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감독은 떠났다. 그러나 곳곳에 남겨진 그의 흔적과 온 국민의 가슴에 새겨진 월드컵 4강 신화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풀어내게 한다. 히딩크 감독이 떠나기 이틀 전인 7월5일 오후, 1년 넘게 히딩크 감독의 ‘입’ 역할을 했던 미디어 담당관 허진씨(39)와 통역관 전한진씨(32)를 만났다. 대표팀 해단식을 마치자마자 약속장소로 나온 이들은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히딩크 감독을 이야기했다.
히딩크 감독을 비롯한 외국인 코칭스태프와 한국 코치 및 선수들의 의사소통을 담당했던 전씨는 히딩크 감독을 ‘임기응변의 귀재’이자, 완벽한 설정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훌륭한 연기자’라고 표현했다. 히딩크 감독이 훈련중에 내뱉는 거친 말 한마디 한마디와 선수들을 대하는 태도 등이 모두 의도적으로 행해진다는 것.
“처음엔 그의 거친 모습에 당황했지만, 이젠 그게 모두 설정에 따른 행동임을 알게 됐어요. 선수들을 향해 화를 내고 뒤돌아서서는 웃거든요. 선수들에게 자극이 필요하다 싶을 때는 일부러 화를 내는 거죠. 절대 신경질적이거나 흥분해서 화를 내는 일이 없어요. 더욱이 경기중엔 절대 화를 내지 않아요. 1대 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게임은 우리가 리드하고 있다. 잘하고 있다’며 용기를 북돋아주죠. 그의 철저한 팀 운영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경기중엔 절대로 화 안 내
히딩크의 ‘사전 설정’에는 뛰어난 화술도 포함된다.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 말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통역하길 바래요. 용건을 전달하기 위해 주변에 던져놓는 말들, 농담까지도 모조리 전달하는지 수시로 확인합니다. 번역한 우리 말이 좀 짧다 싶으면 ‘당신 뭐 빼놓은 것 아니냐’며 되물어요. 요점을 둘러싼 의도와 분위기, 자신의 기분까지 모든 것을 선수들에게 전달하길 원했어요.”
그 때문에 전씨는 늘 선수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했던 히딩크의 유머를 전달하는 게 제일 곤혹스러웠다고 말한다. 우리 정서와 잘 맞지 않는 단어나 표현을 어떻게 바꿀지 고심해야 했던 것. 자신의 말을 전해 들은 선수들에게서 웃음이 터져나와야만 히딩크는 만족했고, 전씨도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히딩크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영화나 책에 나올 법한 표현을 좋아했어요. 무엇이든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뛰어나 며칠 전 제가 했던 표현이 마음에 들면 어느새 그것을 활용했고, 핵심을 던지기보다는 돌려 말하는 것을 즐겼어요.” 이 때문에 히딩크 감독의 ‘어록’이 등장했고, 심지어는 ‘언어의 마술사’, ‘시인’이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이들에 따르면 히딩크 감독은 특정 선수를 부각하는 발언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것. 그러면서도 김남일 송종국 이을용 등 자신이 발굴해낸 선수들의 뛰어난 기량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가졌다고 한다. 또 체격은 왜소하지만 스피드나 기술, 체력, 정신력, 자제력 등 어느 면에서도 빠지지 않는 박지성 선수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그는 선수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특징을 발견해내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안정환 선수는 사실 센터포워드가 아니었어요. 양 날개에 익숙한 본인도 그 위치만은 자신 없다고 했지만 히딩크 감독은 그곳이 안정환에게 최적이라고 고집했죠. 이후 안정환은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두 골을 넣고 월드컵에서도 위협적인 슛을 날리지 않았습니까.”(허진) 사실 체력적인 문제로 월드컵 직전까지 마음을 졸여야 했던 안정환은 마침내 히딩크 감독의 놀라운 위치 조정으로 월드컵 스타가 된 것이다.
