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지방선거가 끝난 6월 초, 김완주 전북도지사 당선자는 전경련과 삼성그룹, 전북지역 국회의원 등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정무부지사 후보를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다.
김 당선자는 추천 대상을 ‘지역경제와 실물경제를 꿰고 있으면서 기업 및 외자 유치와 투자를 이끌 수 있는 전문경영인’으로 제한했다. 수십 명의 명단이 김 당선자에게 전달됐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이 김 당선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삼성그룹에서 CEO로 활동하는 A 씨였다.
김 당선자는 즉시 그를 찾아가 “전북 경제를 책임져 달라”고 읍소했다.
A 씨는 완곡하게 거절했다. 김 당선자의 삼고초려가 이어졌지만 넘어야 할 벽이 너무 많았다. 연봉 문제도 그 가운데 하나. 전북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수백 명 전문가 정무직 공모에 몰려
“도 정무부지사의 연봉은 8000만원 선인데, 당시 접촉했던 A 씨를 비롯한 CEO들의 평균 연봉은 25억원대였다.”
‘임기’도 발목을 잡는 악재였다. 전북도는 스카우트 대상자들에게 3년 임기를 약속했다. 그러나 CEO들은 “3년 후 기업으로 돌아가 자리를 잡기 힘들다”며 난색을 표했다. ‘기업문화를 모르는 관료들의 한계’란 볼멘 소리도 들어야 했다. 이들에게 ‘고향을 위해…’라는 희생론은 설득에 한계가 있었다.
A 씨 영입에 실패한 전북도는 7월10일부터 20일까지 정무부지사를 공모했다. 8월2일 현재 응모한 인사는 25명 전후. CEO와 학자, 전·현직 경제관료 출신 등 대부분 경제 전문가들이다. 공식 업무에 들어간 김 도지사는 8월7일부터 10여 일간 면접을 통해 정무부지사를 뽑을 예정이다. ‘경제로 시작해 경제로 (임기를) 끝내겠다’는 공약을 내건 김 도지사는 새로 임명될 정무부지사에게 전북 경제를 맡길 예정이다.
도 관계자들은 과거와 달리 정무부지사에게 어느 때보다도 많은 힘이 실릴 것으로 내다본다.
민선 4기를 맞아 각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의 ‘정무부시장 및 부지사’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총선에서 떨어졌거나 정계 진출을 노리는 정치인들, 또는 퇴임을 앞둔 고위 공직자들이 경력을 쌓거나 ‘쉬어가는’ 곳으로 인식되던 자리에 CEO 등 전문가들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몇몇 단체의 공모에는 수백 명의 전문가들이 이력서를 제출했다.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정무부시장·부지사는 그동안 소속 정당과의 업무 조정, 대(對)언론 업무 등 정무적 역할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시장을 대신해 행사에 참석하거나 정치인 및 기자들과의 술자리에 참석하는 얼굴마담 또는 술상무 역을 맡을 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민선 4기를 맞은 지자체장들은 이런 ‘정무직’에 특별 임무를 부여하고 있다. 경제, 문화, 환경, 개발사업 등 핵심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는 실세로서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다. 특히 CEO를 발탁, 경제 업무를 총괄토록 하는 지자체가 눈에 띄게 늘었다. CEO 정무부지사를 발탁하려는 지자체장들의 경쟁은 가히 전쟁 수준이다.
김대기 유진그룹 부회장은 6월 말까지만 해도 수억원대의 연봉을 받던 잘나가는 CEO였다. 그런 그가 회사에 사표를 내고 강원도 정무부지사직을 맡은 것은 김진선 강원도지사의 삼고초려 때문이다.
강원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기업과 학계 등으로부터 수십 장의 이력서를 받았고, 그중 김 도지사는 김 부지사를 선택했다. 김 부지사는 처음엔 ‘공무원 사회는 생소한 분야인 데다 조직의 생리도 잘 모른다’며 거절했지만 김 도지사가 계속 매달리며 ‘강원도 경제를 살려달라’고 요청하자 결단을 내렸다.”
