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국현 유한킴벌리 회장, 최인기 민주당 의원, 최열 환경재단 상임이사, 김상하 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김덕봉 전 총리공보수석, 강운태 前 의원, 김기운 초당약품 대표(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내 고향이 무안군 몽탄면 사창리 초당산 부락인데 이곳에서 공부한 선비가 높은 벼슬을 했고, 그 선비가 나중에 초당을 호로 쓴 것으로 알고 있다.”
초당모임은 지금도 매년 4~5차례 모임을 가진다. 지난 12월 서울 종로구청 앞 한정식 집에서 식사를 한 것이 가장 최근의 회동. 멤버는 강운태 전 내무장관과 전석홍 전 의원, 이준범 전 전남지사, 윤근환 전 농림부 장관, 김창식 전 교통부 장관 등 20여명이다.
‘보름회’도 요즘 고 전 총리 곁으로 바싹 다가서고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조직이다. 장·차관을 지낸 인사들 중심으로 결성된 보름회는 매달 15일에 모인다. 민주당 최인기·신중식 의원과 김홍래 지방행정연구원장 등이 이 모임에서 고 전 총리와 술잔을 기울이는 지기들.
외부에 노출 안 된 조직도 많아
문민정부 마지막 내각의 각료 출신들로 구성된 ‘문경회’도 보폭을 조절하며 고 전 총리의 주변을 바쁘게 오가고 있다. 오인환 전 공보처 장관과 유종하 전 외무, 심우영 전 총무처 장관 등이 이 모임에서 고 전 총리의 후견인 구실을 하고 있다.
고 전 총리의 인맥은 36년 공직생활 중에 형성됐다. 국무총리(2회), 장관(3회), 서울시장(2회), 국회의원(초선) 등 대통령을 빼고는 안 해본 것이 없는 고 전 총리는 만나는 사람마다 손을 내밀었고, 가는 곳마다 모임을 만들었다. 모임을 만든 배경도 사람도 다르지만, 한번 모임을 만들면 그들 대부분은 평생 고 전 총리와 연을 맺었다.
그렇게 만든 모임이 줄잡아 20여개. 짧게는 1~2년, 길게는 30년이 넘는 이런 모임 가운데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 조직도 많다. 고 전 총리의 핵심 측근인 김덕봉 전 총리 공보수석(고려대 산학협력단 연구교수)조차 다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다. 김 전 수석은 “보름회, 기린회에 대해 말해달라”는 기자의 요구에 “그런 모임도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고 전 총리는 모임이 공론화되는 것을 꺼린다. 모임에 속한 사람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인맥을 관리하는 측근을 두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고건 사람’에 대해서는 오로지 고 전 총리만 전모를 안다.
고 전 총리는 13대 총선 당시 민정당 공천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고 전 총리는 “밥이나 먹자”며 낙선자들을 끌어 모아 기상천외한 모임을 만들었다. 낙선자들의 오갈 데 없는 신세를 빗대 만든 ‘오리알회’가 그것. 모임의 한 관계자가 “고 전 총리 아니면 누구도 만들 수 없는 모임”이라고 표현한 이 모임의 멤버는 이영일, 박범진, 이민섭, 길승흠, 이만섭 전 의원 등이다. 이 가운데 일부는 고 전 총리의 대권가도에 차출돼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후문.
2005년 9월12일 고건 전 총리가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심대평 충남지사(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총리 시절에는 공무원과 기자를 상대로 모임을 만들었다. 이때 만들어진 모임이 고언(高言)회. ‘고언’은 고 전 총리와 언론을 뜻한다.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때도 비슷한 모임을 만들었다. 김 전 수석은 “고 전 총리와 관계된 언론 모임만 6개 이상”이라고 말했다. 이들 모임은 고 전 총리의 상황 판단에 필요한 정보는 물론 일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동력을 제공한다.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 중심으로 만든 모임도 있다. 민주당 신중식, 우리당 이호웅·김부겸,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 등이 이 모임의 멤버들. 그런가 하면 ‘화목회’는 경기고 52회인 고 전 총리의 고교 후배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모임이다. ‘고건을 생각하는 모임’의 성격이 짙은 이 모임은 고 전 총리의 정치적 강약과 진퇴, 기승전결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는 후문이다.
