실험용 난자 공급 등 극히 부분적 역할만 담당했던 동료 교수가 자신의 연구 결과를 언론에 대대적으로 알리는 따위의 비상식적 행위를 하는 등 연구의 신뢰성이 훼손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동료 교수는 그 후 인간 배아 복제 실험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정부로부터 막대한 연구비 지원을 따내는 등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영국 과학계는 스토이코비치 박사 역시 두 사람이 내세우는 명분과는 달리 특허권이나 연구비 지원 등을 둘러싼 물밑 갈등이 결별 요인이 됐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윌머트 교수의 고백은 ‘황우석 파동’으로 만신창이가 된 한국 과학계가 받아들여야 할 또 하나의 타산지석일지도 모른다. 논문 조작이나 체세포 바꿔치기처럼 연구 결과를 결정적으로 뒤엎는 부정행위가 없었음에도 연구 성과의 소유권을 둘러싼 갈등이 경우에 따라서는 세계적 연구 업적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528호 (p64~65)

코벤트리=성기영 전 동아일보 기자 sungki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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