전씨는 히딩크 감독의 빠른 적응력에 대해서도 놀라움을 표시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그가 적응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단 1초에 불과해요.”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국내 언론과는 익숙해지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부임 초기, 그의 사생활 보도와 관련해 언론에 노골적인 불쾌감을 표시했던 것. 히딩크는 처음부터 사생활을 건드리는 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확실히 해, 1년 넘게 함께 생활한 이들에게도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전씨는 그가 지나가는 말로 “아들이 둘 있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연인 엘리자베스에 대해서는 더욱 민감하게 반응해, 전씨도 그녀의 나이가 서른여섯쯤이고 법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는 정도만 알 뿐이다. 그의 사생활을 물으면 히딩크는 “그게 왜 알고 싶지? 누가 시켜서 묻는 건가?”라며 날카롭게 반응했다.
허씨는 히딩크 감독과 국내 언론의 불편한 관계가 유럽 언론과 국내 언론의 차이 때문이라고 말한다. “유럽은 각지에서 늘 축구경기가 벌어져 감독이나 선수들의 사생활을 담을 만한 지면이 없을 뿐더러 사생활을 존중하는 그들의 정서로는 감독의 가족이나 애인이 전혀 궁금할 리 없습니다.” 따라서 여자친구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는 기자들의 행태를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굉장한 불쾌감을 표시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 거친 취재방식을 못마땅해한 히딩크 감독은 한동안 국내 언론을 ‘황색 저널리즘’으로 치부해 버리기도 했다.
선수들의 순박함에 매료되었다는 히딩크 감독이 우리 선수들에게서 자신감을 얻은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허씨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 유럽 전지훈련에서 가진 네덜란드 언론과의 기자회견에서 히딩크 감독은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예상성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8강 진출”이라고 답했다. 물론 네덜란드 기자들 사이에서 야유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이에 위축될 히딩크가 아니었다. 모두가 16강을 목표했던 월드컵 직전, 히딩크 감독은 스태프들에게 “전국을 돌며 경기를 한 뒤, 마무리는 서울에서 하고 싶다”며 4강의 꿈을 조심스레 내비치기도 했다.
월드컵 4위라는 획기적인 성과를 거둔 지금, 히딩크 감독은 늘 자신감에 넘쳤던 것으로만 보이지만 축구 강국과의 대등한 평가전 뒤에도 히딩크는 “평가전과 월드컵은 다르다”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고 허씨는 전한다. 폴란드와의 경기를 앞두고 히딩크 감독은 홍명보 선수를 불러 “내일 우리가 경기에서 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낙담할 필요는 없다. 남은 두 경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며 선수들을 추슬러줄 것을 부탁했다는 것. “그는 자신은 있지만 월드컵은 알 수 없는 일이라며 선수들에게 ‘당황하지 말자’고 거듭 말했어요.”(허진)
평가전에서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놓지 못했던 히딩크 감독은 폴란드를 상대로 통쾌하게 승리하자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그리고 포르투갈을 상대로 꼭 승리를 거두고 싶어했다. “미국이 폴란드에 지고 있어 괜한 힘 쏟을 필요 없이 비기는 경기만 했어도 됐지만 히딩크 감독은 하프타임 때 유상철과 홍명보에게만 미국과 폴란드전의 소식을 전했어요. 내친김에 강력한 우승후보를 완전히 누르고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해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던 거죠.”(허진)
그 후 승수를 쌓아갈수록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을 향해 “깨어나라, 위축되지 말고 패배주의적인 생각을 갖지 마라”는 표현을 반복하며 더 큰 꿈을 향해 채찍질을 계속했다. 그리고 결국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때 축구협회에서 히딩크 감독을 적극적으로 붙잡지 않는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터져나왔다. 하지만 전씨는 히딩크 감독은 오래 전부터 유럽으로 마음을 정한 듯했다고 전한다. 또 네덜란드로 떠나면서 언제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지 않아 괜한 미련을 남기지도 않았다.
