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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로비스트들 “脫서울, 지방에 살렵니다”

사회 투명성 강조로 활동 공간 축소 … 상대적으로 감시 덜한 지역서 암약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로비스트들 “脫서울, 지방에 살렵니다”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로비스트 K 씨. 그는 윤상림 씨와 쌍벽을 이루는 거물 브로커로 통한다. 윤 씨와 달리 자기 관리에 철저해 지금도 인심을 잃지 않고 활동(?) 중이다. 주로 법조와 경찰 쪽에 발이 넓고, 정치권에도 만만치 않은 인맥을 확보했다. 지역에서는 ‘필요한 때 필요한 곳을 누를 수 있는 힘과 기교를 겸비한 로비스트’로 소문이 났다. 그는 기업을 경영하는 오너로 신분을 세탁, 사정기관의 감시망을 피한다.

L 씨는 주로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원로 로비스트이자 브로커. 하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쭛쭛개발 회장 쭛쭛쭛’이란 명함을 건네는 그를 브로커로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L 씨의 최대 강점은 권력 주변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력이다. 인사 시즌이면 정부 요로에 있는 인사들이 정보를 얻기 위해 줄줄이 전화를 건다고 한다. 2개의 휴대전화로 하루 100여 통 이상의 전화를 주고받는 경우도 있다는 것. K 씨와 L 씨는 이해찬 전 총리의 골프 및 로비 의혹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여유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인 2002년 12월 민주당 당직자 연수회에서 “누군가 청탁을 하면 ‘당신 그러다 걸리면 밑져야 본전이 아니고 반드시 손해를 볼 것이다. 걸리면 패가망신(敗家亡身)이다’ 이렇게 경고해주십시오. 나 혼자로는 안 됩니다”라고 청탁 문화의 배격을 강력하게 주문했다.

‘돈과 권력’의 부적절한 만남 경고음

그러나 정권의 명운을 걸고 법과 원칙을 강조한 노 대통령의 의지는 집권 4년차에 들어선 요즘 빛이 바랜 모습이다. ‘돈과 권력’의 부적절한 만남에 대해 경고음이 켜졌지만, 로비스트와 브로커들은 정부의 엄단 의지 따위에는 아랑곳없이 가던 길을 간다. 그들은 지금도 합법과 불법의 영역을 넘나들며 돈과 권력의 은밀한 결합을 부추긴다. 한국의 파워그룹 역시 그들과의 부적절한 만남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 새로운 로비 및 브로커 문화도 생겨나고 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K 씨와 L 씨의 동선을 따라가 보면 참여정부 출범 후 새로 등장한 로비스트와 브로커 세계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브로커 세계의 지방분권화 현상이다.

“과거와 달리 참여정부 출범 후 로비스트나 브로커들은 지역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성향이 강해졌다. 이를테면 거물 브로커 윤 씨가 호남을 중심으로 활동했다면 K 씨는 영남, L 씨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식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이 사정 관계자는 참여정부 출범 후 한층 강조된 사회 투명성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참여정부 출범 후 시민단체, 사정기관의 감시가 심해지면서 브로커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 그러다가 상대적으로 감시의 눈길이 덜한 지방으로 숨어들어 새로운 형태의 로비 문화와 공간을 확보한 것이다.”

로비스트들 “脫서울, 지방에 살렵니다”

3월11일 부산 아시아드컨트리 클럽을 방문, 현장조사를 벌이고 있는 한나라당 이재웅, 유기준 의원(위 오른쪽 부터).

이 관계자는 이 천 총리와 ‘27회’ 소속 부산 상공인들의 부적절한 골프 모임 등을 이런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지역 상공인들과 중앙정치권의 유력 인사가 어울려 민원을 주고받는 새 창구로 활용될 여지가 많다는 것. 물론 지역 상공인과 정치인의 회합은 예전부터 있어왔고, 이를 모두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반론도 없지 않다. 그러나 참여정부 출범 후 브로커들의 지방분산 현상은 눈에 띄게 두드러졌고, 의혹을 부채질하는 지역 단위의 모임은 늘어나는 추세다.

