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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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계 태풍의 눈 ‘크리에이티브 에어’

‘현대카드’ ‘미래파’ ‘초콜릿폰’으로 연속 홈런 … 설립 1년도 안 돼 취급고 1000억원 올려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6-03-22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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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고계 태풍의 눈 ‘크리에이티브 에어’

    최창희 ‘크리에이티브 에어’ 대표.

    “저광고 누가 만든 거지?”

    잘 만든 광고는 단 한 번의 방송으로도 16부작 미니시리즈만큼이나 깊은 인상을 남긴다. 광고를 ‘15초의 예술’이라 부르는 건 이런 강렬함 때문이다.

    하룻밤 사이에 광고가 뜨고, 이것이 매출 증가로 이어지면 사람들은 광고를 만든 이들이 누구인지 궁금해한다. 한때 이런 화제의 광고 10 중 7, 8은 제일기획에서 제작됐다. 이어서 광고대행사 웰콤이 주목을 받았고, 최근 10 중 7, 8을 만들고 있는 건 TBWA다.

    TBWA는 휴대전화 스카이의 ‘It’s different’ 시리즈 광고를 만들면서 ‘목춤’을 국민 댄스로 유행시켰고, 레슬링 장면을 줌인한 동성애 광고로 화제가 됐다. TBWA는 1998년 12월 한국 법인을 설립한 다국적 광고회사로, 2004년 제일기획과 LG애드에 이어 3위로 뛰어올랐다.

    TBWA의 성장 속도만큼 빨리, 아니 ‘하루아침’에 광고계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회사가 있다. 바로 ‘크리에이티브 에어’가 그 이름이다. 2005년 5월 설립한 이 광고대행사는 두 달 만에 광고 취급고(광고주의 광고집행비) 100억원대인 브라운스톤의 광고를 따내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중견탤런트 백윤식이 “이러다 조인성 되면 어떡하지?”라고 말하는 화장품 광고를 내놓았고, 현대카드·백세주에 이어 LG싸이언 휴대전화 ‘아이디어’와 ‘초콜릿’ 폰으로 연속 홈런을 쳤다. 가장 최근엔 태평양 라네즈 광고로 흑백 화면 속에서 하염없이 우는 전지현의 모습을 내보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광고는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릴 만큼 소비 전쟁의 최전선을 형성하지만, 동시에 보는 이의 감성을 자극해야 하기 때문에 ‘크리에이티브(창의성)’의 기준에서 평가를 받는다. 얼마나 많은 광고 취급고를 올리는가와 함께 얼마나 창의적인 광고를 만드는가가 광고사를 평가하는 두 개의 기준이 된다.

    최창희 대표는 제일기획 출신의 스타 광고인

    광고 취급고 면에서 1위는 단연 제일기획이다. 제일기획의 1년 광고 취급고는 1조7000억원에 이른다.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1인의 취급고가 웬만한 대형 광고회사의 취급고 전체 규모와 맞먹는다. 이는 물론 삼성이라는 글로벌 기업을 광고주로 둔 덕분이다. 3위인 TBWA 취급고는 3500억원, 신생사인 크리에이티브 에어의 취급고는 ‘겨우’ 1000억원이다.

    그러나 현재 크리에이티브 면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쪽은 TBWA와 크리에이티브 에어다. 한 휴대전화 회사 브랜드 담당자는 “광고주들이 가장 주목하는 회사가 크리에이티브 에어”라고 말한다.

    제일기획과 TBWA·크리에이티브 에어, 이들 세 회사 간 ‘크리에이티브’ 경쟁의 중심에는 최창희(56) 현 크리에이티브 에어 대표가 있다. 최 대표는 제일기획에서 ‘고향의 맛’ 다시다와 오리온 ‘정’ 시리즈로 ‘휴머니즘’ 광고 붐을 불러일으켰다. 크리에이티브 에어를 설립하기 전인 1999년부터 2004년까지는 TBWA 사장으로서 월드컵 당시 SKT의 ‘Be the Reds’ 캠페인을 진두지휘했다. 그의 이력은 우리나라 광고의 변천사이기도 하다.

    광고계 태풍의 눈 ‘크리에이티브 에어’

    ‘라네즈’, ‘백세주’, LG ‘초콜릿폰’ 인쇄 광고(위부터).

    그가 제일기획에 있던 시절, 광고는 대기업의 ‘인하우스’ 광고대행사에서 만들어냈다. 사장은 그룹 내에서 낙하산으로 임명됐고, 광고인은 전문인이라기보다 ‘홍보실 직원’과 비슷했다. 이런 분위기는 지금도 일부 남아 있다.

    IMF 이후 외국계 광고회사가 속속 들어오면서 광고인들이 처음으로 광고회사의 최고경영자가 됐다. 대표적인 예가 TBWA의 최창희 사장 기용이었다.

