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는 없다. 이제부터 히딩크는 없다. 단순히 그가 그의 조국 네덜란드로 떠났기 때문이 아니다. 선가(禪家)에서는 깨달음을 위해 ‘부처를 죽여라’ ‘부처를 베어라’고 한다. 마찬가지다. 이제부터 한국은 히딩크를 ‘베어야’ 한다. 히딩크를 넘어야 한다.
히딩크는 그동안 우리들에게 ‘경영혁신을 통한 변혁적 리더십’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되었다. 따라서 히딩크에게서는 피터 드러커가 연상된다. 한 명은 축구감독이요 한 명은 저명한 경제학자지만, 추구하는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은 비슷하다. 지식사회의 도래를 처음으로 역설한 피터 드러커는 21세기 사회에 대응하는 전략에 대해 “경영에 대한 기존 관념을 완전히 바꿔라”고 역설한다. 히딩크 역시 그랬다. 그는 우리 대표팀의 문제를 ‘기술이 아닌 체력’으로 파악했고, 이를 위해 기존의 모든 관행과 시스템을 바꿨다.
히딩크가 돌아가면 우리 축구계가 예전의 고질적인 모습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히딩크가 없는 축구대표팀은 다시 우왕좌왕하다 조타수 없는 배처럼 헤맬 것이라는 예측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무엇인가는 바뀌었다. 히딩크를 통해 바뀐 무엇인가는 우리 대표팀과 축구계에,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변화다.
따라서 축구에 대한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개인적인 소견이다. 그러나 경제는 다르다.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우울한 소식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월드컵 기간중에도 분명 진행되고 있었던 사안이었건만, 잘 들리지도 잘 보이지도 않았던 문제들이다.
우선 공기업의 생산성이 형편없다는 소식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55개 공기업과 2000여개 민간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비교분석한 결과, 공기업의 노동생산성은 민간기업의 66% 수준, 자본생산성은 20% 수준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기업의 생산성에 대해서는 지난 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심각한 논의들이 있었고, 그 어느 분야보다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생산성을 볼 때, 과연 구조조정이 제대로 진행됐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역시 한국의 고질병 그대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하는 척만 한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런 걱정은 경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재 상황’에 대한 우려로 이어진다.
사실 온 국민이 보여준 월드컵에 대한 열정은 국민의 염원을 간파하여 그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실현할 수 있는 리더십이 실종된 상황에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찾은 것이다. 열정이 식으면 사회는 다시 응집력을 상실한 채 표류할 수도 있다. 벌써 햇볕정책의 공과를 둘러싼 정쟁, 급증하는 노사분규 등으로 사회가 이완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모처럼 분출된 국민에너지를 어떻게 국가경쟁력 강화에 활용할 것인가. 우리는 그 해답을 역시 히딩크 리더십의 뿌리인 네덜란드 등의 강소국(强小國)에서 찾을 수 있다. 네덜란드 스웨덴 핀란드 스위스 등 이른바 강소국의 장점을 살려 ‘작지만 강한 나라’를 추구해야 한다는 얘기다.
‘변혁적 리더십’ 체화로 신화창조 밑거름 삼아야
이들 국가는 기업에 대한 규제를 최대한 억제하고, 기업은 시장질서를 존중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있다. 또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01년도 세계경쟁력 연감에 따르면, 국가경쟁력에서 핀란드 3위, 네덜란드 5위, 스웨덴 8위로 독일 12위, 영국 19위, 프랑스 25위, 일본 26위 등 강대국들을 크게 앞서고 있다. 이들 강소국은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따라 한정된 자원과 능력을 주력산업에 집중 투자함으로써 현재의 입지를 구축했다. 아일랜드는 소프트웨어 산업, 핀란드는 이동통신 산업, 네덜란드는 물류산업에 집중함으로써 강소국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이들 나라들이 부국으로 성장하는 데 정치의 역할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유럽의 변방에 위치한 이들은 오랜 기간 동안 종교·민족간 갈등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이들 강소국은 갈등을 민주주의적 방법과 절차를 통해 순치하며 모든 인종과 지역이 배타적 독주를 할 수 없는 시스템을 고안해냈다. 합의와 협력의 정치문화를 일궈낸 이들 강소국의 경험은 우리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그라운드에서 보여주었던 태극전사들의 협력을 정부-기업-학계가 재현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지혜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말 행운처럼 찾아온 국민적 화합의 분위기를 정치권과 지도자들이 다시 갈등과 분열로 내모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제 히딩크는 없다. 히딩크를 뛰어넘어 그가 남긴 교훈을 국민 모두가 체화할 때 새로운 신화를 쓰는 것이 가능하다.
