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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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감동 “이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 <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입력2004-10-15 13: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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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 감동 “이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에 볼일이 있어 잠시 귀국한 이강문씨(37·경기도 일산 거주)는 6월 내내 벌어진 한·일 월드컵 축제를 지켜보면서 조국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고 밝힌다. 현재 아내가 미국 뉴욕시에서 뷰티숍을 운영하고 있고 아이도 유치원에 다니고 있지만, 미국으로의 영구 이주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보기로 했다는 것.

    “솔직히 말해 한국에서 살면서 나의 미래에 대해 희망보다는 절망감이 들었고, 내 아이를 한국의 교육제도에 맡기는 것이 싫어 미국으로 떠났다. 그런데 월드컵 기간중 스스로 붉은 셔츠를 입고 거리에 나가 응원을 하면서 나는 벅찬 감동과 함께 한국도 더불어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미국에 돌아가면 아내와 진지하게 귀국 문제를 논의해 볼 생각이다.”

    외국에서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한국에서 외국 이주를 계획하던 사람들도 ‘월드컵 충격’이 큰 건 마찬가지다. 지난해 미국 이민을 결심한 박모씨(31·회사원)는 일찌감치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을 땄고, 외국인회사에 다니던 아내 이모씨(31)도 현지 본사로 전출을 신청하는 등 이주 계획을 착실히 준비했지만, 월드컵을 계기로 포기했다고 말한다. “아내와 거리응원을 하면서 놀라운 대표팀의 선전과 역동적이고 질서정연한 붉은 응원 인파 속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꼈다. 아내와 상의한 끝에 이민 이야기는 없었던 일로 하기로 결정했다.” 박씨의 아내 이씨도 “아이들 교육문제 등 미래를 고려할 때 이민이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월드컵으로 경험한 감동은 그간 이성적으로 생각해 왔던 이민의 이유들을 무력화해 버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 대표팀이 월드컵 사상 첫 4강 진출이라는 극적 감동을 보여준 뒤 외국에서의 새 터전을 꿈꾸던 이민 희망자들의 발길이 주춤해진 상태라고 한다. 최근 외교통상부 재외국민이주과에 따르면 6월 한 달간 해외이주 신고를 한 이민 희망자는 모두 828명으로, 평균 1000여명을 웃돈 다른 달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

    해외 이주 알선업체의 상담 건수도 월드컵 기간중 상당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음 이주공사의 김미현 대표는 “하루에 30건, 한 달에 900여건에 육박하던 상담 건수가 6월에는 30% 이상 줄었다”며 “월드컵 열기로 이민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점도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한양이주공사의 강영덕 대표는 “이미 이민 절차를 밟고 있는 사람들은 월드컵 붐에 그다지 큰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이민을 가려고 생각했거나 이민을 갈까 말까 망설이던 사람들 중에는 월드컵 성과가 이민 포기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월드컵은 IMF 이후 한국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에게 조국을 다시 한번 보게 한 국민축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아마도 4강신화 창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길거리 응원의 역동성, 하나 됨의 경험, 성숙한 시민의식 등 월드컵의 긍정적 요소들이 그간 이민의 주된 이유로 꼽혔던 자녀교육 문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 부정적 생각들을 훌훌 털어냈기 때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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