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LG의 통신계열사들은 네트워크 구축에서부터 초고속인터넷, 시내·외 전화, 그리고 이동통신 등 통신 전 분야에서 ‘환상의 인프라’를 구축했다. 하지만 외형만 화려할 뿐 별다른 성과는 내놓지 못했다. 따라서 지금까지 LG의 통신사업은 ‘시너지 없는 종합선물세트’라는 등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왔다. 자연스레 LG그룹도 안팎으로 “통신사업 전략이 있기는 한 것이냐” “통신사업을 포기해야 되는 것 아니냐” “통신계열사를 매각해야 한다”는 등의 비판과 지적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지난해 후반부터 분위기가 반전되는 기운이 강하게 포착되고 있다. 우선 LG 통신계열사들의 지난해 실적이 눈에 띄게 개선되면서 그룹 차원의 시너지를 발휘하기 위한 내부 체력이 보강되고 있다. 또 파워콤이 초고속인터넷 소매시장에 뛰어들면서 가입자 기반의 유선사업을 펼칠 수 있게 됐다. LG그룹 차원에서 통신사업을 의욕적으로 펼쳐보일 물리적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지난해 고객 600만명 달성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LG텔레콤은 이동통신 3사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성장을 했다. LG텔레콤은 매출액을 2004년 2조2800억원(서비스 매출 기준)에서 지난해 2조6700억원으로 크게 높였다. 특히 성장이 거의 정체된 국내 이동통신 시장에서 10% 이상의 매출을 늘렸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이에 따른 영업이익도 3430억원으로 1년 전에 비해 2000억원을 확대했다. 순이익도 2300억원 이상에 달하는 기염을 토했다.
LGT 매출 10% 이상 늘고 순이익도 2300억 넘어
LG그룹 입장에서는 LG텔레콤이 늦게나마 ‘효도’를 하기 시작한 셈이다.
LG텔레콤은 내년까지 가입자를 800만명 선으로 늘릴 계획이다. 2010년에는 매출 5조원, 영업이익 1조원, 가입자 1000만명 달성이라는 ‘2010 511’의 중·장기 비전도 세웠다.
데이콤 역시 지난해 매출 1조1336억원, 영업이익 1422억원, 당기순이익 646억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실적을 달성했다. 데이콤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PC통신의 대표주자였던 천리안을 보유, 데이터 통신의 활성화 바람을 타며 최고의 회사로 꼽혔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초고속인터넷에 대한 투자 지연으로 시장 경쟁력을 상실하며 경영 악화에 봉착, 한동안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했다. 이후 데이콤은 2002년 네트워크망 사업자인 파워콤을 8200억원에 인수하는 등 새로운 생존 기반 마련에 집중해 최근 효과를 보기 시작한 것으로 평가된다.
LG텔레콤(서비스 매출) | 데이콤 | 파워콤 | |
2004년 | 2조2800 | 1조685 | 5700 |
2005년 | 2조6700 | 1조1000 | 6300 |
2006년(예상치) | 2조9000 | 1조2000 | 8500 |
LG의 통신사업 가운데 특히 눈여겨봐야 할 점은 지난해 9월 파워콤의 초고속인터넷 사업 진출일 것이다. 파워콤은 기존의 네트워크 구축 사업에서 벗어나 100Mbps의 속도를 자랑하는 초고속인터넷 ‘광랜’ 서비스를 시장에 선보였다. 파워콤의 ‘광랜’ 서비스는 출시 이후 35만여명의 가입자를 모으며 초고속인터넷 업계의 새로운 강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파워콤은 지난해 6300억원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올해는 가입자를 100만명으로 늘리며 8500억원, 내년에는 매출 1조원 시대를 연다는 청사진을 마련했다.
파워콤은 초고속인터넷 시장에 진출하면서 모회사인 데이콤의 보라홈넷 가입자를 넘겨받았다. 앞으로 소매시장만을 집중적으로 파고들 방침이다. 반면 데이콤은 기업용 인터넷 시장이나 e비즈니스, 웹하드, 인터넷데이터센터(IDC)를 집중 공략하는 등 역할 분담을 단행했다. LG그룹은 파워콤의 초고속인터넷 시장 진출을 계기로 가입자 기반의 유선통신 기반을 구축하게 됐고, 이를 통해 향후 무선 및 방송과의 결합이 가능한 서비스를 내놓을 계획이다.
