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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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몫 챙기자” 급등락株에 ‘빚투’ 나선 위험한 개미들

변동성 큰 종목 골라 베팅하다 반대매매 당해 큰 손실 초래… 당국도 규제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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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아 기자

    island@donga.com

    입력2023-08-2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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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경제 여건이 악화돼 세계 증시가 휘청거리고 있으나 개인투자자는 오히려 ‘빚투’에 뛰어들고 있다. [GETTYIMAGES]

    글로벌 경제 여건이 악화돼 세계 증시가 휘청거리고 있으나 개인투자자는 오히려 ‘빚투’에 뛰어들고 있다. [GETTYIMAGES]

    “한때 포스코퓨처엠 주가가 70만 원에 육박하는 것을 보고 51만 원이면 매수 기회라고 생각해 투자를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전체 투자금의 18%를 날렸다. 얼마 전부터 장이 계속 안 좋더니 주가가 40만 원대 초반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만약 빚이라도 내 투자했다면 어땠을지 아찔하다.”

    2차전지 소재 기업 포스코퓨처엠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본 30대 직장인 이 모 씨의 말이다. 최근 이 씨처럼 주식투자로 손실을 입는 사람이 늘고 있다. 미국의 긴축 기조 유지, 중국의 부동산 위기 등으로 글로벌 경제 여건이 급속도로 악화하면서 세계 증시가 약세를 나타내고 있는 탓이다. 이런 와중에 상당수 개인투자자는 한몫 잡겠다는 욕망으로 빚을 내 급등락이 심한 테마주 투자에 나서고 있다. 8월 들어 신용거래융자 잔고가 20조 원을 돌파하는 등 이른바 ‘빚투’에 나서는 개인투자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증시 불확실성이 커진 시점에서 무리한 투자는 화를 부를 수 있다”며 경고 목소리를 높인다.

    최근 세계 증시에는 ‘빨간불’이 들어왔다. 미국 국채금리 인상, 중국 경기 부진 및 부동산 위기로 회복 국면에 접어든 줄만 알았던 증시가 또다시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8월 21일(현지 시간) 미국 10년물 국채금리(4.355%)는 2007년 11월 이후 16년 만에 최고 수준이 됐다. 미국의 긴축 장기화 전망, 재정적자 증가 등 요인으로 장기채 금리가 치솟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 곳곳에서 디플레이션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데다, 8월 들어 중국 최대 부동산개발업체 비구이위안과 국유부동산기업 위안양이 줄줄이 디폴트 위기에 처했다.

    G2발(發) 금융 악재가 확산하자 국내 증시도 잔뜩 움츠러든 모양새다. 8월 들어 코스피는 2600 선에서 2500 선으로 내려앉았다. 8월 1~23일 중 3거래일은 장중 2500 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코스닥 지수 또한 8월 1일 939.67에서 23일 882.87로 6%가량 급락했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발 위기로 국내 증시에 단기적인 하방 압력이 존재할 것”이라며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4%대에서 하방 경직성을 보여 증시 상승 여력이 제한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신용거래융자 20조 원 넘어

    이렇듯 증시가 휘청거리고 있지만 개인투자자는 되레 위험도 높은 투자에 뛰어들고 있다. 앞서 과열 양상을 보인 2차전지, 초전도체, 맥신 등 테마주를 중심으로 시세차익을 노리며 빚투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 지표가 신용거래융자 잔고다. 신용거래융자란 투자자가 주식을 사기 위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이나 현금을 담보로 증권사로부터 30~90일간 돈을 빌리는 것을 말한다. 그 잔고 규모가 연초 16조 원대에서 최근 4조 원 가까이 증가했다(그래프1 참조). 금융투자협회 통계에 따르면 국내 증시(유가증권+코스닥)의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8월 2일 이후 줄곧 20조 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8월 22일 기준 약 20조1884억 원이다. 20조 원은 2021년 1월 코로나19 사태로 시중에 유동성이 풀리면서 증시가 활황을 띠던 당시와 유사한 수준의 잔고 규모다.



    신용거래융자 잔고 규모가 큰 개별 종목은 역시 2차전지 관련주다. 코스피, 코스닥을 통틀어 최근 3개월간(5월 24일~8월 23일) 신용거래융자 잔고가 가장 많은 종목은 포스코홀딩스(7305억 원)였다(그래프2 참조). 포스코퓨처엠(4076억 원), 삼성전자(3772억 원), 에코프로비엠(3035억 원), 엘앤에프(2819억 원), 셀트리온(2604억 원), 에코프로(2239억 원), 카카오(2192억 원), 셀트리온헬스케어(2077억 원), 네이버(2073억 원)가 그 뒤를 이었다. 잔고 규모 상위 10개 종목 중 5개(포스코홀딩스,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비엠, 엘앤에프, 에코프로)가 2차전지 관련주인 것이다. 이 중 엘앤에프는 상장주식 대비 신용거래융자 잔고 비율을 뜻하는 ‘신용잔고율’이 3%를 넘는 3.36%를 나타냈다. 나머지 종목이 0~1%대를 기록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반대매매 역풍 맞을 수도

    잔고 규모와 별개로 신용잔고율이 10%에 달하는 위험 종목도 적잖다. 같은 기간 코스피에서는 2차전지(리튬 및 폐배터리) 관련주로 분류되는 대양금속이, 코스닥에서는 엔비디아 관련주로 꼽히는 나무기술이 각각 10.64%(136억 원), 9.8%(76억 원)로 가장 높은 신용잔고율을 나타냈다.