김 부지사는 취임 후 “공직사회 나름의 절차와 방법을 준수하겠다”면서도 “민간 기업의 효율성을 점진적으로 도입해 조화를 꾀할 계획”이라며 기업 마인드 도입에 대한 소신을 내비쳤다. 김 도지사는 이런 김 부지사를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반면 도 관계자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과거에는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선 정무부지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자체장 성공한 CEO 선호
충북도 정무부지사로 발탁된 노화욱 전 하이닉스반도체 전무이사도 취임과 동시에 정우택 도지사에게서 “경제특별도를 만든다는 각오로 일해달라”는 특명을 받았다. 기업인에서 공직자로 나선 노 부지사의 당면 과제는 하이닉스 낸드플래시 메모리(Nand-Flash Memory) 제2 공장 건설과 관련한 업무다. 현재 하이닉스반도체는 경기도 이천공장 인근의 3000평 부지에 낸드플래시 메모리 공장의 증설을 추진 중이다.
지자체장들이 CEO를 선호하는 배경에는 CEO 영입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성공한 일부 단체장들의 성공 신화가 자리하고 있다. 광주시 이병화 정무부시장이 그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이다. 기획예산처 기금정책심의관을 지낸 그는 박광태 시장에게 중앙정부로부터 예산을 따오는 방법과 해외투자 유치 및 공장 이전 등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하고 직접 ‘필드’를 휘젓고 다녔다. 삼성전자의 백색가전 공장 광주 이전 등이 그가 이룬 성과. 박 시장은 6월 “민선 3기 광주시 정무부시장의 역할은 성공적이었다”며 이 부시장의 유임을 공식 선언했다.
국정원 간부 출신인 이철우 경북도 정무부지사도 ‘일하는’ 부지사로 평가받아 연임된 사례. 그를 발탁한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선거 기간 내내 “경북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때문에 경북도 관계자들은 김 도지사가 부지사직에 ‘기업 CEO나 경제관료 등 경제전문가를 인선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김 도지사는 예상과 달리 이의근 전 도지사가 발탁했던 이 정무부지사를 연임시켰다. 투자 유치와 중앙정부에 대한 교섭력을 강화하기 위해 중앙정계와 경제계에 폭넓은 인맥을 가진 인물을 찾고 있던 김 도지사가 중앙 및 지방을 아우르는 인적 네트워크를 가진 이 부지사의 장점을 인정한 것이다.
김 도지사에게서 “경제를 책임지라”는 밀명을 받은 이 부지사는 7월 ‘국회의원 예산실명제’ 구상을 밝혔다. 예산실명제란 지역 국회의원들이 중앙정부에서 확보한 예산 규모에 따라 경북도가 해당 시·군에 배정하는 예산을 차등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 의원들의 요구에 끌려다니던 경북도로서는 이 부지사의 이런 ‘역주행’이 부담스러운 눈치다. 그러나 중앙예산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크다.
정무부시장·부지사의 위상이 바뀌면서 중앙당의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경우도 많아졌다. 지자체장들은 이 낙하산을 저지하기 위해 중앙당과 얼굴을 붉히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공무원 조직과 충돌 중도 하차도 많아
5·31 지방선거 후 한나라당 울산시당은 박맹우 울산시장에게 시당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던 민선 구청장 출신의 한 인사를 정무부시장으로 추천했다. 고민하던 박 시장은 “중앙정부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는 열정과 비전을 가진 전문가를 찾겠다”며 거절했다. 중앙당의 한 관계자는 “과거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세상이 바뀌었으니 어쩌겠느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지자체의 규모가 큰 경우 전통적인 정무부시장과 부지사의 역할이 그대로 유지되기도 한다. 서울시와 경기도가 대표적인 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권영진 한나라당 노원을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을 정무부시장으로 발탁했다. 서울시의 경우 중앙정부와 국회, 서울시의회 등을 상대로 한 정무부시장 고유의 역할과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상자기사 참조).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원유철 전 의원을 정무부지사로 발탁, 중앙정부와 국회 업무를 전담시켰다. 대신 경제 문제는 좌승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를 경기개발연구원 원장으로 발탁해 맡겼다.