고 전 총리는 고시 13회 동기들과도 매달 13일 얼굴을 맞댄다. 한나라당 이상배 의원, 이효계 숭실대 총장, 김영진 전 한나라당 의원, 선준영 전 유엔대사, 노건일 전 교통부 장관 등이 그 면면들.
지방선거 앞두고 인맥과 조직 전진 배치
고 전 총리가 유력 차기 대선후보로 이름을 올린 요즘은 자발적으로 돕겠다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한 측근은 “지금 인맥으로도 18개 부처와 청와대 인사를 마무리할 수 있고, 쇄도하는 인맥까지 감안하면 지자체까지 커버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장·차관 출신만 100여명에 육박한다는 것.
지방선거를 앞둔 고건 캠프는 최근 인맥과 조직을 전진 배치시키는 기색이 엿보인다. 고 전 총리를 중심으로 종으로만 연결됐던 모임이 횡으로도 이어지고 있는 것. 대표적인 조직이 1월23일 창립총회를 가진 ‘한국의 미래와 경제를 위한 모임’(‘미래와 경제’Great Korea Form). ‘미래와 경제’는 △국정이념, 철학분과 △경제분과 △사회복지분과 △교육분과 △통일, 외교분과 등 분야별로 전문가를 포진시키고 고 전 총리에게 제왕학 강의를 할 준비를 끝낸 상태다.
‘미래와 경제’에는 학계와 경제계, 언론계, 시민단체 등 고 전 총리 인맥이 총망라됐다. 김상하 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박권상 전 KBS 사장, 송월주 전 조계종 총무원장, 신수연 전 여성경제인협회 회장, 이세중 전 대한변협 회장, 최열 환경재단 상임이사 등이 발기인 대표. 발기인으로는 고병우 한국경영인협회 회장, 김성훈 상지대 총장, 노기태 국제신문 사장, 박무종 코리아타임즈 사장, 성대석 한국언론인협회 회장, 송자 전 연세대 총장, 윤경로 한성대 총장, 이필상 고려대 교수 등이 이름을 올렸다.
최근 신당 창당설을 공개적으로 언급해 파문을 일으킨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이하 ‘한미준’. 위원장 이용휘)도 고 전 총리의 외곽 조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위원장은 “한미준은 정치를, ‘미래와 경제’는 경제를 맡고 우민회는 인터넷 공간을 담당하는 것으로 역할을 분담했다”고 말했다.
1월20일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창립대회 모습.
‘동숭포럼’도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이세중 전 대한변협 회장, 정경균 서울대 명예교수, 한종훈 아프리카 미술박물관장 등 고 전 총리의 오랜 지인들이 동숭포럼의 핵심 멤버들. 7~8명이 매일 아침 집 근처 찻집에서 만나 티타임을 가진다.
비슷한 이름을 가진 ‘동숭동팀’도 있다. 이 조직은 2000년 고 전 총리가 서울 민선서울시장 후보 시절 선거사무실을 자택인 동숭동에 마련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이곳에서 일했던 인사는 우리당 정동영(기획팀장), 김한길 의원(방송팀장), 김정탁 성균관대 교수(전략홍보팀장), 강홍빈 서울시립대 교수(정책팀장), 김진수 총회신학연구원(사무국장) 등 10여명. 동숭동팀 멤버 중 정치인을 제외한 대부분은 최근에도 정기적으로 고 전 총리를 만나고 있다.
고 전 총리는 21C 한중교류협회 고문으로도 활동한다. 김한규 전 총무처 장관이 회장인 이 모임에는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 나웅배 전 경제부총리, 권오기 전 통일부 장관, 한승수 전 경제부총리,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 등 전직 장·차관들이 중심이다.
