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대세론은 거품임이 분명해졌고 그 사실은 갈수록 확연해질 것이다.”(노무현 후보 공보특보 유종필)“지역주의와 조직 열세로 인한 일시적 현상일 뿐, 후반으로 갈수록 대세론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이인제 후보 한 측근)
민주당 대선 후보를 뽑는 1라운드 경선이 끝난 지난 3월10일, 이인제 노무현 두 후보 진영은 같은 결과를 놓고 이처럼 상반된 시각을 노출했다.
“더 이상 대세론은 없다”며 노후보측이 내놓은 근거는 제주와 울산에서의 승부 결과. 두 지역에서 노무현 후보가 423명(25.1%)으로 1위를 차지했고, 이인제 후보가 394명(23.4%)으로 2위, 김중권 후보가 336명(20.0%)으로 3위에 올랐다. 제주에서 1위를 차지한 한화갑 후보는 291명(17.3%)을 확보해 4위 턱걸이를 했다.
초반 결과만 놓고 보면 이인제 후보는 한 군데서도 1등을 못한 채 4강구도를 허용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이후보측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던 대세론을 더 이상 내세우기 어렵게 됐다. 만약 16일 치러질 광주 경선에서 이후보가 1위에 오르지 못하거나, 노무현 후보와의 격차가 근소할 경우 “대세론은 거품이었다”는 경선 후보들의 주장이 훨씬 힘을 받게 될 것임은 불문가지다.
그렇다면 지난 3년 동안 줄곧 힘을 받던 ‘이인제 대세론’이 이처럼 힘없이 무너지는 듯한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무엇보다 이후보 진영의 전략 부재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이후보를 지지하는 L의원의 설명.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했는데 이후보는 제주와 울산 경선에서 여섯 주자의 일방적 공세에 ‘이미 확보된 대세론을 지킨다’는 소극적 방어전략으로 일관했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스러워하는 말년 병장의 심정과 행동으로 어떻게 표를 얻겠는가.”
오직 대세론만이 최대의 선거전략으로 굳어진 상황에서 추가 표를 얻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것이 그의 관전평이다. 반면 이인제 대세론을 깨기로 작정한 노무현 후보와 나머지 주자들은 이후보의 경선 불복 전력, 불투명한 정체성, ‘이인제 필패론’ 등 다양한 공략 논리를 경선단의 성향과 나이, 성별에 따라 차별화하며 들이댔다. 그 결과 4강구도라는 대혼전 양상을 몰고 온 것.
김근태 후보의 2000년 8·30 최고위원 경선 당시 정치자금에 대한 고해성사도 경선 1라운드를 준비하던 이후보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김후보의 의도와 관계없이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권노갑 사단’의 손과 발이 묶였기 때문. 그럼에도 이후보측은 이 문제에 대해 신중한 분석을 하지 않은 채 대세론을 통한 밀어붙이기로 일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보측 한 관계자가 “광주 경선에서는 무너진 조직을 재정비, 다시 시작하겠다”며 전의를 불태운 것도 앞서 벌어진 제주와 울산 조직 싸움의 패배를 자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보의 대세론이 외부에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본질적 한계를 안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 고위 당료 K씨의 설명이다.
“이인제 대세론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스스로 일군 것이 아니라 지역주의 정서에 기대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성격이 짙다. DJ 정권 출범 이후 영남지역에 이회창 대세론이 형성되자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이에 맞서 역(逆)대세론이 형성됐고, 97년 대선 500만표의 신화를 일궜던 이후보가 그 중심에 무임 승차했다.”
정권을 탈환하려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 맞서 정권을 수호하려는 민주당과 호남 유권자가 흑묘백묘론에 입각해 집단적으로 선택한 인물이 바로 이후보였고 이것이 대세론으로 이어졌다는 것. 대선정국이 본격화하면서 대세론에 대한 공개 검증 단계에 접어들자 결국 이런 본질적 한계가 허점과 약점으로 하나둘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K씨의 진단이다.