LG그룹의 경우 올 하반기 중 데이콤의 인터넷전화(VoIP), 파워콤의 초고속인터넷, 그리고 종합유선사업자(SO)와의 제휴를 통한 방송서비스 등을 결합시킨 TPS(Triple Play Service)를 선보인다. 특히 내년 상반기에는 TPS에 LG텔레콤의 이동전화까지 결합한 QPS(Quadruple Play Service) 상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따로국밥’ 신세였던 LG 통신계열사들의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하나로 묶이면서 대형 결합 상품이 등장하게 되는 셈이다.
현재 LG 통신계열의 전체 가입자는 850만여명(LGT 650만명, 데이콤 160만명, 파워콤 33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올해 말쯤에는 고객 규모가 1000만명 선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가입자 기반의 공격적인 서비스 출시와 마케팅이 가능해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특히 관심을 끈다.
국내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는 LG그룹의 통신계열사들이 독자생존을 위한 결정적 발판을 마련했다는 증거를 보여준 한 해로 평가된다”며 “앞으로 지속적인 성장 여부와 함께 어떠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지가 관심사”라고 분석했다.
LG의 ‘3콤’이 잠에서 깨어나면서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온 LG의 통신계열사에 대한 매각설 또한 잠잠해졌다. 또 그룹 내부에서도 “한번 해보자”는 자신감이 일기 시작한 것으로 평가된다. 올해 초 LG그룹 측은 끊임없이 제기돼왔던 반도체 기업 하이닉스 인수설을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이는 곧 LG전자와 통신사업을 주축으로 그룹을 이끌어가겠다는 의지의 방증으로도 풀이된다.
계열사 간 공조 확대로 시너지 효과 극대화 전망
LG의 통신경쟁력 강화 움직임은 외형적인 실적 개선뿐 아니라 각 사 최고경영자(CEO) 배치에서도 드러난다. LG텔레콤은 올해 초 7년째 이끌고 있는 남용 사장을 유임시키는 한편 파워콤 사장이었던 박종응 사장은 모회사인 데이콤으로 자리를 옮기게 했다. 또 데이콤 부사장이었던 이정식 사장은 파워콤의 지휘봉을 잡았다. 계열사 간 시너지 발휘의 기반을 위해 CEO를 ‘빅딜’한 셈이다.
여기에 각 계열사 간 인력 교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파워콤이 초고속인터넷 시장에 진출할 때 모두 400여명의 직원을 충원했는데 90%가 LG전자, LG텔레콤, 데이콤 등에서 차출했다. LG 측은 “향후 합병 등 통신시장의 여러 상황 변화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며 “특히 회사 수장들의 경우 서로의 역할을 바꿔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통신계열사 간 공조 확대를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데이콤과 파워콤은 올해 약 4500억원을 차세대 통신망 구축에 쏟아부을 계획이다.
현재 국내 통신시장은 유·무선 컨버전스 대세 속에서 KT, SK텔레콤, LG 계열사들이 시장을 분할하고 있다. ‘통신 공룡’으로 불리는 KT는 휴대 인터넷(와이브로) 등 신사업을 추진하며 유·무선 통합 시대를 착착 준비해가고 있다. SK텔레콤도 이동통신 시장에서 구축한 절대적 지위와 자본을 바탕으로 유선 사업자 확보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선발 사업자들 세력 막강 … 네트워크와 서비스가 관건
한편 LG 계열사들은 지난해 상당한 실적을 올렸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각자의 시장에서는 3위 사업자에 머물고 있다. KT와 SK텔레콤이라는 거대 통신업체들의 공격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따라서 향후 LG의 통신사업은 내부 전략과 함께 정부의 시장지배 구도 정책과 민감하게 맞물려 있다. 즉 앞으로 통신시장의 변화에 따라 국내 통신시장의 이상적인 구도가 2강(KT-SKT)이나 3강(KT-SKT-LG계열) 체제로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까지 정부가 시행한 비대칭규제, 번호이동제도, 선발사업자에 대한 규제 등을 볼 때 정부는 3강체제 구축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무선 컨버전스를 향해 급변하는 통신시장의 흐름 속에서 네트워크망과 서비스 모두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그 어떤 업체라도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다. LG그룹은 과거 데이콤의 초고속인터넷 초기 투자 실패를 비롯해 한솔텔레콤과 하나로텔레콤 인수를 추진했다가 고배를 마신 경험이 있다. LG그룹으로서는 뼈아픈 과거다. 그룹 차원의 과감하고 발빠른 결단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LG가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급변한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의 통신시장은 어느 사업자에게나 ‘장고(長考)’를 허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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