현역 정치인 고 전 총리 인맥도 관심사
현역 정치인들 사이에 포진한 고 전 총리의 ‘인맥’도 관심사다. 먼저 열린우리당 내에 고 전 총리의 고정 팬이 있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박병석 의원은 99년 고 전 총리가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정무부시장을 지냈고, 이호웅·김성곤·신학용 의원은 경기고, 서울대 정치학과라는 학연으로 고 전 총리와 연결된다. 이밖에도 최승용 의원 등 이런저런 연으로 연결되는 우리당 내 고 전 총리의 잠재적 우호세력은 30여명에 달한다.
2월8일, 고 전 총리는 우리당 김근태 상임고문을 만났다. 당 관계자들은 회동 자체보다 회동을 성사시킨 막후 채널에 관심을 보였다. 사전 실무 논의에서 고건 쪽 ‘대리인’이 우리당 안영근 의원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안 의원은 “사실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지만 “우리당이 고 전 총리와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고 전 총리와 접촉한 것은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향후 대권가도에서 ‘고건 변수’가 여당에 끼칠 영향력을 가늠케 하는 사례다.
야당에도 고 전 총리를 애타게 찾는 사람들이 많다. 민주당 최인기 의원과 강운태 전 농림부 장관이 대표적인 고건 지지파. 이들은 국민중심당, 민주당을 고 전 총리와 하나로 묶는 작업을 지휘하고 있다. 내무부에서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은 강 전 장관은 고 전 총리의 ‘복심(腹心)’으로 불릴 정도다. 강 전 장관은 지난해 ‘파푸스(PAFUS) 포럼’ 결성도 주도했다. 고 전 총리는 지난해 10월 ‘건봉’이라는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들과 함께 과천 청계산 산행에 나섰는데, 고건의 ‘건’과 봉우리 ‘봉’자를 의미하는 ‘건봉’의 젊은이들이 바로 파푸스 회원들.
2005년 5월8일 고건 전 국무총리가 이화여대 학생들과 동숭동 대학로의 한 식당에서 호프미팅을 하고 있다.
“고 전 총리의 리더십은 3김(金)과 달리 드라이하다. 보스와 계보원이라는 연대감이 떨어지고, 그래서 충성심도 상대적으로 약하다(상자기사 참조).”
“바람이 나무를 가만두지 않아”
고 전 총리는 모든 조직과 인맥을 자신을 중심으로 부채꼴 형태로 펼친다.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하지만, 총괄관리 시스템이 없는 이런 조직의 허점은 때로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런 단면을 엿볼 수 있었던 예가 최근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잠잠해진 ‘고건 신당’ 창당설이다.
2월14일 새벽 3시, 김덕봉 전 총리 공보수석은 정적을 가르는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깼다. 이날 조간신문에 고건 전 총리의 신당 창당 기사가 실렸고, 이를 확인하려는 정치권 및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친 것. 그러나 김 전 수석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보도 내용에 대해 사전에 아무런 언질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기사가 났느냐”는 반문에 기자들은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김 전 수석을 더욱 곤혹스럽게 한 것은 그 다음 상황이었다. 보도 경위를 파악하려 했지만, 전화를 할 마땅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 결국 김 전 수석은 이날 새벽 수습방안을 찾는 것을 포기했다.
이 같은 조직 상층부의 총괄 시스템 부재는 때로 조직의 갈등과 반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인터넷 고사모 우민회가 심한 노선 투쟁에 빠졌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당시 이 단체는 ‘순수 고건 팬클럽으로 남자’는 의견과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해 적극적인 정치세력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의견이 충돌했다.
하지만 고 전 총리는 주변의 이런 움직임에 아직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 측근은 “나무는 가만있으려 하지만 바람이 가만두지 않는다”는 말로 고 전 총리의 현재 입장을 표현했다. 그는 최근 창당을 시사한 ‘한미준’에 대해서도 “고 전 총리의 뜻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고 전 총리가 움직임으로써 활동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군소정당의 의원 및 관계자들, 그 주변을 에워싼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이 한미준과 어울려 고 전 총리의 정치활동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고 전 총리의 차기 대권 도전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의 첫 번째 과제는 느슨한 형태로 산개(散開)된 주변 조직부터 하나로 묶는 작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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