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는 지난해까지 25차례 챔피언팀을 만들었다. 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가 그중 아홉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타이거즈는 97년을 끝으로 우승은커녕 준우승조차 하지 못했다.
타이거즈는 8개 팀 중 가장 오랫동안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한 팀으로, ‘타이거즈 신화’는 프로야구 초창기 15년간 이뤄진 것이다. 타이거즈는 1997년 이후 ‘잃어버린 10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1990년대 말 모기업 해태의 재정상태가 좋았다면 어땠을까. 연고지인 광주일고 출신 서재응(30), 김병현(28), 최희섭(28·사진) 등을 메이저리그에 빼앗기지 않았을 것이고, 그럼 지난 10년간 수차례 더 우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5월10일, KIA는 해태의 10년 한을 풀었다. 해외파 특별지명을 통해 총액 15억5000만원(계약금 8억원, 연봉 3억5000만원, 옵션 4억원)을 들여 최희섭을 데려온 것. KIA는 그에게 LG트윈스 봉중근(총액 13억5000만원)을 능가하는 역대 최고 대우를 해줬다.
총액 15억5000만원 최고 대우
최희섭은 미국에서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고 돌아온 선수다. 그런데도 KIA는 김병현(플로리다 말린스) 대신 최희섭을 ‘찍어’ 데려왔다. 그만큼 거포, 특히 왼손잡이 홈런타자에 대한 갈증이 심했기 때문이다.
해태의 4번 타자를 추억해보자. 김봉연 한대화 김준환 홍현우 이호성 등 쟁쟁한 올드보이가 떠오른다. 이름만으로도 상대를 떨게 했던 이들이다. 그렇다면 2000년 해태를 인수한 KIA의 역대 4번 타자는?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김응룡 삼성 라이온즈 사장은 해태 감독 시절인 1998년, 광주일고 졸업 예정자이던 최희섭을 영입하고 싶어했다. 195cm, 105kg 체격에 순발력까지 타고났으니 그를 영입하면 10년 대계를 세울 만했다.
최희섭의 또 다른 프리미엄은 왼손잡이라는 점이었다. 당시까지 타이거즈의 간판타자는 모두 오른손 타자였다. 타선의 좌우 균형을 맞추고 싶었던 김응룡 당시 감독이 최희섭에게 목을 맨 이유다. 해태는 3억원(당시 고졸 계약금 상한선)을 최희섭에게 주려 했고, 최희섭은 구단 제시액보다 5000만원을 더 받고자 했다. 김 전 감독은 웃돈을 줘서라도 최희섭을 잡아달라고 했지만, 자금난에 허덕이던 해태는 최희섭을 결국 고려대(계약금 2억원)에 빼앗겼다.
최희섭은 99년 계약금 120만 달러를 받고 메이저리그 시카고컵스에 입단했다. 이후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타자’라는 간판을 달았다. 2004년 컵스를 떠나 플로리다 말린스, LA 다저스, 보스턴 레드삭스,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등을 거치면서 타율 2할4푼 40홈런 120타점을 기록했다. 실패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최희섭이 미국에서 꿈을 좇는 동안 타이거즈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좋은 투수가 잇따라 입단하고는 있지만 타자 자원은 늘 부족했다. 간판타자 이종범은 노쇠한 지 오래됐고, 좌타자 장성호는 정교하지만 해결사는 못 된다.
언제나 4번 타자가 문제였다. 홍세완은 수비 부담이 큰 유격수인 데다 부상이 많았고, 대타 요원이던 이재주는 정교함이 떨어진다. 현대 유니콘스에서 폐기처분된 래리 서튼을 올 시즌 데려왔지만 부상에 신음하고 있다.
KIA는 10년 전 3억5000만원이면 잡을 수 있었던 최희섭을 12억원 늘어난 15억5000만원을 주고 데려왔다. 구단 처지에선 리스크가 큰 만큼 기대도 크다.
투·타 전력 상승, 관중 몰이 효과
당당한 체격과 화려한 경력. 최희섭에게선 타이거즈의 역대 4번 타자들이 오버랩된다. 타이거즈 최고의 4번 타자로는 원년 홈런왕 김봉연(극동대 교수)과 타점기계 한대화(삼성 수석코치)가 꼽힌다. 그들 앞에는 4번 타자보다 더 무서운 3번 타자 김성한(전 KIA 감독)이 있었다.
