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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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이전트’는 21세기 황금직업

선수들 해외 진출 확대로 시장규모 팽창… 발굴부터 스타 조련까지 ‘대박과 보람’ 동시에

  •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4-10-15 14: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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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에이전트’는 21세기 황금직업
    35세의 스포츠에이전트 제리 맥과이어는 편법과 술수를 쓰지 않고 선수들의 권익을 대변하다 회사에서 쫓겨난다. 해고당한 그를 따라 나선 고객은, 늘 “Show me the money!”(돈 벌어줘)라고 조르기만 하는 무명의 미식축구선수 로드 한 명뿐. “자신에 대한 성실함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제리의 설득에 감명받은 로드는 결국 NFL(미국 미식축구 리그) 최고의 스타가 돼 그의 헌신에 보답한다.

    “Show me the money!”란 대사로 유명한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제리 맥과이어’의 줄거리다. 에이전트의 표본을 보여준 이 영화의 얼개는 세계적 스포츠에이전시인 IMG의 회장 마크 매코믹의 실화를 토대로 한 것이다. ‘에이전트 업계의 전설’로 통하는 매코믹은 60년 프로골퍼 아놀드 퍼머와의 계약을 디딤돌로 IMG를 세계 38개국에 80여개 지사를 가진 매니지먼트 회사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스포츠마케팅 회사가 우후죽순처럼 설립되면서 스포츠에이전트 사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등록되지 않은 업체까지 포함하면 스포츠에이전시는 50여개에 이를 정도.

    미국·유럽 비해 ‘걸음마 단계’

    스포츠에이전트는 ‘스포츠 시장’이 거대해지고 수요자와 공급자 간의 이해관계로 인한 다툼이 늘어나면서 60년대 미국에서 등장한 직업으로, 21세기 유망직종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선 80년대부터 스포츠에이전시가 황금알을 낳는 사업으로 자리잡았다.



    스포츠에이전트는 사전적 의미로 보면 프로선수가 구단에 입단해 연봉이나 스폰서 계약을 할 때 선수에게 최고의 이익을 확보해 주기 위해 협상에 나서는 대리인을 말한다. 주로 △입단 및 연봉협상 △스폰서십 유치 △투자 자문과 재산관리 △세무 및 법률서비스 제공 △부대 수입원 개발 등의 일을 하는데, 국내에 에이전트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프로축구에 외국인 ‘용병’들이 진출하기 시작한 90년대 초반부터. 도입 초기 국내 선수의 해외 진출은 가물에 콩 나듯 이뤄져 용병 수입 외에는 시장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다. 외국에서 용병을 들여올 때도 기본 프로필과 연봉 액수를 제시하는 수준의 일이 고작이었다.

    이처럼 기초 수준에서 이뤄지던 스포츠에이전트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무명의 박찬호 선수가 에이전트 스티브 김의 도움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120만 달러의 계약으로 ‘대박’을 터뜨리면서부터. 고액 연봉에다 명예까지 거머쥔 박선수의 오늘은 스티브 김의 묵묵한 뒷바라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90년대 이전에도 국내 에이전트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인 에이전트의 원조는 80년대 초반 에이전트 일을 시작한 김정호씨(51·김스포츠인터내셔널 대표). 김씨는 에이전트 일을 시작한 계기에 대해 “유럽을 상대로 에이전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한국에 전무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90년대 초반까지 한국인 에이전트는 통틀어 3명 정도에 불과했다.