공직사회 문화는 일반 기업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그래서 공직사회 특유의 배타성을 처음 접한 CEO들은 이질적인 문화에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정무부시장·부지사의 위상 강화에 따른 부작용이 고개를 들게 된다. 정무부지사직을 지낸 B 씨의 경험담이다.
“외부에서 영입된 인사들은 변화를 선호하기 때문에 참신한 아이디어로 기존 관행을 깨려고 한다. 그러나 노회한 국·실장급 공무원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박탈하는 변화를 극도로 싫어한다. 과거 이런 메커니즘을 파악하지 못해 중도 하차한 정무부지사도 꽤 많다. 40대인 오세훈 서울시장도 잘못하면 이들의 페이스에 말려 임기 초부터 끌려다닐 수 있다.”
이런 지적에도 정무부시장과 부지사의 역할에 대한 지자체의 기대치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당사자들 역시 ‘경제 첨병’으로서 제 몫 찾기에 더욱 골몰하는 모습이다.
김 당선자는 추천 대상을 ‘지역경제와 실물경제를 꿰고 있으면서 기업 및 외자 유치와 투자를 이끌 수 있는 전문경영인’으로 제한했다. 수십 명의 명단이 김 당선자에게 전달됐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이 김 당선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삼성그룹에서 CEO로 활동하는 A 씨였다.
김 당선자는 즉시 그를 찾아가 “전북 경제를 책임져 달라”고 읍소했다.
A 씨는 완곡하게 거절했다. 김 당선자의 삼고초려가 이어졌지만 넘어야 할 벽이 너무 많았다. 연봉 문제도 그 가운데 하나. 전북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수백 명 전문가 정무직 공모에 몰려
“도 정무부지사의 연봉은 8000만원 선인데, 당시 접촉했던 A 씨를 비롯한 CEO들의 평균 연봉은 25억원대였다.”
‘임기’도 발목을 잡는 악재였다. 전북도는 스카우트 대상자들에게 3년 임기를 약속했다. 그러나 CEO들은 “3년 후 기업으로 돌아가 자리를 잡기 힘들다”며 난색을 표했다. ‘기업문화를 모르는 관료들의 한계’란 볼멘 소리도 들어야 했다. 이들에게 ‘고향을 위해…’라는 희생론은 설득에 한계가 있었다.
A 씨 영입에 실패한 전북도는 7월10일부터 20일까지 정무부지사를 공모했다. 8월2일 현재 응모한 인사는 25명 전후. CEO와 학자, 전·현직 경제관료 출신 등 대부분 경제 전문가들이다. 공식 업무에 들어간 김 도지사는 8월7일부터 10여 일간 면접을 통해 정무부지사를 뽑을 예정이다. ‘경제로 시작해 경제로 (임기를) 끝내겠다’는 공약을 내건 김 도지사는 새로 임명될 정무부지사에게 전북 경제를 맡길 예정이다.
도 관계자들은 과거와 달리 정무부지사에게 어느 때보다도 많은 힘이 실릴 것으로 내다본다.
민선 4기를 맞아 각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의 ‘정무부시장 및 부지사’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총선에서 떨어졌거나 정계 진출을 노리는 정치인들, 또는 퇴임을 앞둔 고위 공직자들이 경력을 쌓거나 ‘쉬어가는’ 곳으로 인식되던 자리에 CEO 등 전문가들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몇몇 단체의 공모에는 수백 명의 전문가들이 이력서를 제출했다.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정무부시장·부지사는 그동안 소속 정당과의 업무 조정, 대(對)언론 업무 등 정무적 역할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시장을 대신해 행사에 참석하거나 정치인 및 기자들과의 술자리에 참석하는 얼굴마담 또는 술상무 역을 맡을 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민선 4기를 맞은 지자체장들은 이런 ‘정무직’에 특별 임무를 부여하고 있다. 경제, 문화, 환경, 개발사업 등 핵심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는 실세로서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다. 특히 CEO를 발탁, 경제 업무를 총괄토록 하는 지자체가 눈에 띄게 늘었다. CEO 정무부지사를 발탁하려는 지자체장들의 경쟁은 가히 전쟁 수준이다.