김준환(전 쌍방울 감독)도 4번 타자에 이름을 올렸고, 90년대 초엔 좌타자 박철우(광주 진흥고 감독)가 활약하기도 했다. 90년대에는 신예 홍현우(은퇴)가 거포 계보를 이었다. 해태 말년에는 이호성(은퇴)도 4번 타자로 뛰었다.
최희섭이 타이거즈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배들에게 버금가는 활약을 해준다면 KIA가 우승권으로 도약할 수도 있다. 최희섭에게 1루수를 내준 장성호는 좌익수로 전향했다. 좌익수 서튼을 방출, 외국인 투수 1명을 데려올 수 있는 여지도 생겼다. 최희섭 덕분에 투수·타자 모두 전력 상승효과가 기대되는 것.
김성근 SK 와이번스 감독은 “최희섭이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지 못한 것은 떨어지는 변화구 때문이었다. 국내에는 그런 공을 던지는 투수가 많지 않다”면서 ‘돌아온 빅 초이’의 성공을 낙관했다. 최희섭도 “메이저리그처럼 투수들의 공이 현란한 팀은 없다. 한국에서 이승엽 선배의 홈런기록(2003년 56홈런)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KIA는 해태 인수와 동시에 일본에서 이종범을 재영입해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이종범은 썰렁했던 광주구장을 들끓게 했고, 4강권에서 멀어졌던 팀을 2002년부터 3년간 포스트시즌에 올려놨다. 그러나 우승까지는 힘이 달렸다. 그래서 KIA는 진필중 박재홍 마해영 등 외부에서 우승 청부사를 찾았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같이 팀과 불화만 일으키고 떠났다. 외부 선수들이 오고 가면서 아홉 차례 우승에 빛나는 타이거즈의 팀컬러가 퇴색했다.
KIA는 지난 2년간 외부에서 선수를 영입하지 않았으며, 2009년 이후엔 연고지 우선 지명권이 없어지는데도 광주·전남 지역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5월 초 끝난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에선 광주일고가 극적으로 우승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KIA는 한 달 이상 끌어온 광주일고 출신 최희섭과의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10년 전 실패했던 계약을 되살린 타이거즈가 소망하는 것은 무엇일까. 돌아온 빅 초이가 ‘광주 야구의 부활을 알리는’ 홈런포를 연거푸 쏘아올리는 것이 아닐까.
타이거즈는 8개 팀 중 가장 오랫동안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한 팀으로, ‘타이거즈 신화’는 프로야구 초창기 15년간 이뤄진 것이다. 타이거즈는 1997년 이후 ‘잃어버린 10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1990년대 말 모기업 해태의 재정상태가 좋았다면 어땠을까. 연고지인 광주일고 출신 서재응(30), 김병현(28), 최희섭(28·사진) 등을 메이저리그에 빼앗기지 않았을 것이고, 그럼 지난 10년간 수차례 더 우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5월10일, KIA는 해태의 10년 한을 풀었다. 해외파 특별지명을 통해 총액 15억5000만원(계약금 8억원, 연봉 3억5000만원, 옵션 4억원)을 들여 최희섭을 데려온 것. KIA는 그에게 LG트윈스 봉중근(총액 13억5000만원)을 능가하는 역대 최고 대우를 해줬다.
총액 15억5000만원 최고 대우
최희섭은 미국에서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고 돌아온 선수다. 그런데도 KIA는 김병현(플로리다 말린스) 대신 최희섭을 ‘찍어’ 데려왔다. 그만큼 거포, 특히 왼손잡이 홈런타자에 대한 갈증이 심했기 때문이다.
해태의 4번 타자를 추억해보자. 김봉연 한대화 김준환 홍현우 이호성 등 쟁쟁한 올드보이가 떠오른다. 이름만으로도 상대를 떨게 했던 이들이다. 그렇다면 2000년 해태를 인수한 KIA의 역대 4번 타자는?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김응룡 삼성 라이온즈 사장은 해태 감독 시절인 1998년, 광주일고 졸업 예정자이던 최희섭을 영입하고 싶어했다. 195cm, 105kg 체격에 순발력까지 타고났으니 그를 영입하면 10년 대계를 세울 만했다.