박근혜 의원의 한나라당 탈당, 이어지는 신당 창당 분위기 등으로 이회창 총재의 대세론이 흔들리며 그 여파가 민주당으로 밀려온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창당팀들은 기존에 형성된 대선구도를 허물고 새로운 질서를 엮어내려는 분위기가 강하다. 특히 ‘양이(兩李) 대세론’을 허물 수 있는 ‘영남후보’가 신당을 통해 등장할 경우 대세론은 또 한번 결정적 위기를 맞게 된다.
그렇다면 이후보의 대세론은 여기서 끝날 것인가. 이후보측은 일시적 현상일 뿐, 후반으로 갈수록 대세론이 다시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후보의 사조직인 21세기 산악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P씨는 “16일로 예정된 광주 경선단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이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타 후보를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는 대세론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울산에서 득표활동에 나섰던 P씨는 노무현 후보가 울산에서 수위를 차지한 것에 대해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와 부산상고 동문 및 노동자 생활을 한 경험 등 지역 연고에 힘입은 바 크다”고 말한다. 또 제주에서 한화갑 후보가 1위를 한 것도 “5년 전부터 제주도지부 후원회장을 맡는 등 조직 기반에서 우위를 점해왔기 때문”으로 진단한다. 광주·대전 등 다른 지역에서 노·한 후보가 이 같은 조직의 도움을 받기는 사실상 힘들다는 것.
P씨의 지적처럼 이후보의 대세론이 광주·대전에서부터 되살아날 가능성은 많다. 권노갑 전 위원을 중심으로 한 조직이 광주에서 일정한 세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후보의 안방이나 다름없는 대전의 경우 더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이인제 대세론의 와해 여부는 광주 경선을 치른 뒤에나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그렇지만 경선 초반에 이후보의 대세론이 타격받은 사실이 광주를 비롯한 여타 지역 경선단의 선택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초반 경선이 혼전 양상으로 이어지면서 4월27일 서울 경선이 끝나도 1위의 득표율이 50%를 넘지 못할 가능성도 커졌다. ‘선호투표제’에 의해 최종 승자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상자기사 참조). 대세론이냐 , 아니냐. 민주당 경선이 갈수록 흥미로워지고 있다.
민주당 대선 후보를 뽑는 1라운드 경선이 끝난 지난 3월10일, 이인제 노무현 두 후보 진영은 같은 결과를 놓고 이처럼 상반된 시각을 노출했다.
“더 이상 대세론은 없다”며 노후보측이 내놓은 근거는 제주와 울산에서의 승부 결과. 두 지역에서 노무현 후보가 423명(25.1%)으로 1위를 차지했고, 이인제 후보가 394명(23.4%)으로 2위, 김중권 후보가 336명(20.0%)으로 3위에 올랐다. 제주에서 1위를 차지한 한화갑 후보는 291명(17.3%)을 확보해 4위 턱걸이를 했다.
초반 결과만 놓고 보면 이인제 후보는 한 군데서도 1등을 못한 채 4강구도를 허용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이후보측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던 대세론을 더 이상 내세우기 어렵게 됐다. 만약 16일 치러질 광주 경선에서 이후보가 1위에 오르지 못하거나, 노무현 후보와의 격차가 근소할 경우 “대세론은 거품이었다”는 경선 후보들의 주장이 훨씬 힘을 받게 될 것임은 불문가지다.
그렇다면 지난 3년 동안 줄곧 힘을 받던 ‘이인제 대세론’이 이처럼 힘없이 무너지는 듯한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무엇보다 이후보 진영의 전략 부재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이후보를 지지하는 L의원의 설명.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했는데 이후보는 제주와 울산 경선에서 여섯 주자의 일방적 공세에 ‘이미 확보된 대세론을 지킨다’는 소극적 방어전략으로 일관했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스러워하는 말년 병장의 심정과 행동으로 어떻게 표를 얻겠는가.”