행정수도 이전과 충남도청 이전 문제로 부동산 가격이 들썩거리는 대전, 충남 지역에도 로비스트와 브로커가 급작스럽게 늘었다. 지역 일간지 출신인 한 기자는 “과거 서울에서 활동하던 브로커들이 충청 지역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설명했다. 이 기자는 “영남과 호남 등지에 거물 브로커가 둥지를 틀고 있다면, 충청권의 경우 덩치가 크지 않은 브로커들이 몰려드는 것 같다”고 분석한다.

민원 주고받는 회합·모임 주선

로비스트들 “脫서울, 지방에 살렵니다”

거물 브로커 윤상림, 굿모닝 시티 윤창렬 회장, 전대월 전 하이앤드 대표(위부터).

지역 토착기업 등과 손을 잡는 분권형 로비 문화의 등장은 감사원 감사보고서에도 나타났다. 2004년 감사원은 횡령·유용 등 불법행위, 예산 낭비와 토착기업과의 유착 비리 등 고질적인 자치단체들의 부당 사례 787건에 대해 시정을 요구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지자체가 체결한 공사계약 가운데 76%가 수의계약이었다. 이는 지자체가 지역 토착세력에 이권을 주는 대표적 사례이며, 로비스트나 브로커의 탈(脫)서울을 부채질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는 분석이다. 이런 사정을 인식한 이 전 총리는 공직자 및 정치권력과 지방 토호세력과의 유착 근절을 강조했지만, 지역 흐름은 반대로 흘러갔다는 것.

부산의 27회가 각종 의혹을 사며 언론의 도마에 오른 3월 초, 대구·경북의 언론은 지역 기업인들과 공직자들이 만든 ‘A 모임’을 유심히 지켜봤다. 지역의 금융기관 간부와 상공회의소 임원 및 기업인, 그리고 지역 기관장 등 50여명으로 구성된 이 모임은 지역 명문 골프장인 선산 CC와 경산 CC에서 라운딩을 하거나 정치권 인사들과 회합을 갖곤 한다. 외형적으로 부산의 27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동선이다.

대구, 경북의 주류들로 구성된 이 모임엔 중앙정치권 인사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구를 방문하는 정치인들은 이 모임 멤버들과 회동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A 모임 측도 정치권의 이런 제의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한화갑 민주당 대표, 김중권 전 민주당 대표, 이강철 전 대통령시민사회수석, 이인제 의원(국민중심당) 등이 이 모임 멤버들과 한두 번씩 자리를 같이한 정치인들이다.

물론 정치인들과의 교류를 이유로 이 모임을 로비 또는 브로커 집단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일부가 정치권과의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원칙을 어기는 경우가 있다는 지적에는 귀를 기울일 만하다. 지역 언론에 몸담고 있는 한 중견 기자의 설명이다.

“이 모임이 부산의 27회처럼 로비 의혹에 직접 휘말린 적은 없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정치인과 돈을 가진 기업인들이 만나면 결국 서로에게 도움을 청하는 형님-동생 문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가.”

만나다 보면 유혹을 받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선 부적절한 거래로 빠져들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로비의 경제학을 쓴 성균관대 정재영 교수(무역학)는 로비의 개념을 “국민기본권인 청원권에 기반을 둔 의사소통 활동”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논리가 설 자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현실 속의 로비스트나 브로커들은 오로지 돈과 권력만을 좇는다. 유능한 브로커일수록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준비해두었다가 필요할 때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출세하려는 공직자에게는 연줄을 보여주고, 출세한 공직자에게는 돈다발을 흔들어 환심을 사려 한다.

