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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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연주, 유쾌한 소동 사춘기 성장통 노래

  • 입력2006-04-12 17: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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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툰 연주, 유쾌한 소동 사춘기 성장통 노래

    이 영화의 여고생들은 몰래 숨어서 사랑하고, 친해지고, 커나간다. 시궁창 쥐처럼.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워터 보이즈’ 속 남학생들이 모조리 삼각팬티 수영복에 한 미모(?) 뽐내며 수중발레를 하는 사이,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하나와 앨리스’의 하나가 학교 축제 때 만담에 도전해 단단히 고역을 치르는 사이, 또 하나의 여학생 무리가 이번에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밴드 그룹에 도전한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린다 린다 린다’의 시바사키 여고생들은 밴드 멤버가 부상을 당하고 멤버 간의 불화로 밴드에 균열이 생기자, 한국 유학생인 ‘송(배두나 분)’을 보컬리스트로 영입해 맹렬한 연습에 돌입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한국 교환학생 ‘송’은 한일 문화교류를 위해 일본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려고 하지만 번번이 동네꼬마와 시간을 때우기 일쑤다. 문화제까지는 단 3일. 키보드를 치던 케이(가시이 유우 분)는 다혈질이고, 교코(마에다 아키 분)는 짝사랑하는 남학생 때문에 연습에 늦기 일쑤, 무뚝뚝한 노조미(세키네 시오리 분)는 여전히 별 말이 없다. 늦은 밤, 학교에 잠입해 밤이 새도록 연습하는 곡은 일본의 대표적인 펑크록 밴드 ‘블루하트’의 ‘린다 린다 린다’. 송은 노래방에서도 연습실에서도 일본 친구들의 연주에 맞춰 목이 터져라 연습을 하지만 과연 뜻대로 될까?

    “시궁창 쥐처럼 아름다워지고 싶어”

    ‘린다 린다 린다’에는 이와이 슈운지 류의 섬세한 세일러복 팬터지, 그러니까 귀엽고 사랑스럽고 깨물어주고 싶은 세일러 문의 소녀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야구치 시노부의 여고생들, 발랄 상쾌 통쾌 유쾌한 스윙 걸즈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이미 배두나(그녀의 뚱하면서도 속을 알 수 없는 아이콘을 상기해보라)를 기용했다는 핀치히터(대타자) 작전에서도 알 수 있듯, 영화 속 소녀들은 오히려 이렇게 노래를 부른다. “시궁창의 쥐처럼 아름다워지고 싶어. 사진에는 찍히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으니까.” 또한 이들 밴드가 연습하는 소리를 벽을 통해 들은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몰래 숨어서 연습하지 말라고 해.”

    그렇다. ‘린다 린다 린다’의 여고생들은 몰래 숨어서 사랑하고, 몰래 숨어서 친해지고, 몰래 숨어서 커나간다. 어둠의 질량을 고스란히 안고 깊은 구멍에서 눈만 빛내는 시궁창 쥐처럼. 청춘의 여백의 지름은 의외로 넓어 보이고, 결국 영화가 끝날 때까지 교코는 짝사랑하는 남학생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목청껏 ‘린다 린다 린다’를 외치는 그녀들은 어른들이 투사하는 ‘청춘’이라는 팬터지의 장막을 걷고, 말없이 표면 밑의 진물, 그 진한 성장통을 감내하며 노래 부른다.



    이것이 바로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세계일 것이다. 오사카를 배경으로 해서 줄곧 영화를 만들고 있는 그는 다소 무기력하면서도 황량하고 공허한 일본 사회를 견뎌내는 백수 캐릭터들을 그려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 스토리는 별것 없이 소소한 것들 투성이인데 그 이야기 사이에 서 있는 주인공들의 뒷모습을 그려내는 내공이 남다르다. 전작인 ‘바보들의 배’에서는 녹즙을 팔아보려고 갖은 애를 쓰는 남녀 커플이 등장하고, ‘후나키를 기다리며’에서는 아마추어 감독인 두 남자가 천신만고의 여행 끝에 소녀를 한 명 만나지만 그녀는 돌연히 사라졌다. 이런 야마시타 노부히로를 두고 ‘버라이어티’지는 “짐 자무시가 일본인이었다면 만들었을 그런 영화를 만든다”고 평한 바 있다.

