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소환제 시행을 이틀 앞둔 5월23일 저녁. 경기 하남시의 1600가구 아파트 단지 ‘에코타운’에는 어김없이 수백 개의 촛불이 켜졌다. 인근 20여 개 아파트 단지와 함께 매일 밤 순번을 정해 벌이는 촛불집회로 벌써 6개월째다.
하남 시민들이 밤마다 촛불을 들고 집을 나서는 이유는 단 하나, 시가 추진 중인 광역화장장 유치에 반대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를 통해 시장직에 오른 김황식 시장(한나라당)이 “나의 정치적 명운을 걸었다”며 추진하고 있는 이 사업을 주민들은 ‘온몸을 던져’ 반대한다. 친환경 도시 ‘그린 하남’에 혐오시설인 화장장을 유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광역화장장유치반대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는 요즘 ‘역성혁명’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5월15일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김 시장에 대한 소환도 불사한다는 생각이다. 하남 시민들은 주민소환제를 ‘마지막 희망’으로 본다. 과연 이들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5월25일 시행된 ‘주민소환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초점은 “누가 제1호 소환대상자가 될 것인가”다. 당연히 선출직 공무원들은 좌불안석이다. 특히 예산 낭비, 비리 연루 등으로 자질 시비가 불거진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은 상상을 초월한다. 다음은 한 서울시 시의원의 넋두리.
김시장 측 “소환 강행 땐 시민대책위 고소”
“책임행정이라는 면에서 보면 당연히 찬성이다. 그런데 막상 내 문제라고 생각하면 막막하다. 여차하면 목이 날아가는 일종의 살생부 아닌가.”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은 소환대상 0순위 후보로는 김황식 하남시장, 이효선 광명시장, 이대엽 성남시장 등이 거론된다. 특히 20여 개 지역 시민단체와 여야 4당이 똘똘 뭉친 하남시의 경우 이미 주민소환을 위한 서명이 시작됐다. 범대위 김근래 대표는 “6월 중 주민서명이 끝나면 9월쯤 최종 결정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소환이 이뤄지려면 전체 유권자의 15%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범대위 측은 여유만만이다. 김 대표는 “1만5000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그 정도 주민의 동의를 받는 데는 이틀도 안 걸린다”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범대위 측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김 시장 측은 초조하면서도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화장장 유치 결정에는 절대 변화가 없다는 입장. “주민소환이 강행된다면 정당한 행정권 집행을 방해한 혐의로 범대위를 고소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김 시장 측의 설명이다.
“정당한 행정권을 일부 시민단체가 방해하고 있다. 200만 평이 넘는 그린벨트가 풀려도 개발에 나설 재원이 없는 게 하남시의 실정이다. 화장장 유치 대가로 하남시가 거둘 수 있는 금전적 이익은 족히 5000억원이 넘는다. 경기도에서 2000억원의 현금을 지원받기로 했고 화장장 공사비로만 3000억원 넘는 돈이 하남시에 풀린다. 무조건 반대만 해서 될 일인가.”
경기 광명시도 주민소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곳에선 호남향우회가 주축이 돼 주민소환에 불을 지피고 있다. 지난해 한 기관장 모임에서 “전라도 ×들은 이래서 안 돼”라는 발언을 해 논란을 불렀던 이효선 시장을 상대로 한 주민소환 움직임이 점차 가시화되는 것. 최근 이 시장은 흑인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호남향우회 광명시지부 김문규 회장은 “시민단체의 움직임을 보아가며 대응 방안을 고민할 생각”이라고 조심스레 주민소환 가능성을 내비쳤다.
성남시의 30여 개 시민단체도 이대엽 현 시장을 상대로 주민소환을 검토 중이다. 200억원 이상의 예산이 낭비됐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탄천변 도로사업이 문제의 핵심. 최근엔 시립병원 건설문제나 시장 친인척 관련 부동산 특혜의혹도 불거졌다. 탄천변 도로사업과 관련, 현재 시와 주민소송을 진행 중인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측은 “각종 문제에 대한 시의 해결 노력이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라도 주민소환을 준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 시장 측은 “부동산 특혜는 전혀 없었다. 주민소송이 진행 중인 도로사업의 경우에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게 시의 입장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지자체장들 외에도 언제 주민소환제의 대상이 될지 모르는 ‘후보’는 많다. 공무원들에게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해 주민감사 청구를 받은 김용서 수원시장, 최근 인사 관련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목욕탕에서 체포된 박희현 해남군수, 올해 초 외유성 연수로 여론의 도마에 오른 순천시의회 의원 등이다.
최근에는 여론의 질타 속에 남미로 외유성 출장을 다녀온 서울지역 구청장 7명도 거론되고 있다. 이들은 구 예산 1960만원씩을 들여 업무와 관련 없는 외유를 다녀왔다는 질타를 받았다.
행정 연속성 막고 정치적 악용 우려도
그러나 시행을 눈앞에 둔 주민소환제에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자칫 행정의 연속성을 해치고 특정 정치세력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주민소환이 검토되고 있는 지자체의 상당수가 민주노동당이나 일부 시민단체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도되고 있어 우려를 더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행정학자의 지적은 그런 점에서 곱씹어볼 만하다.
