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100일, 청와대에서는 문재인 민정수석비서관이 가장 돋보인다. 취임 후 석 달 남짓 문수석은 노무현 대통령이 맞닥뜨린 각종 현안의 해결사로 종횡무진 활약했다. 문수석에 가려 서열이 높은 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 이정우 정책실장 등은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문수석은 자신의 고유 업무인 대통령 친인척 비리의혹 규명, 인사 검증 및 공직 사정은 물론 조흥은행 매각을 둘러싼 노사갈등, 화물연대 파업,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도입을 둘러싼 교육계 갈등 등 각종 현안에 개입, 중재 역할을 도맡아왔다.
일부 언론에서는 문수석이 각 분야 현안에 개입하는 현상에 대해 ‘비선정치의 출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또 문수석을 김대중(DJ) 정권 전반기 DJ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던 당시 박지원 공보수석과 비교하며 ‘왕수석’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나아가 한때 주목받던 386 참모들을 누르고 사실상 문수석이 청와대의 실세로 부상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물론 변호사 시절 문수석은 노동문제에 조예가 깊었고 노사 간 갈등을 조율한 경험도 적지 않았다. 이해 갈등이 심각한 현안을 푸는 데 문수석만한 현장경험을 갖춘 참모가 없어서 문수석이 모든 문제에 해결사로 나서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타 비서관들 소극적 태도도 文수석 등 떼민 셈
이런 불가피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문수석의 ‘활약’을 보는 주변의 시각이 곱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문수석과 노대통령의 ‘특수한 관계’ 탓에 문수석의 판단이 곧 노대통령의 판단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이 가장 큰 문제다. 취임 초 노대통령은 문수석을 가리켜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믿음이 돈독한 사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갈등의 현장에서 문수석이 제시한 해법이 곧 노대통령의 판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갈등의 당사자들이 문수석을 단순한 중재자 이상으로 받아들이는 이상 그의 적극적 현안 개입이 자칫 노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실제 문수석이 개입해 ‘실시 유보’로 입장을 정리한 NEIS 문제의 경우 그로부터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교육부총리가 ‘전면 실시’로 입장을 바꾸는 등 혼선을 빚어 갈등은 더욱 커졌고 결국 고스란히 노대통령의 부담으로 남고 말았다.
문수석이 각종 정책 현안의 해결사로 떠오른 이유를 청와대 관계자들은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 새 정부는 청와대 직제를 크게 줄였다. 과거 정권에서는 정부 부처에 대응해 정책 분야별로 청와대 수석직을 나눴지만 현정권에서는 기존의 분류 방식을 택하지 않고 수석비서관을 크게 줄였다. 그러다 보니 각종 현안에 대해 누가 대책을 수립하고 갈등을 조정해야 할지가 불분명해졌다. 현안에 대처할 사람이 분명하지 않자 민정수석이 이를 도맡아 해결하는 양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정책실장이나 정책수석실이 장기적 국가정책을 다루는 업무 중심으로 전환한 것도 현안 해결사로 민정수석실의 역할이 커진 원인이 됐다.
둘째로 문수석 특유의 기질이 문제를 더욱 꼬이게 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문수석이 정치인 출신이었다면 이렇게 온갖 문제에 다 나서는 ‘미련한’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수석이 중재자로 나선 현안들은 모두가 이해당사자가 분명한 사안들이다. 어떤 결론을 내더라도 한쪽의 표를 잃을 수밖에 없는 사안들이다. 문수석이 정치인이었다면 표를 잃기 십상인 이런 현안에 뛰어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인 출신 청와대 참모들이 현안에 몸을 사린 것도 이 때문이라는 얘기다.
