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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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초 연기의 달인 “첫 주연 신고합니다”

  • 입력2006-02-27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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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초 연기의 달인 “첫 주연 신고합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비뇨기과에 가면 그의 이름과 똑같은 병도 있다. 성지루. 성도 이름도 특이하지만, 그의 얼굴을 보면 이름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낸다.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얼굴. 다시 또 미안한 말이지만, 예전 같으면 그 얼굴로 TV 탤런트가 되겠다거나 영화배우가 되겠다고 했으면 주변에서 면박깨나 받았을 게다.

    그러나 그는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우편배달부 역으로 등장해 아이를 빌딩 아래로 던지고 자신도 자살하는 극단적 배역을 소름끼치게 표현했다. 성지루는 이 작품으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이런 그의 연기를 보면, 그에 대한 모든 선입관을 지워버릴 수밖에 없다.

    이름은 예명 아닌 본명 … 튀는 얼굴과 함께 시너지 효과?

    그는 또 ‘가문의 영광’에서는 호남 조폭 패밀리의 일원 장석태 역으로 등장했고, ‘선생 김봉두’에서 학교 소사 춘식 역을 맡아 묻혀버릴 수 있는 배역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뿐만 아니라 TV 드라마 ‘파란만장 미스 김 10억 만들기’ ‘폭풍 속으로’ ‘선녀와 사기꾼’ 등에 출연하면서 하층계급에 속하는 조연급 인물들을 맡아 맛깔스러운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런 성지루가 이제 만년 조연에서 주연으로 발돋움했다. 그의 첫 주연 영화인 ‘손님은 왕이다’와 드라마 ‘내 인생의 스페셜’(‘늑대’의 주인공 문정혁과 한지민의 사고로 긴급 편성됐다)이 동시에 대중을 찾아가고 있다.



    “신성우에게서 드라마가 편성됐다는 연락을 처음 받았다”고 말한 성지루는 ‘손님은 왕이다’의 홍보를 위해 모든 스케줄을 맞춰놓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난여름 촬영했다가 그동안 방송 시간을 잡지 못해 창고에 묵혀 있던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웠다. 김종학 프로덕션에서 사전 제작된 ‘내 인생의 스페셜’에서 성지루는 의리 빼면 시체인 깡패 백동구 역을 맡아 명세빈, 김승우, 신성우 등과 함께 주연급으로 활약하고 있다. 현재 이 드라마는 같은 시간대에 방영 중인 타 방송사의 ‘서동요’ ‘안녕하세요 하느님’과 맞서 10%대의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긴급 편성돼 사전 홍보 없이 방송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선전하고 있는 셈이다.

    TV 드라마에서는 그의 원래 몸무게인 80kg의 넉넉한 몸집으로 등장하지만, ‘손님은 왕이다’에서는 이발사 안창진 역을 맡아 캐릭터를 위해 14kg 정도 감량해서 홀쭉한 모습이다. TV 속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다. ‘손님은 왕이다’의 모든 이야기는 성지루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지금 정말 성지루 인생의 ‘스페셜한’ 시간들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손님은 왕이다’에서 이발사를 맡고 있지만 군대 시절 그는 정말 ‘깎새’였다. 전 소대원의 머리를 자신이 깎아주었다고 했다.

    “머리를 깎는 게 간단한 것 같지만, 가위를 잡는 데도 몇 가지 룰이 있다.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다른 손가락은 절대 움직여서는 안 된다.”

    감초 연기의 달인 “첫 주연 신고합니다”

    ‘손님은 왕이다’

    엄지손가락의 날렵한 움직임으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깎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영화 배역을 맡고 두 달 동안 이발소로 출퇴근하면서 이발하는 법을 다시 배웠다. 제작진은 원래 극중에서 이발사가 명계남의 수염을 미는 클로즈업 쇼트는 대역을 쓰려고 했는데 성지루가 열의를 보여 대역 없이 촬영했다. 성지루는 촬영 기간 중에도 스태프들의 면도를 도맡아 끊임없이 실력을 향상시켰다고 한다.

