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요리 전문점 ‘스바루’의 산마를 곁들인 메밀국수에는 담백하고 고소한 메밀의 맛이 그대로 살아 있다.
나도 1980년대 뉴욕에서 일본 요리를 접한 후 일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 당시 뉴욕에서 알게 된 K선생은 나를 이 새로운 요리세계에 입문시켜준 ‘맛의 명인’이었다. 그는 가장 두려운 날이 신용카드 결제일이라고 말하면서도 맛있는 요리를 즐기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K선생과 함께 뉴욕의 내로라하는 레스토랑을 순례하며 그가 수많은 레스토랑에서 겪었던 무용담을 듣곤 했다. 다음은 그가 오랜 뉴욕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한 후 들려준 이야기다.
일본 천황에게 초밥을 올리던 스시의 명인이 있었다. 그의 초밥 만드는 실력은 실로 대단해서 요리사들조차 그의 초밥을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을 정도였다. 어렵게 그의 요리를 먹을 기회를 얻은 요리사들은 초밥을 머리 위에 올려 존경의 예를 표한 후 두 눈을 감고 조심스럽게 초밥을 먹었다. 그는 “어떻게 이처럼 훌륭한 명인이 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내가 훌륭한 것이 아니라 생선이 훌륭한 것이지요”라고 대답했단다.
나는 이 이야기를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참으로 제각각이다. 일본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감동해서는 몇 번이고 아주 진지하게 “좋은 이야기를 들려줘 고맙다”고 말한다. 미국 사람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웃으며 대화를 이어나가고 유럽 사람들은 “일본 문화와 한국 문화는 어떻게 다르냐”고 묻는다.
아기자기한 일본풍 장식품들로 꾸며진 ‘스바루’ 내부.
그렇다면 누가 옳은 것일까? 나는 다 일리가 있고, 이런 것이 바로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반응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웃나라 일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일본적인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내 경험에 비춰봐도, 서울이나 부산에서 먹는 일식보다 뉴욕에서 맛본 일식이 더 일본적이었다.
그러나 우리 문화, 우리 요리를 세계에 알리려면 일본적인 것이 무엇이고 한국적인 것과는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야 한다. 일본의 현대건축을 보면 일본 요리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그대로 살아 있다.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예를 들어보자. 그의 작품에서는 거칠거칠한 르 코르부지에의 콘크리트 표면과는 다른 아주 매끈한 콘크리트 텍스처를 볼 수 있다. 마치 나무와 종이의 부드러움을 콘크리트 위에 구현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콘크리트 건물을 짓는 데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매끈한 표면을 만들려면 유동성을 높여야 하지만, 이럴 경우 내구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완벽하고 아름다운 건물을 짓기 위해 건축가들은 물과 시멘트의 배합, 철근의 간격에 대해서까지 무수한 실험을 거듭한다. 이 과정을 거쳐 지어진 안도의 건물들은 교토, 오사카의 오랜 목조건물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우리 가까이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일본적 감각은 편의점이나 배스킨라빈스의 녹차 아이스크림이다. 재료의 특성을 최대한 끌어내면서 이질적인 것을 조화시키는 ‘퓨전 감각’이 바로 일본적인 것이다. 이것 외에도 우리 주위에는 1만원을 넘지 않는 한도에서(단 하나만 먹는다면) 일본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곳들이 많다.
성북동 간송미술관 앞 ‘피오나’는 꽃을 테마로 한 플라워 카페다. 이곳의 녹차 아이스크림은 일본적인 맛의 정수다.
홍익대 앞 스바루(02-338-5153)는 갈 때마다 무엇을 주문할까 고민하게 만드는 곳이다. ‘산마를 곁들인 메밀’을 먹을까 아니면 ‘오리고기를 곁들인 메밀’을 먹을까의 선택 때문이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하얀 산마를 곁들인 메밀국수인데 이곳의 국물은 가쓰오부시(참치를 훈연하여 얇게 썬 요리재료)의 맛이 잘 살아 있고 특히 훈제향이 진하게 느껴진다. 보통 메밀국수보다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베트남 쌀국수와 비교하면 오히려 더 큰 가치가 있다. 일본에서 메밀국수 만드는 법을 제대로 배워온 이곳의 사장님이 매일매일 직접 손으로 한정 수량만 만들어내는 이곳의 메밀은 아주 별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