文수석 본인은 ‘왕수석’ 보도에 크게 신경 안 써
‘정무적 마인드’ 부족은 민정수석실의 인적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민정수석실에는 문수석을 포함해 6명의 비서관이 있다. 이호철 민정1비서관, 박범계 민정2비서관, 이석태 공직기강비서관, 양인석 사정비서관 그리고 황덕남 법무비서관 등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호철 비서관을 제외한 5명이 모두 변호사 출신이다. 법조인 출신의 공통된 코드라면 ‘법과 원칙’이다. 법조인 출신은 아니지만 이호철 비서관 역시 만만찮은 원칙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재야 시절 이비서관은 노대통령이 흔들릴 때마다 원칙을 강조하며 붙들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정치적 융통성보다는 원칙에 따라 판단하고 처리하는 데 익숙한 비서관들이 민정수석실을 장악하다 보니 정무적 판단에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 문수석이 득보다 실이 많은 갈등 중재자로 ‘거리낌 없이’ 나서는 데는 이 같은 민정수석실의 분위기도 적잖이 작용했다는 게 청와대 주변의 견해다.
마지막으로 문수석이 해결사로 떠오른 데는 다른 수석비서관과 보좌관들의 소극적 태도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수석비서관·보좌관회의를 참관한 적이 있는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노대통령이 토론을 중시하는 수평적 리더십의 소유자인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하지만 수석비서관·보좌관회의 초반에는 관료 출신 수석이나 보좌관들은 입을 다물고 대통령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문수석은 그렇지 않았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자신 있게 자기 생각을 얘기했다. 대통령과 회의하면서 자기 주장을 소신대로 펼치는 데 익숙지 않은 관료 출신 수석이나 보좌관들의 눈에는 이런 문수석이 이상하게 보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현안을 두고 대통령과 벌이는 토론에서 분명하게 제 목소리를 내는 비서관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힘과 권한이 쏠리는 것은 당연지사. 문수석이 정권 초기 두드러진 데는 달라진 청와대 토론문화도 한몫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 모두가 노대통령식 토론문화에 익숙해지면서 다른 수석과 보좌관들도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며 “문수석이 현안을 독점해 풀어가는 현상은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수석 본인은 ‘왕수석’이라는 언론 보도에 대해 “나는 왕씨가 아니라 문씨”라며 웃어넘기는 등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문수석의 생각처럼 상황이 여유로운 것만은 아니다.
과거 정권 시절 국정운영이 난조를 보일 때면 대통령은 한두 사람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아들 현철씨를 국가운영의 핵심 파트너로 삼았던 일이 그렇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박지원 전 비서실장에게 지나칠 정도로 의존했던 모습 또한 그렇다. 두 전 대통령은 2인자의 힘에 의지해 난국을 돌파하려 했으나 결국 2인자는 대통령의 족쇄가 되고 말았다.
노대통령은 이 같은 2인자의 병폐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시스템이 나라를 다스리게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의미 있는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난조에 빠지면 결국 국민들만 피곤해진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라고나 할까. 2인자 ‘왕수석’이라는 표현만으로도 국민들이 불안해질 수 있다.
문수석은 자신의 고유 업무인 대통령 친인척 비리의혹 규명, 인사 검증 및 공직 사정은 물론 조흥은행 매각을 둘러싼 노사갈등, 화물연대 파업,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도입을 둘러싼 교육계 갈등 등 각종 현안에 개입, 중재 역할을 도맡아왔다.
일부 언론에서는 문수석이 각 분야 현안에 개입하는 현상에 대해 ‘비선정치의 출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또 문수석을 김대중(DJ) 정권 전반기 DJ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던 당시 박지원 공보수석과 비교하며 ‘왕수석’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나아가 한때 주목받던 386 참모들을 누르고 사실상 문수석이 청와대의 실세로 부상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물론 변호사 시절 문수석은 노동문제에 조예가 깊었고 노사 간 갈등을 조율한 경험도 적지 않았다. 이해 갈등이 심각한 현안을 푸는 데 문수석만한 현장경험을 갖춘 참모가 없어서 문수석이 모든 문제에 해결사로 나서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타 비서관들 소극적 태도도 文수석 등 떼민 셈
이런 불가피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문수석의 ‘활약’을 보는 주변의 시각이 곱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문수석과 노대통령의 ‘특수한 관계’ 탓에 문수석의 판단이 곧 노대통령의 판단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이 가장 큰 문제다. 취임 초 노대통령은 문수석을 가리켜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믿음이 돈독한 사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갈등의 현장에서 문수석이 제시한 해법이 곧 노대통령의 판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갈등의 당사자들이 문수석을 단순한 중재자 이상으로 받아들이는 이상 그의 적극적 현안 개입이 자칫 노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실제 문수석이 개입해 ‘실시 유보’로 입장을 정리한 NEIS 문제의 경우 그로부터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교육부총리가 ‘전면 실시’로 입장을 바꾸는 등 혼선을 빚어 갈등은 더욱 커졌고 결국 고스란히 노대통령의 부담으로 남고 말았다.
