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5일 미국 LA 인근 홈디포센터에서 선수들이 가벼운 달리기로 몸을 풀고 있다.
지옥훈련을 마친 뒤 아드보카트호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리고 남은 4개월간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빠른 공수 전환 ‘포백 수비’ 본궤도
지옥훈련 첫 경기는 실망스러웠다. UAE와의 평가전에서 무기력하게 0대 1로 패한 것. 하지만 갓 소집된 선수들의 당시 몸 컨디션은 50% 수준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그리스전(1월21일)부터 아드보카트 감독은 포백을 가동한다. 유럽팀을 격파하기 위해서는 포백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아드보카트 감독의 판단이다. 그는 활 모양의 변화무쌍한 포백을 선보였다. 빠른 공수 전환이 가능한 포백의 장점에 선수들에게 익숙한 스리백의 전통을 가미한 것.
1대 3으로 패한 덴마크전을 제외하면 한국의 포백은 월드컵에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다져졌다는 평가다. 다만 좌우 측면 뒤쪽을 쉽게 내주는 것과 좌우 수비수가 공격에 나섰을 때 미드필더가 그 공백을 메우는 커버플레이는 다듬어야 할 부분이다.
이번 전지훈련 기간에 치른 8경기에서 2명의 센터백 라인은 김상식(성남), 김영철(성남), 최진철(전북), 유경렬(울산), 김진규(이와타)가 매 경기 다른 조합으로 경기에 나서면서 테스트를 받았다. 센터백은 최진철과 김진규 콤비가 사실상 낙점을 받았고, 김동진(서울)·조원희(수원)가 좌우 풀백으로 눈도장을 받았다.
조원희는 이번 전지훈련의 최대 수확이다. 이영표(토트넘 홋스퍼)가 왼쪽 윙백을 맡을 가능성이 높아 주전 경쟁에서도 유리한 편이다. 이밖에도 이호(울산), 백지훈(서울) 등 ‘젊은 피’들이 국제무대에서의 경쟁력을 검증받은 것도 고무적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이들이 실수할 때마다 ‘칭찬’으로 치유하며 ‘자신감’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안겼다. 이들의 성장으로 아드보카트호는 신구 조화를 이룬 안정된 팀으로 변모했다.
신세대의 핵심인 박주영은 그리스전(1대 1 무)과 핀란드전(1대 0 승)에서 잇따라 골을 잡아내며 ‘타고난 골잡이(natural scorer)’라는 아드보카트 감독의 칭찬에 화답했다. 그러나 이번 전지훈련 기간에 박주영의 플레이는 다소 실망스러웠다는 평가다. 박주영은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차두리(프랑크푸르트), 설기현(울버햄튼), 안정환(뒤스부르크) 등과의 주전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사우디 4개국 대회를 우승한 대표팀은 홍콩 칼스버그컵에 출전했다. 설날(1월29일) 열린 크로아티아전을 2대 0으로 호쾌하게 승리한 한국은 덴마크전에서 조재진의 선제골을 지키지 못하고 1대 3으로 패했다. 덴마크전은 수비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경기였다. 특히 공중볼 처리 미숙으로 찬스를 자주 허용한 것은 반드시 보완해야 할 부분이다.
미국으로 이동하며 분위기를 쇄신한 아드보카트호는 미국과의 비공식 평가전에서 2대 1로 승리한 데 이어 LA갤럭시를 3대 0으로 격파했다. 대표팀은 코스타리카를 맞아 완벽하게 경기를 제압하고서도 수비 실수로 페널티킥을 내주며 0대 1로 패했지만 값진 교훈을 얻었다.
하레드 보르헤티(볼튼)와 라파엘 마르케스(바르셀로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주전들이 출전한 멕시코를 맞아 압도적인 경기로 1대 0 승리를 거둔 것은 값진 소득이었다. 멕시코전은 상대 실수에 따른 행운의 결승골이 승부를 가르기는 했지만 내용 면에서는 평가전 중 최고였다. 미드필드에서의 압박에 성공하면서 중원을 장악했고, 측면 공간을 활용한 플레이가 살아나면서 포백 라인도 안정감을 찾았다.
‘토털사커의 계승자’답게 아드보카트 감독은 이번 전지훈련에서 볼 점유율을 높이며 경기를 지배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경기를 압도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축구 철학이다. 아드보카트호는 유럽의 강팀들을 맞아서도 경기를 지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젊은 선수들 위주로 경기에 나섰으면서도 대등한 플레이를 보여줬다는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또한 압박을 강조한 ‘더블 볼란테(double volante·2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가동, 성공적으로 정착시킴으로써 상대팀에 따라 4-2-3-1, 4-2-1-3 등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게 됐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해외파 합류 후 본격 공격 훈련
아드보카트호는 UAE, 덴마크, 코스타리카 등 3개국에 패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승패보다는 실험을 강조했다. 더욱 강한 팀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략적 패배’도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칼스버그컵 결승전에서 덴마크에 1대 3으로 역전패하자 아드보카트 감독은 “때로는 지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세 차례의 패배를 통해 포백 라인을 재정비하고 젊은 선수들의 투쟁심을 자극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아드보카트호의 전지훈련이 남긴 성과 중 하나는 연패가 없었다는 점이다. 평가전이라고 하더라도 연패에 빠질 경우 팀 분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흐트러질 수 있다. 하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은 패배 후 곧바로 승리를 얻어내는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이번 전지훈련 구성원들은 최종 엔트리에서 적어도 7명은 탈락해야 하는 생존경쟁을 벌였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심사숙고 끝에 멕시코 전에서 주전 윤곽을 드러냈다.
원톱 스트라이커는 이동국이 낙점받았다. 물론 안정환과의 주전 경쟁이 남아 있다. 전지훈련 기간 동안 2골 2어시스트의 활약을 보여준 이천수는 설기현, 차두리가 합류하더라도 쉽게 주전을 내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남일(수원)-이호(울산)가 가동된 ‘더블 볼란테’ 콤비와 백지훈도 아드보카트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다. 유럽파 이을용(트라브존스포르)은 쉽지 않은 주전 경쟁을 벌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경호와 박주영의 주전 선발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유럽파가 합류한 뒤 벌어질 ‘베스트 11’ 경쟁은 매우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팀은 90% 완성됐다. 남은 10%를 보완한 뒤 마무리 훈련에 나설 계획이다.”
장모상을 당해 LA에서 네덜란드행 비행기에 오른 아드보카트 감독은 핌 베르베크 코치를 통해 자신의 뜻을 이렇게 밝혔다. 공수의 균형을 갖추는 데 성공한 만큼 수비 조직력을 가다듬어 ‘바늘도 통과 못하는’ 탄탄한 포백 라인을 만들겠다는 게 ‘작은 장군’의 생각이다. 부분 전술을 통한 정확하고 빠른 크로스와 공간을 만들어내는 공격 훈련은 해외파가 합류한 뒤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주전 수비수들의 전력을 배가하면서 공격 루트 다변화에 힘쓸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