    오기현 감독의 데뷔작 ‘손님은 왕이다’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 니시무라 교타로의 ‘친절한 협박자’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독특한 설정과 반전이 뛰어난 작품이다. 이발사 성지루, 그의 아내 성현아, 그리고 이발소를 찾아와 은밀하게 이발사를 협박하는 이상한 손님 명계남이 등장한다. 성지루는 감정의 절제를 통한 내면 연기로, 딜레마에 빠진 이발사의 고뇌를 깊이 있게 전달하면서 극의 내적 흐름을 조절한다.

    성지루라는 이름은 예명이 아니라 본명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하도 많이 만나서 이름 얘기를 꺼내면 지갑에서 주민등록증부터 꺼내 보여준다. 정말 그의 주민등록증에는 성씨인 성 자만 한자로 쓰여 있고, 이름인 지루는 한글로 적혀 있다.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그는 1968년 10월17일생. 올해 39살이다. 어머니가 저녁 무렵 진통을 시작해 이튿날 아침 일찍 아버지가 밭일 나갈 때까지 진통을 했다. 아버지는 “왜 이렇게 지루하게 안 나오는겨?”라고 한 말씀 하셨고, 성지루는 아침 7시가 되어서야 어머니의 자궁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는 2남1녀의 둘째로 태어났는데 형과 여동생은 가운데 돌림자인 ‘지’를 쓰는 한자 이름이고, 성지루는 돌림자는 쓰고는 있지만 한글 이름이다. 청소년 시절, 그가 이름 때문에 겪었을 고충은 안 들어도 훤하지 않은가? 아버지는 억지로 알 ‘지(知)’에 누각 ‘루(樓)’, 그래서 앎의 장소라는 뜻으로 풀이해주기도 했지만, 성적 호기심으로 가득 찬 사춘기 소년들이 그를 놀리지 않았을 리 없다. 이런 일들은 군대 시절에도 이어진다. 알다시피 군대 졸병들은 계급이 올라가도 언제나 이름은 제외하고 성 뒤에 계급을 붙인다. 성이병, 성일병, 성상병, 모두 성병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놀림감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하고 대학로로 진출했다. 그리고 한국 연극의 중심에 서 있는 오태석 사단의 핵심 멤버로 성장했다. 그에게 지루라는 이름을 안겨준 아버지는 현재 6개월째 뇌출혈로 투병 중이다.

    “데뷔 이후 처음 주연을 맡았는데 누구보다 가장 즐거워하실 아버지가 영화를 볼 수 없어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성지루는 무뚝뚝한 아들이었다. 자신의 근황을 고향에 계신 아버지에게 말씀드리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 몰래 객석에서 성지루의 첫 연극 ‘심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세 번 던진 까닭은’을 보았다. 아버지는 이후 아들의 팬이 되어서 아들의 연극 공연이 있으면 가족을 데리고 대전에서 상경해 함께 연극을 보았다. 성지루는 아버지가 객석에 앉아 있는 날에는 더 긴장하는 바람에 대사를 틀리기도 했다.

    그가 지나가는 행인 같은 단역이 아니라, 배역을 맡고 영화에 출연한 것은 임상수 감독의 ‘눈물’(2001년)이 처음이다. 그 뒤 차승원·이성재·김혜수 주연의 ‘신라의 달밤’(2001년)에서 덕섭으로, ‘아프리카’(2001년)에서는 여성 강도 일당을 뒤쫓는 형사반장으로, ‘공공의 적’(2002년)에서는 대길, ‘라이터를 켜라’(2002년)에서는 만수, 그리고 ‘H’(2002년) ‘가문의 영광’(2002년) ‘휘파람 공주’(2002년)를 거쳐 ‘바람난 가족’(2003년)과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2003년), ‘선생 김봉두’(2003년) ‘불어라 봄바람’(2003년)을 찍는다. 성지루는 2004년에 연극무대로 돌아갔다가 다시 2005년 ‘간 큰 가족’의 박상무 역을 거쳐 첫 주연작인 ‘손님은 왕이다’에 이르렀다.

    ‘손님은 왕이다’의 흥행 결과에 따라 몸값은 달라지겠지만, 성지루가 변함없이 뛰어난 배우로서 우리들 곁에 머물 것이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어떤 배역을 맡아도 상상 이상의 무엇을 보여주는 성지루는 그가 아니면 절대 표현할 수 없는 자신만의 연기 영역을 한국 영화사에 쓰고 있는 중이다. 믿음을 갖고 그의 행보를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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