히딩크 감독과의 동고동락을 담담하게 털어놓은 이들은 음지에서 애쓴 대표팀 스태프와 히딩크 감독과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위해 서울의 한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히딩크 감독을 비롯한 외국인 코칭스태프와 한국 코치 및 선수들의 의사소통을 담당했던 전씨는 히딩크 감독을 ‘임기응변의 귀재’이자, 완벽한 설정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훌륭한 연기자’라고 표현했다. 히딩크 감독이 훈련중에 내뱉는 거친 말 한마디 한마디와 선수들을 대하는 태도 등이 모두 의도적으로 행해진다는 것.
“처음엔 그의 거친 모습에 당황했지만, 이젠 그게 모두 설정에 따른 행동임을 알게 됐어요. 선수들을 향해 화를 내고 뒤돌아서서는 웃거든요. 선수들에게 자극이 필요하다 싶을 때는 일부러 화를 내는 거죠. 절대 신경질적이거나 흥분해서 화를 내는 일이 없어요. 더욱이 경기중엔 절대 화를 내지 않아요. 1대 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게임은 우리가 리드하고 있다. 잘하고 있다’며 용기를 북돋아주죠. 그의 철저한 팀 운영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경기중엔 절대로 화 안 내
히딩크의 ‘사전 설정’에는 뛰어난 화술도 포함된다.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 말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통역하길 바래요. 용건을 전달하기 위해 주변에 던져놓는 말들, 농담까지도 모조리 전달하는지 수시로 확인합니다. 번역한 우리 말이 좀 짧다 싶으면 ‘당신 뭐 빼놓은 것 아니냐’며 되물어요. 요점을 둘러싼 의도와 분위기, 자신의 기분까지 모든 것을 선수들에게 전달하길 원했어요.”
그 때문에 전씨는 늘 선수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했던 히딩크의 유머를 전달하는 게 제일 곤혹스러웠다고 말한다. 우리 정서와 잘 맞지 않는 단어나 표현을 어떻게 바꿀지 고심해야 했던 것. 자신의 말을 전해 들은 선수들에게서 웃음이 터져나와야만 히딩크는 만족했고, 전씨도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히딩크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영화나 책에 나올 법한 표현을 좋아했어요. 무엇이든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뛰어나 며칠 전 제가 했던 표현이 마음에 들면 어느새 그것을 활용했고, 핵심을 던지기보다는 돌려 말하는 것을 즐겼어요.” 이 때문에 히딩크 감독의 ‘어록’이 등장했고, 심지어는 ‘언어의 마술사’, ‘시인’이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이들에 따르면 히딩크 감독은 특정 선수를 부각하는 발언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것. 그러면서도 김남일 송종국 이을용 등 자신이 발굴해낸 선수들의 뛰어난 기량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가졌다고 한다. 또 체격은 왜소하지만 스피드나 기술, 체력, 정신력, 자제력 등 어느 면에서도 빠지지 않는 박지성 선수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그는 선수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특징을 발견해내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안정환 선수는 사실 센터포워드가 아니었어요. 양 날개에 익숙한 본인도 그 위치만은 자신 없다고 했지만 히딩크 감독은 그곳이 안정환에게 최적이라고 고집했죠. 이후 안정환은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두 골을 넣고 월드컵에서도 위협적인 슛을 날리지 않았습니까.”(허진) 사실 체력적인 문제로 월드컵 직전까지 마음을 졸여야 했던 안정환은 마침내 히딩크 감독의 놀라운 위치 조정으로 월드컵 스타가 된 것이다.