최희섭의 또 다른 프리미엄은 왼손잡이라는 점이었다. 당시까지 타이거즈의 간판타자는 모두 오른손 타자였다. 타선의 좌우 균형을 맞추고 싶었던 김응룡 당시 감독이 최희섭에게 목을 맨 이유다. 해태는 3억원(당시 고졸 계약금 상한선)을 최희섭에게 주려 했고, 최희섭은 구단 제시액보다 5000만원을 더 받고자 했다. 김 전 감독은 웃돈을 줘서라도 최희섭을 잡아달라고 했지만, 자금난에 허덕이던 해태는 최희섭을 결국 고려대(계약금 2억원)에 빼앗겼다.
최희섭은 99년 계약금 120만 달러를 받고 메이저리그 시카고컵스에 입단했다. 이후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타자’라는 간판을 달았다. 2004년 컵스를 떠나 플로리다 말린스, LA 다저스, 보스턴 레드삭스,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등을 거치면서 타율 2할4푼 40홈런 120타점을 기록했다. 실패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최희섭이 미국에서 꿈을 좇는 동안 타이거즈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좋은 투수가 잇따라 입단하고는 있지만 타자 자원은 늘 부족했다. 간판타자 이종범은 노쇠한 지 오래됐고, 좌타자 장성호는 정교하지만 해결사는 못 된다.
언제나 4번 타자가 문제였다. 홍세완은 수비 부담이 큰 유격수인 데다 부상이 많았고, 대타 요원이던 이재주는 정교함이 떨어진다. 현대 유니콘스에서 폐기처분된 래리 서튼을 올 시즌 데려왔지만 부상에 신음하고 있다.
KIA는 10년 전 3억5000만원이면 잡을 수 있었던 최희섭을 12억원 늘어난 15억5000만원을 주고 데려왔다. 구단 처지에선 리스크가 큰 만큼 기대도 크다.
투·타 전력 상승, 관중 몰이 효과
당당한 체격과 화려한 경력. 최희섭에게선 타이거즈의 역대 4번 타자들이 오버랩된다. 타이거즈 최고의 4번 타자로는 원년 홈런왕 김봉연(극동대 교수)과 타점기계 한대화(삼성 수석코치)가 꼽힌다. 그들 앞에는 4번 타자보다 더 무서운 3번 타자 김성한(전 KIA 감독)이 있었다.
김준환(전 쌍방울 감독)도 4번 타자에 이름을 올렸고, 90년대 초엔 좌타자 박철우(광주 진흥고 감독)가 활약하기도 했다. 90년대에는 신예 홍현우(은퇴)가 거포 계보를 이었다. 해태 말년에는 이호성(은퇴)도 4번 타자로 뛰었다.
최희섭이 타이거즈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배들에게 버금가는 활약을 해준다면 KIA가 우승권으로 도약할 수도 있다. 최희섭에게 1루수를 내준 장성호는 좌익수로 전향했다. 좌익수 서튼을 방출, 외국인 투수 1명을 데려올 수 있는 여지도 생겼다. 최희섭 덕분에 투수·타자 모두 전력 상승효과가 기대되는 것.
김성근 SK 와이번스 감독은 “최희섭이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지 못한 것은 떨어지는 변화구 때문이었다. 국내에는 그런 공을 던지는 투수가 많지 않다”면서 ‘돌아온 빅 초이’의 성공을 낙관했다. 최희섭도 “메이저리그처럼 투수들의 공이 현란한 팀은 없다. 한국에서 이승엽 선배의 홈런기록(2003년 56홈런)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KIA는 해태 인수와 동시에 일본에서 이종범을 재영입해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이종범은 썰렁했던 광주구장을 들끓게 했고, 4강권에서 멀어졌던 팀을 2002년부터 3년간 포스트시즌에 올려놨다. 그러나 우승까지는 힘이 달렸다. 그래서 KIA는 진필중 박재홍 마해영 등 외부에서 우승 청부사를 찾았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같이 팀과 불화만 일으키고 떠났다. 외부 선수들이 오고 가면서 아홉 차례 우승에 빛나는 타이거즈의 팀컬러가 퇴색했다.
KIA는 지난 2년간 외부에서 선수를 영입하지 않았으며, 2009년 이후엔 연고지 우선 지명권이 없어지는데도 광주·전남 지역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5월 초 끝난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에선 광주일고가 극적으로 우승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KIA는 한 달 이상 끌어온 광주일고 출신 최희섭과의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10년 전 실패했던 계약을 되살린 타이거즈가 소망하는 것은 무엇일까. 돌아온 빅 초이가 ‘광주 야구의 부활을 알리는’ 홈런포를 연거푸 쏘아올리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