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주택가 골목길은 범죄에 취약할 수 있다.
N동은 다세대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서민동네로,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특히 현 씨가 살고 있는 쭛쭛번지 일대는 가파른 언덕길에 위치하고 있어서 불미스러운 일들이 더욱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비좁고 가파른 계단을 따라 집들이 늘어서 있어 순찰차를 타고 다니는 경찰이 자주 들여다볼 수 없는 데다 마을 앞뒤로 큰 도로가 나 있어 범죄자가 도망가기 쉽기 때문이다.
어둡고 어수선하고, 드나들기 쉬운 곳 ‘범죄 표적’
N동에서 10년을 살았다는 김모 씨는 “소매치기가 아줌마들의 지갑을 낚아챈 뒤 큰 도로 쪽으로 냅다 내달리면 도저히 쫓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늦은 밤에는 술 취한 사람들끼리의 폭행 시비도 잦다고 한다. “도둑도 많아요. 얼마 전에는 혼자 사는 남학생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훔쳐갈 게 없으니까 속옷을 가위로 잘게 잘라놓고 갔다더라고요.” 현 씨의 귀띔이다. 그리고 “도둑 들었다고 신고해봐야 귀찮아지기만 해서 다들 그냥 넘어간다”라고 덧붙였다. 현 씨는 비교적 이른 시간인 저녁 8시에 가게 문을 닫는다. 한 푼 더 버는 것보다 가족의 안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역시 다세대주택이 밀집해 있는 J동 쭛쭛번지의 주민들도 “우리 동네는 범죄에 취약하다”고 말한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골목길이 비좁은 데다가 보안등도 충분히 설치돼 있지 않아 밤에는 골목길이 매우 어둑하기 때문이다. 3년 전 이 마을로 이사 왔다는 주부 김모(53) 씨는 “새벽 1~2시에 ‘도둑이야!’라고 외치는 소리가 가끔씩 들려와 잠을 설치곤 한다”면서 “밤에 골목길을 걷다 보면 서너 걸음 떨어진 사람 얼굴도 잘 안 보일 정도다. 혹시나 나쁜 사람이 아닐까 싶어 무섭다”라고 말했다.
이 동네 인근의 도로변 인도에서는 술 취한 사람들이 길가에 주차된 차량을 파손시키거나 서로 멱살잡이를 하는 등 불미스런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 가로등이 별로 없는 데다 가로수가 우거져 있어 어둑하기 때문이다. 이 마을을 관할하는 지구대 경찰은 “최근 새로 가로등을 설치하고 자주 순찰을 도는 등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소득수준이 낮은 지역에서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법이지만, 비슷한 소득수준이더라도 환경이 좀더 열악한 지역에서 범죄가 더 많이 발생하는 편이다. 박현호 교수(경찰대)는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장소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고 했다. 즉 상대적으로 범죄가 드문 지역보다 드나들기 쉽고, 어두컴컴하며, 어수선하고, 잘 관리되거나 통제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며, 정리정돈이 안 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범죄 피해를 우려해 지구대 전화번호를 크게 적어놓은 주민(위)<br>좁고 가파른 서울의 한 대학가 인근 동네(아래)
영통지구에 위치한 한 다세대주택 밀집지역과 두 곳의 아파트단지에 사는 주민들은 연령대와 소득수준이 비슷하다. 주택단지 3500여 가구의 평균연령은 38세이고 아파트단지 4600여 가구의 평균연령은 39세, 임차가구의 비율은 각각 79%와 49%다.
그러나 이 두 지역의 범죄율은 큰 차이가 난다. 2004년 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강도 사건은 주택단지가 12건이었지만 아파트단지는 0건이었다. 절도 사건도 87건 대 17건으로 크게 차이가 났다. 차량절도는 21건 대 0건, 성범죄 또한 6건 대 2건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아파트단지라도 정비 덜된 곳은 상대적으로 범죄 많아
권 경정은 “이는 사회적 환경의 차이보다는 물리적 환경의 차이로 인한 결과”라고 말했다. 아파트단지는 외곽에 울타리가 있어 외부인에게 ‘구별되어 있는 공간’이라는 영역감을 주지만, 주택단지는 전혀 그렇지 않다. 또 아파트단지는 출입구가 4개밖에 되지 않지만 주택단지는 골목길 어느 곳으로든 진입이 가능했다. 권 경정은 “게다가 주택단지는 사통팔달로 도로가 연결되어 범죄자들이 도주로를 쉽게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가로등도 거의 없다시피 해 밤에는 무척 어두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아파트단지라고 해서 모두 안전한 것은 아니다. 권 경정은 “정비가 덜된 아파트에서 상대적으로 범죄가 많이 일어난다”고 충고했다.
한 전자업체 공장단지와 인접한 A단지는 인근 아파트단지들보다 범죄율이 높다. 공장단지를 드나드는 유동인구가 많을 뿐더러 아파트 뒤쪽으로 야산이 있어 도주로를 쉽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단지 자체에도 환경적으로 취약한 요인이 숨어 있었다. 담장 바로 옆에 나무가 울창하게 심어져 있어서 남의 눈에 띄지 않은 채 숨을 수 있었다. 또 아파트 동 앞마당에 키 큰 나무가 심어져 있어 나무를 타고 1층 베란다를 통해 진입하기 쉬웠다. 이 아파트단지를 관할하는 한 경찰은 “울창한 나무 사이에 숨어 있다가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가 1층 베란다를 통해 침입하는 것이 이 지역 절도범들의 주요 수법”이라고 전했다. 차량 차단기가 설치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차단기가 있으면 드나드는 차량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어 차량을 이용한 절도범들의 접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상업지구와 바로 붙어 있어 외부인에게 쉽게 노출되거나 지하주차장이 너무 어두운 아파트단지 등도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다. 경찰은 공원처럼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화장실이나 공연시설물 등 폐쇄적인 공간이 있는 경우 범죄가 쉽게 발생한다고 본다. 건축자재가 장기간 방치된 곳, 불법주차가 빈번하게 이뤄지는 곳, 공용주차장이지만 이용 주민이 적은 곳 등도 ‘범죄발생 요주의 지역’으로 꼽힌다.
집이 털리는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강도와 마주칠까봐 집에 들어가기가 무섭다”고 호소한다. 권 경정은 “인구 100만 명이 사는 수원의 강·절도 범죄 피해자는 연간 6000명에 이른다. 이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라며 “정부는 공공장소를 정비해야 하며, 주민 스스로도 주거지역을 가꾸는 일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