참여정부 최고의 브로커 윤 씨는 돈과 자리에 목매는 공직자들의 이런 약점을 철저하게 활용한 브로커였다. 윤 씨의 마수에 걸린 대표적 인사가 공직을 마치고 정부투자 기관장으로 활동하던 K 씨. 그는 2003년 윤 씨에게서 “장관급에 해당하는 자리를 마련해주겠다”는 술자리 약속을 믿고 원하는 것을 들어주었다가 최근 사정기관으로부터 내사를 당했다는 후문이다. K 씨는 후유증으로 며칠 동안 밤잠을 설쳐야 했다. 참여정부 출범 후에도 윤 씨 같은 브로커가 권력의 심장을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은 한국 관료사회가 조직과 시스템이 아닌 학연과 혈연, 지연 등에 의해 작동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회와 정부 기웃 200명 넘을 듯”

오랫동안 재야활동을 해온 정찬용 전 대통령인사수석은 이런 온정주의로 공무를 추진하다 낭패를 본 경우다. 2004년 6월경 정 전 수석은 광주 오포지역 건설에 나선 모 건설회사 직원 서모 씨와 포스코건설 김모 상무를 집무실에서 만났다. “공직자들의 복지부동으로 지역 건설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는 이들의 주장을 들은 정 전 수석은 즉시 담당 공무원들을 불러 해결책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지난해 연말 그들 가운데 브로커가 끼어 있었던 사실이 밝혀졌고, 이 때문에 “고위 공직자가 청와대로 브로커도 부르냐”는 호된 비판을 받는 처지에 몰렸다. 정 전 수석의 말이다.

“그들이 기업인인지 브로커인지 확인이 어려운 상황에서 찾아오는 사람을 어떻게 안 만날 수 있나. 민원에 대한 응답 차원에서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참여정부 출범 후 로비 또는 브로커들과 직·간접적으로 연을 맺은 권력 핵심 및 정치권 인사는 20여명이 넘는다. 알려지지 않은 인사를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그들을 상대로 로비에 나선 사람도 수백 명이 넘는다. 지난해 로비스트법을 제안한 민주당 이승희 의원 측은 “국회와 정부청사를 기웃거리는 로비스트가 족히 200여명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비 대상자들 대부분은 문제가 터지면 결백을 주장한다. 그러다 불리한 처지에 몰리면 “나도 속았다”는 교과서식 답변을 내놓는다. 스스로 문을 열고 브로커를 맞이한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반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해 불거진 철도공사(철도청)와 우리당 이광재 의원, 석유전문가 허문석 씨, 전대월 전 하이앤드 대표 등이 모여 추진한 러시아 유전개발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의혹투성이로 남아 있지만 누구 하나 진실을 고백한 사람이 없다. 특히 이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김세호 전 건교부 차관은 현직 국회의원 4명과 전직 의원 1명 등 정·관계 고위층을 상대로 로비를 벌여 공직자의 로비 문화를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이 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웠지만 의혹의 중심에 섰던 이 의원은 침묵으로 일관했고, 야당은 ‘살아 있는 권력’의 로비 의혹을 다음 정권에서 규명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노 대통령의 고교 후배인 썬앤문 그룹 문병욱 회장을 둘러싼 로비 의혹도 야당은 파헤치기 어려운 난제로 분류, 다음 정권을 기약한다. 2002년 대선 당시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에게 1000만원 상당의 정치자금을 건넨 문 회장은 2003년 7월 세금 감면을 받기 위해 서울국세청 감사관 홍모 씨에게 5000만원을 건넸다 구속됐다. 한나라당은 즉각 “문 회장이 100억원대의 세금을 감면받기 위해 정권 핵심부를 상대로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참여정부 출범 뒤 꾸준히 문 회장의 동선을 추적한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의 기억이다.

“5000만원을 받아 구속된 국세청 4급 직원이 어떻게 세금 157억원을 깎아줄 수 있느냐. 4급은 실무자일 뿐 윗선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홍 의원은 거액의 세금을 감면받은 배경에 권력 실세와 로비스트의 보이지 않는 거래가 있음을 강하게 암시했다. 그러나 검찰은 문 회장을 구속하는 선에서 이 사건을 마무리했다.

