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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新 경력관리 시대⑥

중요한 건 취업 아닌 ‘취업능력’

미국, 일상화된 구조조정 속 ‘전직 지원 프로그램’ 활성화 … ‘자기 계발’은 생산성 높이는 지름길

  • < 뉴욕·샌프란시스코=성기영 기자 > sky3203@donga.com

중요한 건 취업 아닌 ‘취업능력’

중요한 건 취업 아닌 ‘취업능력’
앨리스 워커양(26)이 미국 굴지의 온라인 기업인 AOL에서 해고된 것은 지난해 11월. 8개월 동안 정리해고만 이번이 두 번째다. 생각해 보면 자신의 꿈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콜로라도에서 대학을 마친 뒤 줄곧 직장생활을 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 이곳 샌프란시스코로 건너올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빨간색 스포츠카와 호수를 끼고 있는 근사한 집 한 채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실리콘밸리의 인터넷 기업으로 옮기면서 연봉이 무려 1만5000달러나 오른 데다 세계 경제를 쥐고 흔들던 실리콘밸리발(發) 닷컴 열풍은 이 모든 것을 이루어줄 것 같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녀가 미국행을 선택한 지난해 초부터 실리콘밸리의 닷컴 기업들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허망하게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멀쩡하게 출근했다가 느닷없이 해고 통지서를 받아 든 앨리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한 달 동안 세 차례나 정리해고된 동료의 경우를 보면서 위안을 삼는 일뿐이었다.

구직활동의 든든한 동반자

이처럼 정리해고가 일상화되다시피 한 미국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넘쳐나는 실업자들의 재취업 문제는 이미 기업 일선에서 새로운 골칫거리로 등장한 지 오래다. 실직 전 임금의 30% 정도를 실업급여로 지급하고 회사에 따라서는 퇴직 위로금을 주는 곳도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정리해고로 인한 사회적 이탈자들을 뒷받침하기에는 역부족. 이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웃플레이스먼트(outplacement)라고 불리는 전직 지원 프로그램이다.

AOL에서 6주 만에 정리해고된 앨리스가 그 전 직장에서 해고당했을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구직 활동의 든든한 동반자가 새로 생겼다는 점이다. AOL의 방침에 따라 드레이크 빔 모린(Drake Beam Morin·DBM)이라는 아웃플레이스먼트 업체에서 재취업 컨설팅을 받게 된 것. 앨리스는 실직 후에도 일주일에 두세 차례씩 DBM 사무실에 나와 재취업 관련 워크숍에도 참여하고 인터뷰 요령 같은 실무적 능력도 다시 배우고 있다. 물론 여기에 드는 모든 경비는 회사에서 부담한다. 전직 지원 업체와의 계약 기간도 재취업이 이루어지는 기간까지로, 별다른 제한이 없는 편이다. 43개국에 지사를 두고 있는 DBM의 켄 나이젤 수석부사장은 “대부분의 기업들이 일회성 계약이 아니라 장기 계약을 맺고 직원들의 재취업이나 경력 전환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구직 활동에 여념이 없는 앨리스는 “전직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교훈은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뿐만 아니라 능력 있는 사람이라도 해고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중요한 건 취업 아닌 ‘취업능력’
정리해고나 이직이 일상화된 미국에서는 아예 회사 내에 전직 지원 센터를 상설 조직으로 두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구조조정에 대비하거나 능력이 달리는 직원들의 직종 전환을 돕기 위해 분야별 상담역들이 365일 전문적 상담에 응하고 있는 것. 뉴욕 맨해튼 시내 브로드웨이 52번지에는 세계적 투자은행 제이피모건 체이스(JP Morgan Chase)가 자랑하는 경력관리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올해로 생긴 지 17년째 되는 이 은행의 경력관리센터에는 컨설턴트만 60명이 근무하면서 직원들의 이직이나 실업 후 재고용 등 다양한 요구에 일일이 상담해 주고 있다. 이 회사의 경우 임원급의 재취업이나 직종 전환은 외부 전문기관에 용역을 주지만 기타 직원들은 이 경력관리센터를 통해 자체 해결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 같은 경력관리센터가 뉴욕에만 브로드웨이, 월 스트리트 등 모두 네 곳에 있다. 경력관리센터를 이용하는 직원들만 해도 3000명 이상이라는 것이 센터 관계자의 설명. 경력관리센터의 제시카 모리슨씨는 “센터 내에서는 직책이나 직급에 관계없이 모든 직원이 똑같이 대우받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말했다.