서울시 | 부산시 | 대구시 | 광주시 | 인천시 |
권영진 부사장,45 | 이경훈 부시장,56 | 문영수 부사장,57 | 이병화 부사장,58 | 천명수 부시장,59 |
。통일부 통일정책실 통일정책보좌관 。한나라당 노원을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 | 。시민공원조성 추진단장 。부산시 환경국장, 경제진흥국장 | 。시의회 사무처장 。기획관리과장 | 。경제기획원 사무관 。재정경제부 차관보 | 。경기녹지재단 대표이사 。인천시 기획관리실장 。경기도 행정2부지사 |
대전시 | 경기도 | 강원도 | 충청북도 | 충청남도 |
이영규 부사장, 46 | 원유철 부지사, 45 | 김대기 부지사, 59 | 노화욱 부지사, 53 | 김태흠 부지사, 43 |
。서울지검 공안부 부부장 검사 | 。15,16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제1정책 조정위원회 위원장 | 。유진그룹 부회장 。SK 부사장 。신세기통신 사장 | 。전 하이닉스반도체 청주사업장 총괄상무 | 。김용환 전 국회의원 보좌관 。국무총리실 공보과장, 정책담당관 |
전라남도 | 경상남도 | 경상북도 | 울산시 | 전라북도 | 제주도 |
이근경 부지사, 56 | 이창희 부지사, 55 | 이철우 부지사, 51 | 인선 중 | 인선 중 | 인선 중 |
。경제기획원 사무관, 청와대 비서관, 재정경제부 차관보 | 。전 국회사무처 농림해양수산위 수석전문위원 | 。국정원 |
김대기 유진그룹 부회장은 6월 말까지만 해도 수억원대의 연봉을 받던 잘나가는 CEO였다. 그런 그가 회사에 사표를 내고 강원도 정무부지사직을 맡은 것은 김진선 강원도지사의 삼고초려 때문이다.
강원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기업과 학계 등으로부터 수십 장의 이력서를 받았고, 그중 김 도지사는 김 부지사를 선택했다. 김 부지사는 처음엔 ‘공무원 사회는 생소한 분야인 데다 조직의 생리도 잘 모른다’며 거절했지만 김 도지사가 계속 매달리며 ‘강원도 경제를 살려달라’고 요청하자 결단을 내렸다.”
김 부지사는 취임 후 “공직사회 나름의 절차와 방법을 준수하겠다”면서도 “민간 기업의 효율성을 점진적으로 도입해 조화를 꾀할 계획”이라며 기업 마인드 도입에 대한 소신을 내비쳤다. 김 도지사는 이런 김 부지사를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반면 도 관계자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과거에는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선 정무부지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7월25일 김대기 강원부지사(가운데)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을 방문해 폭우피해 지역을 둘러보고 있다.
충북도 정무부지사로 발탁된 노화욱 전 하이닉스반도체 전무이사도 취임과 동시에 정우택 도지사에게서 “경제특별도를 만든다는 각오로 일해달라”는 특명을 받았다. 기업인에서 공직자로 나선 노 부지사의 당면 과제는 하이닉스 낸드플래시 메모리(Nand-Flash Memory) 제2 공장 건설과 관련한 업무다. 현재 하이닉스반도체는 경기도 이천공장 인근의 3000평 부지에 낸드플래시 메모리 공장의 증설을 추진 중이다.
