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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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쭈물하다 ‘펀드런’ 봇물 터질라

주가 상승 랠리 불구, 펀드 환매 사태 … 중소형 운용사 자본잠식 등 파장 우려

  • 조충현 한국펀드투자연구소 소장 smcon@naver.com

    입력2009-09-30 18: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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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물쭈물하다 ‘펀드런’ 봇물 터질라
    외부의 어떤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 운동하려 하고,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 한다는 게 ‘관성의 법칙’이다. ‘뉴턴의 제1법칙’이라고 불리는 이 자연운동법칙을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다. 이런 고전물리학의 법칙이 경제현상에 적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우리 주식시장도 그중 하나. 주가의 연이은 상승 랠리 속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펀드 환매 사태는 흡사 ‘관성의 법칙’이 반영된 듯하다. 비록 정부 당국과 각 금융기관은 그 가능성을 일축하지만, 만일 이런 환매의 관성을 막을 수 있는 ‘외부의 힘’, 즉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특단의 수단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환매가 환매를 부르는 ‘펀드런’이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내 주식형 펀드의 자금 이탈이 시작된 것은 지난 4월 코스피지수가 1300선을 넘어서면서부터. 반 토막 난 펀드 자산이 서서히 원금에 가까워지자 펀드 가입자들이 환매에 나섰다. 코스피지수가 100포인트 오를 때마다 환매는 무서울 정도로 가속도가 붙었다. 그러다 1600포인트에 도달한 8월에는 한 달 순유출 금액이 1조5000억원을 넘어섰다. 올 들어 순유출된 누적자금만 4조원.

    이미 국내 주식형 펀드의 설정액은 79조8373억원으로 줄어 80조원대 아래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이는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 2007년 11월 100조원보다 20조원 줄어든 수치.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대량 유출이 일어난 사례는 2003년 3월~2004년 9월 3조9430억원, 2006년 12월~2007년 4월 4조6170억원 등 두 차례다. 그런데 최근의 환매 추세를 보면 이 두 차례의 대량 환매 규모를 훨씬 넘는 역대 최대 규모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금까지 금융권과 정책당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또한 지수가 반등할 때마다 “조만간 자금 유출이 멈출 테니 환매를 자제하라”고 권고해왔다. 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추측과 지수대별 설정 금액 규모, 적립식 펀드의 안정성이 그 근거였다. 그런데도 시장에선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환매가 쉼 없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금 유출 기간이 길어지고 환매 자금이 느는 것은 사실이지만, 순자산 대비 환매비율이 2~3%에 그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없다”며 시장을 안심시키기에 여념이 없다.



    적립식 펀드가 버팀목이라고?

    과연 그럴까. 펀드에 조금만 관심 있는 전문가라면 이런 말이 싸늘해지는 ‘시장심리’를 다독이기 위한 선전문구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펀드시장은 근본적으로 자금 유출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최근 이어지는 대량 환매의 본질은 과거와 판이하다. 과거의 환매 사태는 일시적 환매가 대부분이었다. 돌발 악재로 인한 실망 매물이거나 급격한 주가 하락에 이은 반등 때의 원금 회복 심리에 기댄 것이었다.

    반면 현재의 투자자들은 시장에 신뢰를 잃은 상태에서 추세적, 구조적 환매를 하고 있다. 펀드시장 자체에 의문을 품고 이번 기회에 시장을 ‘아주 떠나자’고 작정한 환매 비중이 늘고 있는 것이다. “순자산 대비 환매비율은 얼마 안 된다”는 위안도 전체 펀드가 아닌 국내 주식형으로 국한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금융권이 주장하는 환매비율을 훌쩍 넘어서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펀드 계좌 수는 지난 2월 말 1612만9253개에서 6월 말 1543만4864개로 69만4389개 줄었다. 자금 유·출입 측면에서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1~7월 환매를 통한 국내 주식형 펀드의 유출 규모는 23조748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3조5651억원과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이 기간 국내 주식형 펀드 유입액은 20조183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2조7440억원보다 12조5605억원 줄었다.

    우물쭈물하다 ‘펀드런’ 봇물 터질라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펀드의 가입 절차가 많이 까다로워 졌다.