    서툰 연주, 유쾌한 소동 사춘기 성장통 노래
    ‘린다 린다 린다’에서도 마찬가지다. 평상시 감독은 여고생들의 동선을 최대한 컷과 컷 사이에 숨겨둔다. 그녀들은 그저 수영장에서 무심히 둥둥 떠다니고, 옥상에 아무도 오지 않는 만화 카페를 만들고 혼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때 소녀들 개개인을 잡는 노부히로의 카메라는 그냥 주인공들이 쓸쓸한 만화경 곁을 스쳐 지나가게 만들거나, 여백이 가득한 화면 안에 혼자 내버려두거나, 어느 때는 아주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기도 한다. 그래서 영화 속 영화로 학교축제를 취재하는 고교생들의 비디오 화면이 오히려 생동감 있게 느껴질 정도로, 그의 연출은 일견 느슨해 보인다. 그러나 그 느슨해 보이는 연출 속에서는 오히려 한국과 일본 소녀들이 은연중 서로에게 느끼는 서먹함과 막연함, 모호함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온다.

    그러다 마침내 아주 살짝 이들에게도 생의 반짝이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송이 텅 빈 무대에서 한국어로 멤버들을 소개하는 연습을 할 때, 혹은 기타리스트인 케이가 주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커다란 고무 손을 받는 꿈을 꿀 때(그녀는 기타를 치기에는 작은 손을 고민했었다), 그 엉뚱한 만화적 상상력은 콧날이 찡해지도록 소녀들의 꿈의 부피를 관객들 가슴에 전달해준다.

    또한 이 영화의 숨겨진 주제 중 하나인 소통과 진심의 문제도 그러하다. 송은 자신에게 짝사랑을 고백하는 남학생에게 일어로 이야기하고, 남학생은 송을 위해 한국어로 이야기한다. 언제나 말, 즉 언어의 문제 때문에 이들은 어긋나고 엇갈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침내 밴드 멤버들은 장을 보면서 마늘을 사게 되고, 거울을 보면서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서툰 연주, 유쾌한 소동 사춘기 성장통 노래
    그제야 ‘아하’ 하고 다가온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 가사들이나 이들이 부르기로 결심했던 블루하트의 의미를. 1985년에 결성해 1995년까지 활약했던 블루하트는 일본을 대표하는 펑크그룹이었다. 그들의 곡 ‘린다 린다 린다’는 이 영화뿐 아니라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도 삽입될 정도로 지나간 일본 청춘시대를 상징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어로 블루하트는 ‘파란 마음’이고 주인공 송의 이름은 영어로 ‘노래’란 뜻이기도 하다. 감독은 그들이 세상에 대고 외치는 서툰 노래의 진심을 그저 생기발랄한 청춘의 오버하는 반항보다 더 사랑하는 것 같다.

    “어른으로 변신하기 전으로 다시 한번 돌아가시라”

    그래서 ‘린다 린다 린다’는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 개’가 그러하듯 모든 사람들이 사랑할 수는 없어도 일단의 관객들이라면 반복해서 관람하며 좋아할 만한 영화에 속한다. 감독은 “고교 시절 대책 없는 자존심과 새벽의 느낌으로 사춘기를 지냈던 그때의 마음을 영화를 보고 한번 떠올렸으면 한다”고 털어놓았다. 이 영화의 첫 대사는 “우리가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순간을 어른으로 변신한 순간이라고 할 순 없다. 아이를 그만두는 순간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시작한다. 왜 아니겠는가. 그 무규정의 세계 속으로, 어른으로 변신하기 전 다시 밤을 새고 떠들며 무언가에 빠져들어갔던 새벽의 주문으로 다시 한번 들어가시기를 권한다. 패스워드는 바로 이것.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외치시라. “린다! 린다! 린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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