전씨는 히딩크 감독의 빠른 적응력에 대해서도 놀라움을 표시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그가 적응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단 1초에 불과해요.”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국내 언론과는 익숙해지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부임 초기, 그의 사생활 보도와 관련해 언론에 노골적인 불쾌감을 표시했던 것. 히딩크는 처음부터 사생활을 건드리는 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확실히 해, 1년 넘게 함께 생활한 이들에게도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전씨는 그가 지나가는 말로 “아들이 둘 있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연인 엘리자베스에 대해서는 더욱 민감하게 반응해, 전씨도 그녀의 나이가 서른여섯쯤이고 법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는 정도만 알 뿐이다. 그의 사생활을 물으면 히딩크는 “그게 왜 알고 싶지? 누가 시켜서 묻는 건가?”라며 날카롭게 반응했다.
허씨는 히딩크 감독과 국내 언론의 불편한 관계가 유럽 언론과 국내 언론의 차이 때문이라고 말한다. “유럽은 각지에서 늘 축구경기가 벌어져 감독이나 선수들의 사생활을 담을 만한 지면이 없을 뿐더러 사생활을 존중하는 그들의 정서로는 감독의 가족이나 애인이 전혀 궁금할 리 없습니다.” 따라서 여자친구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는 기자들의 행태를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굉장한 불쾌감을 표시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 거친 취재방식을 못마땅해한 히딩크 감독은 한동안 국내 언론을 ‘황색 저널리즘’으로 치부해 버리기도 했다.
선수들의 순박함에 매료되었다는 히딩크 감독이 우리 선수들에게서 자신감을 얻은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허씨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 유럽 전지훈련에서 가진 네덜란드 언론과의 기자회견에서 히딩크 감독은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예상성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8강 진출”이라고 답했다. 물론 네덜란드 기자들 사이에서 야유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이에 위축될 히딩크가 아니었다. 모두가 16강을 목표했던 월드컵 직전, 히딩크 감독은 스태프들에게 “전국을 돌며 경기를 한 뒤, 마무리는 서울에서 하고 싶다”며 4강의 꿈을 조심스레 내비치기도 했다.
월드컵 4위라는 획기적인 성과를 거둔 지금, 히딩크 감독은 늘 자신감에 넘쳤던 것으로만 보이지만 축구 강국과의 대등한 평가전 뒤에도 히딩크는 “평가전과 월드컵은 다르다”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고 허씨는 전한다. 폴란드와의 경기를 앞두고 히딩크 감독은 홍명보 선수를 불러 “내일 우리가 경기에서 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낙담할 필요는 없다. 남은 두 경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며 선수들을 추슬러줄 것을 부탁했다는 것. “그는 자신은 있지만 월드컵은 알 수 없는 일이라며 선수들에게 ‘당황하지 말자’고 거듭 말했어요.”(허진)
평가전에서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놓지 못했던 히딩크 감독은 폴란드를 상대로 통쾌하게 승리하자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그리고 포르투갈을 상대로 꼭 승리를 거두고 싶어했다. “미국이 폴란드에 지고 있어 괜한 힘 쏟을 필요 없이 비기는 경기만 했어도 됐지만 히딩크 감독은 하프타임 때 유상철과 홍명보에게만 미국과 폴란드전의 소식을 전했어요. 내친김에 강력한 우승후보를 완전히 누르고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해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던 거죠.”(허진)
그 후 승수를 쌓아갈수록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을 향해 “깨어나라, 위축되지 말고 패배주의적인 생각을 갖지 마라”는 표현을 반복하며 더 큰 꿈을 향해 채찍질을 계속했다. 그리고 결국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때 축구협회에서 히딩크 감독을 적극적으로 붙잡지 않는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터져나왔다. 하지만 전씨는 히딩크 감독은 오래 전부터 유럽으로 마음을 정한 듯했다고 전한다. 또 네덜란드로 떠나면서 언제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지 않아 괜한 미련을 남기지도 않았다.
히딩크 감독과의 동고동락을 담담하게 털어놓은 이들은 음지에서 애쓴 대표팀 스태프와 히딩크 감독과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위해 서울의 한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