오직 대세론만이 최대의 선거전략으로 굳어진 상황에서 추가 표를 얻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것이 그의 관전평이다. 반면 이인제 대세론을 깨기로 작정한 노무현 후보와 나머지 주자들은 이후보의 경선 불복 전력, 불투명한 정체성, ‘이인제 필패론’ 등 다양한 공략 논리를 경선단의 성향과 나이, 성별에 따라 차별화하며 들이댔다. 그 결과 4강구도라는 대혼전 양상을 몰고 온 것.
김근태 후보의 2000년 8·30 최고위원 경선 당시 정치자금에 대한 고해성사도 경선 1라운드를 준비하던 이후보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김후보의 의도와 관계없이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권노갑 사단’의 손과 발이 묶였기 때문. 그럼에도 이후보측은 이 문제에 대해 신중한 분석을 하지 않은 채 대세론을 통한 밀어붙이기로 일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보측 한 관계자가 “광주 경선에서는 무너진 조직을 재정비, 다시 시작하겠다”며 전의를 불태운 것도 앞서 벌어진 제주와 울산 조직 싸움의 패배를 자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보의 대세론이 외부에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본질적 한계를 안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 고위 당료 K씨의 설명이다.
“이인제 대세론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스스로 일군 것이 아니라 지역주의 정서에 기대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성격이 짙다. DJ 정권 출범 이후 영남지역에 이회창 대세론이 형성되자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이에 맞서 역(逆)대세론이 형성됐고, 97년 대선 500만표의 신화를 일궜던 이후보가 그 중심에 무임 승차했다.”
정권을 탈환하려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 맞서 정권을 수호하려는 민주당과 호남 유권자가 흑묘백묘론에 입각해 집단적으로 선택한 인물이 바로 이후보였고 이것이 대세론으로 이어졌다는 것. 대선정국이 본격화하면서 대세론에 대한 공개 검증 단계에 접어들자 결국 이런 본질적 한계가 허점과 약점으로 하나둘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K씨의 진단이다.
박근혜 의원의 한나라당 탈당, 이어지는 신당 창당 분위기 등으로 이회창 총재의 대세론이 흔들리며 그 여파가 민주당으로 밀려온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창당팀들은 기존에 형성된 대선구도를 허물고 새로운 질서를 엮어내려는 분위기가 강하다. 특히 ‘양이(兩李) 대세론’을 허물 수 있는 ‘영남후보’가 신당을 통해 등장할 경우 대세론은 또 한번 결정적 위기를 맞게 된다.
그렇다면 이후보의 대세론은 여기서 끝날 것인가. 이후보측은 일시적 현상일 뿐, 후반으로 갈수록 대세론이 다시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후보의 사조직인 21세기 산악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P씨는 “16일로 예정된 광주 경선단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이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타 후보를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는 대세론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울산에서 득표활동에 나섰던 P씨는 노무현 후보가 울산에서 수위를 차지한 것에 대해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와 부산상고 동문 및 노동자 생활을 한 경험 등 지역 연고에 힘입은 바 크다”고 말한다. 또 제주에서 한화갑 후보가 1위를 한 것도 “5년 전부터 제주도지부 후원회장을 맡는 등 조직 기반에서 우위를 점해왔기 때문”으로 진단한다. 광주·대전 등 다른 지역에서 노·한 후보가 이 같은 조직의 도움을 받기는 사실상 힘들다는 것.
P씨의 지적처럼 이후보의 대세론이 광주·대전에서부터 되살아날 가능성은 많다. 권노갑 전 위원을 중심으로 한 조직이 광주에서 일정한 세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후보의 안방이나 다름없는 대전의 경우 더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이인제 대세론의 와해 여부는 광주 경선을 치른 뒤에나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그렇지만 경선 초반에 이후보의 대세론이 타격받은 사실이 광주를 비롯한 여타 지역 경선단의 선택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초반 경선이 혼전 양상으로 이어지면서 4월27일 서울 경선이 끝나도 1위의 득표율이 50%를 넘지 못할 가능성도 커졌다. ‘선호투표제’에 의해 최종 승자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상자기사 참조). 대세론이냐 , 아니냐. 민주당 경선이 갈수록 흥미로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