    무려 37% 감소한 액수. 또한 자금이 집중적으로 빠지는 펀드는 주로 초대형 주식형 펀드인 반면, 자금이 들어오는 펀드는 안정성을 기반으로 한 인덱스형이 대부분이다. 시장 내부에서 전체 자금 흐름보다 훨씬 큰 질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셈.

    ‘펀드런’에 대한 우려가 나올 때마다 이를 감쇄시킨 논리는 적립식 펀드의 계좌 수와 금액이 많기 때문에 시장의 안정성을 해칠 염려가 없다는 것. 국내 시장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적립식 펀드 때문에 매달 꾸준히 자금이 유입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그저 ‘믿음’일 뿐이다. 최근엔 이런 시장 안정성 논리의 기반이던 적립식 펀드마저 무너지고 있다. 현재 적립식 펀드는 2005년 3월 집계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2개월 연속 판매량이 감소하는가 하면, 계좌 수도 13개월 연속 줄어든 상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7월 말 적립식 펀드의 전체 판매 잔액은 76조9640억원으로 전월 대비 9330억원 감소했다. 감소 폭 역시 집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환매가 늘면서 계좌 수도 줄고 있다.

    7월 적립식 펀드의 계좌 수는 지난달 대비 26만5000개 줄어든 1327만개를 기록하며 13개월 연속 하락했다. 그리고 각 금융기관이 간과하는 점이 있다(간과하는 건지, 모른 체하는 건지 몰라도). 거치식과 적립식은 불입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 환매할 때는 별 차이가 없다. 약간의 수수료 차이만 있을 뿐이다. 더욱이 최근의 환매 러시가 금융권의 주장대로 원금 회복 심리에 따른 것이라면, 적립식 펀드가 거치식보다 원금 회복 구간에 들어선 계좌가 많다는 점에서 경우에 따라 오히려 적립식 펀드에서 더 많은 매물이 나올 수도 있다.

    2007년 말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큰 충격이었지만 교훈도 남겼다. 시장을 시장에만 맡겨선 안 되며, 적절한 시기에 정책당국이 개입하지 않으면 파국이 올 수 있다는 점.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펀드에 대한 불신과 대량 환매로 국내 운용사 63곳 중 21곳이 세전 순손실을 기록했다(2009년 3월 기준).

    지금 같은 펀드 환매 추세가 지속된다면 중소형 운용사의 자본잠식과 구조조정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문제는 그 여파가 관련 시장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데 있다. 펀드런 사태가 오면 각 투자자들은 서로 먼저 환매를 하겠다고 달려들 것이고, 이는 증시 하락 요인이 돼 펀드의 악순환 속에서 결국 주가는 또 한 번 폭락할 수 있다.

    펀드 다양화, 판매 채널 다양화 시급

    펀드 자금 유·출입의 기형적 구조에는 지난 2월 시행된 자본시장법도 한몫했다. 이 법이 투자자 보호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가입 절차가 까다로워지자 판매 권유를 포기한 판매사가 크게 늘었다. 투자자가 펀드 가입을 외면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 애초 자본시장법 도입 취지인 펀드 다양화와 펀드 판매 채널의 다양화는 찾아보기 어렵고 규제만 강화된 느낌이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펀드슈퍼마켓제 도입 논란도 이 기회에 다시 논의해볼 여지가 있다.

    펀드 고객 유치에 불편을 주는 GA(독립판매법인), 그리고 실명확인과 계좌개설권 등에 대한 요구에 대해서도(비록 금융실명제에 묶여 있지만) 전향적 검토가 필요하다. 만일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펀드런’ 사태에 대비해 금융정책 당국은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양질의 자금이 들어올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데 아낌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 주식시장은 투신 등 각 기관이 지난해 9월 이후 13조원 이상 지속 매도하면서 외국인에게 장의 주도권을 빼앗긴 지 오래다. 외국인의 태도가 언제 돌변해 매수를 매도 기조로 바꿀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상황이 도래해 시장에 매물이 넘쳐난다면 이를 받아줄 만한 세력이 현재로선 없는 형편이다. 추세적으로 이어지는 ‘대량 환매’에 안이하게 과거의 잣대만을 들이대지 말고 서둘러 대책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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