자연스레 직장인들은 자신의 능력과 회사의 비전이 도저히 맞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 회사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다른 직책 또는 다른 직장으로 변신을 시도할 수 있는 길을 터놓고 있다. 또한 해당 근로자에게 직종 전환이나 이직을 권유한 회사는 아웃플레이스먼트 프로그램을 통해 최선을 다해 그의 경력 전환 과정을 돕는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적 경제 전문지 ‘포춘’의 직업 분야 칼럼니스트인 앤 피셔는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취업 자체가 아니라 ‘취업능력’(employability)이라고 강조한다. 앤 피셔는 포춘에 ‘애니에게 물어보세요’(Ask Annie)라는 고정 칼럼을 연재하며 정리해고자를 포함해 수많은 고정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명칼럼니스트.

“과거의 고용 형태가 평생직장 개념을 기초로 했다면,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몸값을 높여 취업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말하자면 임플로이먼트(employment)가 아니라 임플로이어빌러티(employability)인 셈이죠”

이처럼 취업능력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 현상이다. 그러나 하루하루 업무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이 자기 계발을 위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 하지만 다운사이징이 이미 보통명사가 되어버린 미국에서 새로운 직업을 찾으려는 사람들 중 자기 분야와 관련해 새로운 전문성을 확보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중 누가 더 나은 취업능력을 갖고 있는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자기 계발을 소홀히 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없다거나 상사의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 주된 이유. 미국의 인적자원 전문가들은 회사 경영자들이 직원들의 자기 계발이야말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직원 개개인의 능력 개발에 소요되는 시간을 회사가 보장해야 한다는 것.

반면 직원들 입장에서도 문제점은 있다. 미국 내 최대 물류 운송 전문회사인 트랜스아메리카의 인적자원 담당 디렉터를 지낸 팻 블레어는 “직장인들은 막연한 두려움을 갖거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경력 전환을 꺼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기억했다.

또한 미국 내 인적자원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최고경영자(CEO)의 태도라고 입을 모은다. GTE의 인적자원 담당 매니저를 지내고 현재 인적자원 컨설팅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존 벡은 기업체 CEO들이 다운사이징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에도 관심 깊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충고한다. 정리해고를 밥 먹듯이 하고 있는 미국 기업의 CEO들이 가장 고민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부분. 존 벡은 창업 지원이나 경력 전환을 위해 회사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보여줌으로써 당사자들의 반발 요인을 사전에 없애야 한다고 지적한다.

중요한 건 취업 아닌 ‘취업능력’
흥미로운 것은 미국 유수 기업의 경우 다운사이징 등 경영상 결정에 대해 CEO의 고민을 상담해 줄 수 있는 외부 자문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 ‘이그제큐티브 코치’(executive coach)라고 불리는 이들 자문 집단은 회사와 계약을 맺은 아웃플레이스먼트 컨설팅업체에 소속된 전직 CEO들로 구성된다. 고객 회사의 요구가 있을 때는 풍부한 경험을 가진 이들 전직 CEO들이 나서 경영자문에 응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업의 CEO가 중요한 경영상 판단과 관련해 한꺼번에 받는 중압감을 줄일 수 있어 생산성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

그러나 미국 역시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내기까지는 수많은 대가를 치렀다. 세계적 규모를 자랑하는 정유회사 셰브론텍사코의 조지 펜시 대외정책 담당 매니저는 “1980년대 후반 들어서야 미국 정유회사들 사이에서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평생직장 개념을 유지하기 위한 시도를 포기하지 않았던 회사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시도보다 훨씬 빠르게 변하는 비즈니스 환경 때문에 더 이상의 시도는 불가능해졌다는 것. 조지 펜시는 “근로자들이 시시각각 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적응해 스스로 책임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은 전통적으로 노조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었던 정유나 화학산업 등에서 노조의 목소리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다. 굴지의 화학업체인 다우케미컬의 경우 1967년 노조 가입률이 80%에서 15년 만에 15%까지 떨어지는 몰락의 역사를 경험하기도 했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고용 환경 속에서 개인의 능력보다 집단의 목소리를 우선시하는 노조는 자연스레 설 땅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다.

수많은 세계 최강 기업들을 보유한 미국의 사례는 급격한 변화와 진통을 겪고 있는 한국의 노동시장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아직 시사점을 찾기에는 두 나라 간 간극은 너무나 멀어 보였다. 미국에서 만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한국의 퇴직금 제도나 학자금 보조, 자기보다 어린 사람 밑에서는 일할 수 없다는 연공서열 문화 등 모든 한국적 관행에 대해 무척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333호 (p24~26)

< 뉴욕·샌프란시스코=성기영 기자 >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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