    “제가 시장을 개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주로 국가대표팀 A매치를 주선하다가 90년대 초반부터 용병들을 수입하기 시작했고 그 뒤로 한국 선수의 수출로 이어졌습니다.” 김씨는 김주성 황선홍 박종원 선수의 유럽 진출을 도왔다. 그는 “에이전트는 선수들의 법적 대리인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한다. 때로는 스승, 가족 노릇도 해야 한다는 것. 김주성 선수가 독일생활에 적응하지 못할 때는 그 역시 괴로워했고, 황선홍 선수가 독일 2부리그를 전전하다 한국으로 되돌아왔을 때는 황선수보다 더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최근엔 김씨 같은 1세대 에이전트들의 뒤를 이어 외국어와 해외 학위로 무장한 3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스포츠마케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판 제리 맥과이어를 꿈꾸는 경력 5년차 에이전트 서동규씨(33·더스포츠)의 꿈은 선수들의 재산관리, 노후 설계까지 책임지는 미국식 에이전트가 되는 것이다. 그는 연봉협상에서 선수들이 실력에 맞는 대접을 받게 됐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우수한 선수를 헐값에 부리고 싶은’ 구단과 ‘좋은 대우에 높은 연봉’을 받고 싶어하는 선수들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까지 치열한 다툼을 벌이게 마련이다. 법률지식이나 비즈니스 감각이 부족한 선수들은 서씨 같은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객관적인 데이터를 토대로 협상에 나서야만 ‘협상 전문가’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제가 만든 자료를 토대로 선수들이 적정한 연봉을 받았을 때 느끼는 쾌감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을 모를 겁니다.”

    에이전트들은 유명선수의 확보도 중요하지만 수익 면에서 보면 신인선수의 발굴이 부가가치가 더 높다고 말한다. 올해 1월 에이전트 일을 시작한 새내기 에이전트 김진호씨(31·위더스스포츠)는 ‘돈을 벌어줄’ 고객을 찾기 위해 효창운동장과 동대문구장을 밥 먹듯 들른다. 중·고등학교 선수들 중에서 재목을 발굴해내는 것은 농부가 씨를 뿌리는 일과 같다.

    “우수 선수를 찾아내는 안목은 에이전트에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10명 정도의 선수를 관리할 경우 돈이 되는 선수는 2, 3명에 불과해요. 나머지는 모두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것이지요.”

    호주에서 스포츠마케팅을 전공한 김씨는 영어와 일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에이전트의 필수조건인 외국어 능력을 완벽히 갖춘 셈이다. 김씨는 2, 3년 후 유럽으로 다시 유학 갈 예정이다. 히딩크 감독의 파워프로그램처럼 선수들에게 체계화된 개인훈련 시스템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지식을 갖추고 싶어서다. 김씨는 “선수들이 운동을 게을리 할 때는 심하게 꾸짖기도 한다”면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에이전트가 아니라 무명선수의 권익까지도 대변하는 참 에이전트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입단 알선을 통해 돈만 챙기고 돌보지는 않아 선수를 희생시키는 브로커가 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스포츠매니지먼트 사업은 스포츠 선진국과 비교할 때 아직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국내 에이전시들은 대부분 지연·학연 등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가족이나 친인척 위주로 꾸려지는 경우가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과거 해외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은 실력에 걸맞지 않는 ‘헐값’에 팔려가는 경우가 많았다. 한 외국계 기업 에이전트는 “월드컵 이후 한국 선수들의 주가는 매우 높아졌지만, 계약을 제대로 성사시킬 수 있는 업체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유상철 황선홍 홍명보 등을 일본에 진출시킨 이반스포츠 이영중 대표는 “월드컵 이후 한국 선수들에게 쏟아지는 해외의 관심에 대처하기가 솔직히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자신과 같은 1세대 에이전트들처럼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해서는 세계를 상대로 사업할 수 없다”면서 “꾸준히 고급 인력들이 에이전트 사업으로 유입되고, 전문적인 대학교육을 통해 배출된 젊은이들이 미래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학부 과정에 스포츠마케팅 분야 전공을 설치해 놓은 대학은 서강대와 남서울대 정도. 대학원 경영학, 체육학 과정에서 스포츠에이전트 업무를 가르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커리큘럼이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다. 따라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고 학생들 관심도 높은 스포츠마케팅 분야에 대학들이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연세대 조광민 교수는 “월드컵으로 한국 스포츠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스포츠에이전트 산업은 향후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라며 “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어 학교교육이 보다 활성화된다면 10년 내 최고의 직업군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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