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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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구성원과 通하였느냐

  • 홍영용 학림논술연구소 부소장

    입력2007-06-04 09: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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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구성원과 通하였느냐

    설레는 마음으로 연애하듯 공부하라.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문득 ‘오래된 연인’이라는 흘러간 유행가가 생각난다. “저녁이 되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 그런 것도 예전에 가졌던 두근거림은 아니야….” 오래된 연인이 서로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처럼, 어떤 일이든 시작한 지 오래되면 세부적인 내용까지 더 분명히 알게 된다.

    그런데 반대로 전체 내용이나 일의 목적이 무엇인지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마치 오래된 연인이 서로에게 끌린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학생들을 볼 때마다 문득 이 노래가 생각나는 이유는 초등학생 또는 태아 때부터 시작된 입시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입시와 수험생의 관계를 오래된 연인(?)으로 만든 것은 아닌가 싶어서다. 즉 몇년도에 무슨 문제가 나왔는지는 자세히 알지만, 입시의 의미와 목적은 잊어버리고 있는 듯하다. 오래된 연인이 연애하는 것처럼 의무감으로 언어영역을, 습관적으로 수리영역과 논술을 공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연애(시험)의 첫 장면으로 돌아가보자. 도대체 시험은 왜 보는 것일까. 나아가 교육 자체의 목적은 무엇인가. 입시의 목적은 또 무엇인가. 이런 원론적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수험생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교육은 인간을 만드는 과정이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간이란 말 그대로 사람(人) 사이의 관계(間)로,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이를 통해 자아를 형성한다는 의미다.

    논술은 언어적 수단으로 타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평가



    그런데 인간관계를 정상적으로 형성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다른 구성원과의 의사소통 능력을 갖춰야 한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이 서로 소통하고, 이를 통해 공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일차 목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수능시험도 이 같은 소통 능력을 수험생들이 갖추고 있는지를 평가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언어영역에서는 언어적 수단을 통해 타자와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지를 평가한다.

    이는 소통과 가장 무관한 듯한 수리영역과 과학탐구영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즉 x2+y2=r2이라는 원방정식은 수리적 언어를 통해, S=4.9t2이라는 자유낙하 공식은 일상적인 언어와는 다른 방식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수능의 경우 수험생이 화자가 되는 경우는 없고 일방적으로 청자의 처지에 머문다는 점에서 소통 능력을 평가하는 데는 반쪽짜리 시험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논술은 청자의 위치와 화자의 위치를 동시에 요구하는 시험인 만큼 실제 소통방식에 훨씬 부합한다.

    논술은 수험생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소통 능력을 갖췄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논술이 대학입시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학문적 소통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사회 구성원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상대방의 말을 이해했다는 점만으로 제대로 소통이 됐다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진정한 소통은 말의 행간에 숨은 뜻을 읽어낼 수 있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성이 여자에게 “차 한잔 해요”라고 하는 말은 차 한잔보다는 여자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즉, 제대로 된 소통을 위해서는 추론적 독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성이 남성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할 경우, 여성은 다양한 이유로 남성을 설득해야 한다. 반대로 남성 처지에서는 자신이 괜찮은 남성임을 증명하고, 다른 사람과는 차별화됐다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소통 능력은 상대방의 의사를 이해할 수 있는 이해력과 추론 능력, 상대방의 처지를 비판할 수 있는 비판력, 자신의 처지를 상대방에게 호소할 수 있는 논증력과 창의력, 그리고 이 모두를 표현할 수 있는 표현력을 의미한다. 이는 각 대학의 논술답안 평가항목과도 같다. 결국 논술을 잘한다는 것은 타인과 소통을 잘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오래된 연인이 아니라 첫 만남의 설렘으로 다시 논술과 연애를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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