“지자체장의 발언 하나하나까지 주민소환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정책실패, 개인 비리에 한정하는 식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또 특정 정치세력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 제도를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것도 큰 문제다. 선출직 공무원들이 임기 내내 주민소환 위협에 시달려 정책의 일관성을 놓친다면 그 자체가 국력낭비가 아니고 무엇이겠나.”
하남 시민들이 밤마다 촛불을 들고 집을 나서는 이유는 단 하나, 시가 추진 중인 광역화장장 유치에 반대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를 통해 시장직에 오른 김황식 시장(한나라당)이 “나의 정치적 명운을 걸었다”며 추진하고 있는 이 사업을 주민들은 ‘온몸을 던져’ 반대한다. 친환경 도시 ‘그린 하남’에 혐오시설인 화장장을 유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광역화장장유치반대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는 요즘 ‘역성혁명’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5월15일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김 시장에 대한 소환도 불사한다는 생각이다. 하남 시민들은 주민소환제를 ‘마지막 희망’으로 본다. 과연 이들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5월25일 시행된 ‘주민소환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초점은 “누가 제1호 소환대상자가 될 것인가”다. 당연히 선출직 공무원들은 좌불안석이다. 특히 예산 낭비, 비리 연루 등으로 자질 시비가 불거진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은 상상을 초월한다. 다음은 한 서울시 시의원의 넋두리.
김시장 측 “소환 강행 땐 시민대책위 고소”
“책임행정이라는 면에서 보면 당연히 찬성이다. 그런데 막상 내 문제라고 생각하면 막막하다. 여차하면 목이 날아가는 일종의 살생부 아닌가.”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은 소환대상 0순위 후보로는 김황식 하남시장, 이효선 광명시장, 이대엽 성남시장 등이 거론된다. 특히 20여 개 지역 시민단체와 여야 4당이 똘똘 뭉친 하남시의 경우 이미 주민소환을 위한 서명이 시작됐다. 범대위 김근래 대표는 “6월 중 주민서명이 끝나면 9월쯤 최종 결정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소환이 이뤄지려면 전체 유권자의 15%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범대위 측은 여유만만이다. 김 대표는 “1만5000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그 정도 주민의 동의를 받는 데는 이틀도 안 걸린다”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범대위 측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김 시장 측은 초조하면서도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화장장 유치 결정에는 절대 변화가 없다는 입장. “주민소환이 강행된다면 정당한 행정권 집행을 방해한 혐의로 범대위를 고소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김 시장 측의 설명이다.
“정당한 행정권을 일부 시민단체가 방해하고 있다. 200만 평이 넘는 그린벨트가 풀려도 개발에 나설 재원이 없는 게 하남시의 실정이다. 화장장 유치 대가로 하남시가 거둘 수 있는 금전적 이익은 족히 5000억원이 넘는다. 경기도에서 2000억원의 현금을 지원받기로 했고 화장장 공사비로만 3000억원 넘는 돈이 하남시에 풀린다. 무조건 반대만 해서 될 일인가.”
경기 광명시도 주민소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곳에선 호남향우회가 주축이 돼 주민소환에 불을 지피고 있다. 지난해 한 기관장 모임에서 “전라도 ×들은 이래서 안 돼”라는 발언을 해 논란을 불렀던 이효선 시장을 상대로 한 주민소환 움직임이 점차 가시화되는 것. 최근 이 시장은 흑인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호남향우회 광명시지부 김문규 회장은 “시민단체의 움직임을 보아가며 대응 방안을 고민할 생각”이라고 조심스레 주민소환 가능성을 내비쳤다.
성남시의 30여 개 시민단체도 이대엽 현 시장을 상대로 주민소환을 검토 중이다. 200억원 이상의 예산이 낭비됐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탄천변 도로사업이 문제의 핵심. 최근엔 시립병원 건설문제나 시장 친인척 관련 부동산 특혜의혹도 불거졌다. 탄천변 도로사업과 관련, 현재 시와 주민소송을 진행 중인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측은 “각종 문제에 대한 시의 해결 노력이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라도 주민소환을 준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 시장 측은 “부동산 특혜는 전혀 없었다. 주민소송이 진행 중인 도로사업의 경우에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게 시의 입장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지자체장들 외에도 언제 주민소환제의 대상이 될지 모르는 ‘후보’는 많다. 공무원들에게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해 주민감사 청구를 받은 김용서 수원시장, 최근 인사 관련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목욕탕에서 체포된 박희현 해남군수, 올해 초 외유성 연수로 여론의 도마에 오른 순천시의회 의원 등이다.
최근에는 여론의 질타 속에 남미로 외유성 출장을 다녀온 서울지역 구청장 7명도 거론되고 있다. 이들은 구 예산 1960만원씩을 들여 업무와 관련 없는 외유를 다녀왔다는 질타를 받았다.
행정 연속성 막고 정치적 악용 우려도
그러나 시행을 눈앞에 둔 주민소환제에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자칫 행정의 연속성을 해치고 특정 정치세력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주민소환이 검토되고 있는 지자체의 상당수가 민주노동당이나 일부 시민단체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도되고 있어 우려를 더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행정학자의 지적은 그런 점에서 곱씹어볼 만하다.
“지자체장의 발언 하나하나까지 주민소환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정책실패, 개인 비리에 한정하는 식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또 특정 정치세력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 제도를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것도 큰 문제다. 선출직 공무원들이 임기 내내 주민소환 위협에 시달려 정책의 일관성을 놓친다면 그 자체가 국력낭비가 아니고 무엇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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