히딩크는 그동안 우리들에게 ‘경영혁신을 통한 변혁적 리더십’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되었다. 따라서 히딩크에게서는 피터 드러커가 연상된다. 한 명은 축구감독이요 한 명은 저명한 경제학자지만, 추구하는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은 비슷하다. 지식사회의 도래를 처음으로 역설한 피터 드러커는 21세기 사회에 대응하는 전략에 대해 “경영에 대한 기존 관념을 완전히 바꿔라”고 역설한다. 히딩크 역시 그랬다. 그는 우리 대표팀의 문제를 ‘기술이 아닌 체력’으로 파악했고, 이를 위해 기존의 모든 관행과 시스템을 바꿨다.
히딩크가 돌아가면 우리 축구계가 예전의 고질적인 모습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히딩크가 없는 축구대표팀은 다시 우왕좌왕하다 조타수 없는 배처럼 헤맬 것이라는 예측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무엇인가는 바뀌었다. 히딩크를 통해 바뀐 무엇인가는 우리 대표팀과 축구계에,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변화다.
따라서 축구에 대한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개인적인 소견이다. 그러나 경제는 다르다.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우울한 소식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월드컵 기간중에도 분명 진행되고 있었던 사안이었건만, 잘 들리지도 잘 보이지도 않았던 문제들이다.
우선 공기업의 생산성이 형편없다는 소식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55개 공기업과 2000여개 민간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비교분석한 결과, 공기업의 노동생산성은 민간기업의 66% 수준, 자본생산성은 20% 수준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기업의 생산성에 대해서는 지난 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심각한 논의들이 있었고, 그 어느 분야보다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생산성을 볼 때, 과연 구조조정이 제대로 진행됐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역시 한국의 고질병 그대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하는 척만 한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런 걱정은 경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재 상황’에 대한 우려로 이어진다.
사실 온 국민이 보여준 월드컵에 대한 열정은 국민의 염원을 간파하여 그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실현할 수 있는 리더십이 실종된 상황에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찾은 것이다. 열정이 식으면 사회는 다시 응집력을 상실한 채 표류할 수도 있다. 벌써 햇볕정책의 공과를 둘러싼 정쟁, 급증하는 노사분규 등으로 사회가 이완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모처럼 분출된 국민에너지를 어떻게 국가경쟁력 강화에 활용할 것인가. 우리는 그 해답을 역시 히딩크 리더십의 뿌리인 네덜란드 등의 강소국(强小國)에서 찾을 수 있다. 네덜란드 스웨덴 핀란드 스위스 등 이른바 강소국의 장점을 살려 ‘작지만 강한 나라’를 추구해야 한다는 얘기다.
‘변혁적 리더십’ 체화로 신화창조 밑거름 삼아야
이들 국가는 기업에 대한 규제를 최대한 억제하고, 기업은 시장질서를 존중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있다. 또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01년도 세계경쟁력 연감에 따르면, 국가경쟁력에서 핀란드 3위, 네덜란드 5위, 스웨덴 8위로 독일 12위, 영국 19위, 프랑스 25위, 일본 26위 등 강대국들을 크게 앞서고 있다. 이들 강소국은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따라 한정된 자원과 능력을 주력산업에 집중 투자함으로써 현재의 입지를 구축했다. 아일랜드는 소프트웨어 산업, 핀란드는 이동통신 산업, 네덜란드는 물류산업에 집중함으로써 강소국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이들 나라들이 부국으로 성장하는 데 정치의 역할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유럽의 변방에 위치한 이들은 오랜 기간 동안 종교·민족간 갈등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이들 강소국은 갈등을 민주주의적 방법과 절차를 통해 순치하며 모든 인종과 지역이 배타적 독주를 할 수 없는 시스템을 고안해냈다. 합의와 협력의 정치문화를 일궈낸 이들 강소국의 경험은 우리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그라운드에서 보여주었던 태극전사들의 협력을 정부-기업-학계가 재현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지혜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말 행운처럼 찾아온 국민적 화합의 분위기를 정치권과 지도자들이 다시 갈등과 분열로 내모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제 히딩크는 없다. 히딩크를 뛰어넘어 그가 남긴 교훈을 국민 모두가 체화할 때 새로운 신화를 쓰는 것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