거물 브로커 윤 씨는 참여정부의 브로커들이 어떤 방법으로 살아왔고, 그들을 공직자들이 어떻게 접대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청와대는 2003년 12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윤 씨의 비리 관련 첩보를 사정기관에 이첩했다. 그러나 윤 씨는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지난해 연말까지 건재했다. 윤 씨가 로비스트로 입신하는 데 실패한 것은 국가기관의 견제 때문이 아니라 절제되지 않은 자신의 과욕 탓이었다.

브로커 난립은 법 마비 후유증

굿모닝시티 윤창렬 회장은 요즘 옥중에서 재기를 위한 사업 구상을 가다듬고 있다는 후문이다. 참여정부 출범 후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 등 정치인들에게 정치자금을 건넨 문제가 불거지면서 재기가 불투명했지만 구속 후 입을 열지 않고 비밀을 지킨 데에 신뢰감을 느낀 일부 인사들이 그의 재기 작업을 돕고 있다는 것.

브로커의 난립은 원칙을 무너뜨리고 법을 마비시키는 후유증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그 부메랑이 곧바로 레임덕으로 이어진다는 교훈은 김영삼(YS)과 김대중(DJ) 정권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 전 총리의 접대 및 내기 골프 문제를 ‘집권 4년차 권력형 비리 증후군’으로 표현하는 언론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참여정부의 로비스트와 브로커는 지금도 교도소 담 위를 걸으며 돈과 권력을 좇고 있다.

골프장 취재전쟁

직접 라운딩하며 ‘내기 골프’ 진실 캐기


부산시 기장군에 위치한 아시아드컨트리클럽. 이해찬 전 총리와 27회 소속 부산 상공인들이 모여 운동을 한 이 골프장은 최근까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줄어들지 않는 기자들의 취재 전쟁 때문이다.

이 전 총리 골프 의혹을 취재하려는 기자들은 20여일이 지난 지금도 이곳을 찾거나 전화를 걸어 이 전 총리의 내기 골프 등에 대해 문의한다. 취재수첩을 버린 기자들이 골프채를 쥐고 직접 라운딩하며 취재를 하는 경우도 있다. 골프장 측은 캐디에게 ‘함구령’을 내리고 당시 상황을 알고 있는 캐디들을 빼돌렸지만 소문은 이미 광범위하게 나돈 상태. 골프장 측은 주중 골퍼를 가장한 기자들이 캐디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정보를 입수하는 것을 가장 부담스러워한다. 골프장 한 관계자는 “모든 것이 다 밝혀진 상황이라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다”면서도 기자들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기자들에 대한 골퍼들의 부담감도 골프장 측의 걱정거리다. 그렇지 않아도 골프장 출입에 대해 지역 민심이 좋지 않은데 평일 골프장 출입 사실이 알려지면 유탄을 맞을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런 고민에 빠진 골퍼들은 아예 부킹을 취소하고 다른 골프장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골프장 측은 이런저런 사정을 들어 기자들의 취재활동을 삼가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기자들은 골프장 취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는 눈치다. 당초 골프장 측이 이 전 총리의 운동 사실을 속인 것을 비롯, 여러 차례 해명이 모두 거짓으로 판명 났고 이로 인해 가려진 ‘팩트’가 있을 것으로 믿는 기자들이 많다.

기자들의 이런 끈질긴 근성은 봉합 국면으로 흐르던 이 전 총리의 골프 파문을 재촉발하기도 했다. “당초 내기 골프는 없었다”는 이기우 전 교육부 차관의 해명과 달리 40여만원을 걸고 내기 골프를 친 사실이 추가로 취재기자들에게 걸려든 것. 아시아드컨트리클럽의 골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주간동아 528호 (p36~39)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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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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