    초단기 빚투인 위탁매매 미수금도 액수가 크게 불었다. 신용거래융자가 증권사로부터 30~90일이라는 비교적 긴 기간 돈을 빌리는 것이라면 위탁매매는 3일간만 외상을 쓰는 것이다. 투자자가 주식 매수 대금의 최소 30%를 위탁증거금으로 보유하고 있다면 증권사가 나머지 금액을 3일 동안 대납해주는 방식이다. 위탁매매 미수금은 이를 갚지 못할 경우에 발생한다. 금융투자협회 통계에 따르면 국내 증시(유가증권+코스닥)의 위탁매매 미수금 액수는 연초 대비 3배 넘는 수준으로 늘어난 상태다. 1월 2일 약 1930억 원이던 미수금은 8월 22일 6317억 원을 기록했다.

    문제는 이 같은 빚투가 반대매매라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이다. 반대매매는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린 투자자가 만기까지 대출금을 갚지 못하거나 담보가치가 일정 비율 이하로 떨어지면 증권사가 투자자 의사와 관계없이 주식을 강제로 처분하는 것을 말한다. 주가가 오르리라고 생각해 대출까지 불사했다가 반대로 하락하면 반대매매로 막대한 빚을 떠안을 수 있는 것이다. 반대매매는 오전 9시, 10시, 오후 2시 등 하루 3차례 진행되는데, 이때 전날 종가 대비 20~30% 낮은 금액으로 주문 가격이 산정되기에 이미 떨어진 주가에 추가로 악영향을 미친다.

    빚투는 주가 하락 시 증권사로부터 반대매매를 당하고 막대한 빚을 떠안을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다. [GETTYIMAGES]

    빚투는 주가 하락 시 증권사로부터 반대매매를 당하고 막대한 빚을 떠안을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다. [GETTYIMAGES]

    올해 반대매매 규모는 사상 최고치를 찍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오기형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7월 14일 제출받은 ‘신용거래융자 반대매매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29개 증권사에서 집행한 반대매매 합계액은 약 7919억 원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은 반대매매가 이뤄진 증권사는 키움증권(3313억 원)이었다. 반대매매 규모는 2021년 1조977억 원, 2022년 1조8083억 원을 기록했는데, 최근 증시 약세와 빚투가 맞물리면서 올해는 그 액수가 연간 2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위탁매매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 규모도 증가했다. 금융투자협회 통계에 따르면 1월 2일 194억 원이던 위탁매매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 금액은 8월 22일 522억 원이 됐다.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 비중은 10% 내외로 비슷한 수준이지만, 반대매매를 당한 투자자 수와 액수는 늘어난 것이다.

    “다른 투자처로 눈 돌려야”

    증권사들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부랴부랴 빚투 제한에 나섰다. 위탁증거금률을 10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등 급등락 테마주에 대한 신용거래융자를 중단하고 있는 것이다. NH투자증권은 8월 22일부터 2차전지 관련주 LS네트웍스와 맥신 관련주 휴비스, 센코에 대해 신용거래융자를 중단 조치했다. 현대차증권도 21일 맥신 관련주 경동인베스트, 태경산업, 나인테크, 엑스페릭스, 아모센스에 대한 위탁증거금률을 40%에서 100%로 상향 조정해 신용거래융자의 문을 닫았다. 이 밖에 다수 증권사가 2차전지, 초전도체, 맥신 관련주에 대한 신용거래융자를 중단하고 있다.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빚투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그에 대한 관리를 주문했다. 이 원장은 8월 8일 금감원 임원회의에서 “단기간에 과도한 투자자 쏠림, 레버리지(빚투) 증가, 단타 위주 매매 등 과열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테마주 투자 열기에 편승한 증권사들의 공격적인 신용거래융자 확대는 빚투를 부추길 수 있으니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되지 않도록 관리해달라”고 요청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고금리 기조가 지속될 경우 증시 유동성 자체가 줄어드는 만큼 주식 이외에 다른 투자처로 눈을 돌리는 게 나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는 “미국의 긴축 장기화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고PER(주가수익비율) 종목 위주로 충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국이 한 번 더 금리를 올릴 수 있는 상황이니, 전보다 가격이 떨어졌다고 무턱대고 빚투에 뛰어 들기보다 다른 안전한 투자처를 찾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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