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에 있는 한국의약품정보센터.
의약품유통정보시스템은 국민의 정부 100대 과제 실현의 일환으로 의약분업과 맞물려 1998년부터 추진된 의약품 유통구조 개혁의 핵심 사업. 그러나 현재 의약품유통정보시스템을 이용해 이뤄지는 의약품 거래는 월 평균 10여건에 지나지 않는다.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하면서 거액을 들여 설치된 전산망은 ‘돈 먹는 하마’가 된 지 오래다.
의약품 유통구조를 일원화함으로써 리베이트 등 고질적인 유통과정의 부조리를 일소하고 물류비를 줄이겠다는 게 의약품유통정보시스템의 도입 취지였다. 정부의 계획대로 사업이 진행되지 않은 것은 의사협회 약사협회 등 이익단체의 반발과 제약업계 의약품 도매업계의 무관심 때문이었다. 기득권 상실을 우려한 의사와 약사들은 새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았고, 사업 초기 시스템 도입에 찬성 의사를 밝혔던 제약업계와 의약품 도매업계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것.
의사협회와 약사협회가 의약품유통정보시스템의 도입에 반대한 것은 직불제 때문이었다. 직불제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약업체에 직접 약가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이 제도에 따르면 의사와 약사들은 약가 마진이나 리베이트 등 의약품 유통과 관련된 기득권을 상당 부분 잃고 처방료와 조제료만 받게 된다.
월 10여건 거래 ‘돈 먹는 하마’
의약품유통정보시스템의 표류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은 민간사업자로 참여한 삼성SDS다. 삼성SDS는 지금까지 400여억원을 시스템 구축·운영 비용으로 쏟아 넣었다. 삼성SDS 관계자는 “유통정보 시스템을 돌리는 데 월 2억원 이상이 소요되고 있으며, 그동안 투자된 구축비를 포함하면 손실이 450억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1998년 12월부터 회사를 이끌어온 김홍기 전 삼성SDS 사장이 지난해 12월 낙마한 것에도 복지부와의 소송이 적잖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사장은 2001년 미국의 IT(정보기술) 잡지인 컴퓨터월드가 선정한 ‘올해의 IT CEO 100인’에 포함되는 등 세계무대에서도 널리 알려진 IT업계의 스타 CEO였다.
삼성SDS가 중재와 조정을 거쳐 소송에 나선 것은 사업 정상화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소송에 앞서 수원지법이 구축비 360억원에 대해 10년간 분할상환하라고 조정 결정을 내렸으나 법원의 결정에 복지부가 이의를 제기해 소송으로 자동 전환됐다.
복지부측은 “삼성SDS가 사업적 판단을 내려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복지부에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삼성SDS측은 “복지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복지부는 승소를 장담하고 있지만 패소할 경우엔 국민 세금으로 보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김화중 복지부 장관은 4월4일 2003년 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의약품유통정보시스템 운영 정상화 추진을 통해 의약품 거래의 투명성을 제고하겠다”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재추진은 어렵더라도 이미 구축한 시스템의 활용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게 복지부의 계획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의약품유통정보시스템을 활용할 구체적인 방안이 없는 데다 관련 이익단체와 의약품 업계를 다시 설득하기도 쉽지 않다. 복지부의 계획에 대해 의사협회, 약사협회 등 관련 이익단체와 제약협회, 의약품 도매협회 등 공급자 단체들은 하나같이 “실현 가능성이 없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