    “다국적 광고회사들은 광고인의 ‘전문성’을 높이 샀고, 복지 수준도 높여주었어요. 하지만 회사 매출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체 매출의 일부니까, 한국에서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한국의 광고 발전에 쓰이는 몫은 전혀 없었습니다. 광고인 교육은 물론이고 광고 관련 학술대회 하나 열 수 없고,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없었어요. 결국 내가 떠났지요.”

    12명이 그를 따라왔고, 그는 거의 ‘아무 어려움 없이’ 크리에이티브 에어를 오늘의 자리로 끌어올렸다. 그는 크리에이티브 에어의 성공에 100% 확신을 갖고 있었던 듯했다. 최 사장이 꿈꿨던 것은 대기업 인하우스도 아니고 다국적기업도 아닌 순수 한국 광고인들의 회사를 통해 광고계를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TBWA 시절 광고회사 사장들의 모임인 광고업협회와는 별도로 광고 전문인들의 모임인 ‘광고인협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을 지낸 그는 앞으로 광고계의 갖가지 문제점들을 적극 이슈화해 정책 결정 시 반영되도록 할 생각이다.

    당장 그는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기획단이 시행하려는 ‘방송광고 판매대행 수수료 체제 합리화’가 우리 광고 산업을 “반쪽 낼 것”이라고 말한다. 또 광고에서 ‘컴맹’ ‘얼짱’ ‘몸짱’ 같은 유행어도 쓰지 못할 만큼 규제가 심한 심의 조항을 ‘청소년 보호’ 목적에 맞게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광고인들이 자기 일에 빠져 정책에 무관심했던 결과가 한국 광고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일기획 광고가 진지하고 톱스타들을 끌어와 압도적인 스케일과 물량을 느끼게 하는 스타일이라면, TBWA 광고에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고, 크리에이티브 에어 광고는 스타 없이도 튀는 아이디어에 ‘재미’까지 더한다.

    “예전의 소비자들이 감동을 원했다면 요즘 젊은 세대는 재미, 즉 ‘펀(fun)’을 원합니다. 난 내가 젊어지려고 노력하기보다 젊은 후배들의 감각이 무조건 옳다고 믿습니다.”

    최 사장은 ‘Be the Reds’ 캠페인을 되살리려는 SKT와 KTF 간의 월드컵 광고 대결에 비판적이다. “자연발생적인 에너지가 아니라 강제성을 띠는 데다 리바이벌은 재미도 없다”는 것. 그의 이런 사고가 TBWA와 크리에이티브 에어를 가장 ‘크리에이티브’한 광고회사로 만들었을 것이다.

    성공비결은 튀는 아이디어에 재미 추가

    예를 들어 새로 나온 휴대전화를 보고 신입사원이 “초콜릿같이 생겼네요”라고 말했을 때 “MP3 기능을 강화한 휴대전화와 초콜릿이 무슨 상관이냐” “50만원 고가 제품에 싸구려 간식 이름을 붙이다니 말이 되느냐”고 말하는 사장님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를 재미있다고 받아들이고, 미심쩍어하는 광고주를 끝까지 설득하는 자신감이 크리에이티브 에어에 있다. 한 광고전문가는 이렇게 말한다.

    “광고주들은 위험한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막상 TV에서 튀는 광고를 보면 ‘당신은 왜 저렇게 만들지 못하냐’고 말하지요. 크리에이티브 에어의 광고들은 광고인의 나르시시즘으로 만든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아슬아슬한 경우가 많아요. 광고주의 성향을 잘 아는 광고계 사람들의 최대 미스터리는 ‘도대체 어떻게 광고주를 설득했기에 저런 광고를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죠.”

    요즘 광고업계에 나도는 유머 중 이런 것이 있다. 제일기획, LG애드, 웰컴, 크리에이티브 에어가 ‘가장 더러운 똥’을 가져오는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상황이다.

    ‘초두효과’를 강조하는 LG애드가 먼저 다양한 종류의 똥을 제시하며 광고주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려 하고, 제일기획은 냄새·촉감·맛뿐 아니라 방귀와 트림까지 엄청난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해 광고주를 감동시킨다. 웰컴은 ‘모든 똥은 위대하나, 세계인을 감동시킬 수 있는 똥은 드물다, 그러나 칵테일파티 효과를 통해 소비자를 감동시킬 수 있다’는 현란한 논리를 편다. 마지막으로 크리에이티브 에어의 순서. 가장 더러운 똥은 바로 오줌이라고 ‘선언’한다. 왠지 귀가 솔깃한 광고주가 무슨 말이냐고 물으면 광고주의 멱살이라도 잡을 듯 ‘왜냐니! 모든 상황이 말해주고 있잖아! 오줌!’이라고 주장한다.

    최창희 대표에게 이 유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맞지,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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