지자체장들이 CEO를 선호하는 배경에는 CEO 영입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성공한 일부 단체장들의 성공 신화가 자리하고 있다. 광주시 이병화 정무부시장이 그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이다. 기획예산처 기금정책심의관을 지낸 그는 박광태 시장에게 중앙정부로부터 예산을 따오는 방법과 해외투자 유치 및 공장 이전 등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하고 직접 ‘필드’를 휘젓고 다녔다. 삼성전자의 백색가전 공장 광주 이전 등이 그가 이룬 성과. 박 시장은 6월 “민선 3기 광주시 정무부시장의 역할은 성공적이었다”며 이 부시장의 유임을 공식 선언했다.
국정원 간부 출신인 이철우 경북도 정무부지사도 ‘일하는’ 부지사로 평가받아 연임된 사례. 그를 발탁한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선거 기간 내내 “경북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때문에 경북도 관계자들은 김 도지사가 부지사직에 ‘기업 CEO나 경제관료 등 경제전문가를 인선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김 도지사는 예상과 달리 이의근 전 도지사가 발탁했던 이 정무부지사를 연임시켰다. 투자 유치와 중앙정부에 대한 교섭력을 강화하기 위해 중앙정계와 경제계에 폭넓은 인맥을 가진 인물을 찾고 있던 김 도지사가 중앙 및 지방을 아우르는 인적 네트워크를 가진 이 부지사의 장점을 인정한 것이다.
김 도지사에게서 “경제를 책임지라”는 밀명을 받은 이 부지사는 7월 ‘국회의원 예산실명제’ 구상을 밝혔다. 예산실명제란 지역 국회의원들이 중앙정부에서 확보한 예산 규모에 따라 경북도가 해당 시·군에 배정하는 예산을 차등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 의원들의 요구에 끌려다니던 경북도로서는 이 부지사의 이런 ‘역주행’이 부담스러운 눈치다. 그러나 중앙예산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크다.
정무부시장·부지사의 위상이 바뀌면서 중앙당의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경우도 많아졌다. 지자체장들은 이 낙하산을 저지하기 위해 중앙당과 얼굴을 붉히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공무원 조직과 충돌 중도 하차도 많아
5·31 지방선거 후 한나라당 울산시당은 박맹우 울산시장에게 시당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던 민선 구청장 출신의 한 인사를 정무부시장으로 추천했다. 고민하던 박 시장은 “중앙정부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는 열정과 비전을 가진 전문가를 찾겠다”며 거절했다. 중앙당의 한 관계자는 “과거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세상이 바뀌었으니 어쩌겠느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지자체의 규모가 큰 경우 전통적인 정무부시장과 부지사의 역할이 그대로 유지되기도 한다. 서울시와 경기도가 대표적인 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권영진 한나라당 노원을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을 정무부시장으로 발탁했다. 서울시의 경우 중앙정부와 국회, 서울시의회 등을 상대로 한 정무부시장 고유의 역할과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상자기사 참조).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원유철 전 의원을 정무부지사로 발탁, 중앙정부와 국회 업무를 전담시켰다. 대신 경제 문제는 좌승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를 경기개발연구원 원장으로 발탁해 맡겼다.
공직사회 문화는 일반 기업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그래서 공직사회 특유의 배타성을 처음 접한 CEO들은 이질적인 문화에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정무부시장·부지사의 위상 강화에 따른 부작용이 고개를 들게 된다. 정무부지사직을 지낸 B 씨의 경험담이다.
“외부에서 영입된 인사들은 변화를 선호하기 때문에 참신한 아이디어로 기존 관행을 깨려고 한다. 그러나 노회한 국·실장급 공무원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박탈하는 변화를 극도로 싫어한다. 과거 이런 메커니즘을 파악하지 못해 중도 하차한 정무부지사도 꽤 많다. 40대인 오세훈 서울시장도 잘못하면 이들의 페이스에 말려 임기 초부터 끌려다닐 수 있다.”
이런 지적에도 정무부시장과 부지사의 역할에 대한 지자체의 기대치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당사자들 역시 ‘경제 첨병’으로서 제 몫 찾기에 더욱 골몰하는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