문수석이 각종 정책 현안의 해결사로 떠오른 이유를 청와대 관계자들은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 새 정부는 청와대 직제를 크게 줄였다. 과거 정권에서는 정부 부처에 대응해 정책 분야별로 청와대 수석직을 나눴지만 현정권에서는 기존의 분류 방식을 택하지 않고 수석비서관을 크게 줄였다. 그러다 보니 각종 현안에 대해 누가 대책을 수립하고 갈등을 조정해야 할지가 불분명해졌다. 현안에 대처할 사람이 분명하지 않자 민정수석이 이를 도맡아 해결하는 양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정책실장이나 정책수석실이 장기적 국가정책을 다루는 업무 중심으로 전환한 것도 현안 해결사로 민정수석실의 역할이 커진 원인이 됐다.
둘째로 문수석 특유의 기질이 문제를 더욱 꼬이게 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문수석이 정치인 출신이었다면 이렇게 온갖 문제에 다 나서는 ‘미련한’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수석이 중재자로 나선 현안들은 모두가 이해당사자가 분명한 사안들이다. 어떤 결론을 내더라도 한쪽의 표를 잃을 수밖에 없는 사안들이다. 문수석이 정치인이었다면 표를 잃기 십상인 이런 현안에 뛰어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인 출신 청와대 참모들이 현안에 몸을 사린 것도 이 때문이라는 얘기다.
文수석 본인은 ‘왕수석’ 보도에 크게 신경 안 써
‘정무적 마인드’ 부족은 민정수석실의 인적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민정수석실에는 문수석을 포함해 6명의 비서관이 있다. 이호철 민정1비서관, 박범계 민정2비서관, 이석태 공직기강비서관, 양인석 사정비서관 그리고 황덕남 법무비서관 등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호철 비서관을 제외한 5명이 모두 변호사 출신이다. 법조인 출신의 공통된 코드라면 ‘법과 원칙’이다. 법조인 출신은 아니지만 이호철 비서관 역시 만만찮은 원칙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재야 시절 이비서관은 노대통령이 흔들릴 때마다 원칙을 강조하며 붙들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정치적 융통성보다는 원칙에 따라 판단하고 처리하는 데 익숙한 비서관들이 민정수석실을 장악하다 보니 정무적 판단에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 문수석이 득보다 실이 많은 갈등 중재자로 ‘거리낌 없이’ 나서는 데는 이 같은 민정수석실의 분위기도 적잖이 작용했다는 게 청와대 주변의 견해다.
마지막으로 문수석이 해결사로 떠오른 데는 다른 수석비서관과 보좌관들의 소극적 태도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수석비서관·보좌관회의를 참관한 적이 있는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노대통령이 토론을 중시하는 수평적 리더십의 소유자인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하지만 수석비서관·보좌관회의 초반에는 관료 출신 수석이나 보좌관들은 입을 다물고 대통령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문수석은 그렇지 않았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자신 있게 자기 생각을 얘기했다. 대통령과 회의하면서 자기 주장을 소신대로 펼치는 데 익숙지 않은 관료 출신 수석이나 보좌관들의 눈에는 이런 문수석이 이상하게 보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현안을 두고 대통령과 벌이는 토론에서 분명하게 제 목소리를 내는 비서관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힘과 권한이 쏠리는 것은 당연지사. 문수석이 정권 초기 두드러진 데는 달라진 청와대 토론문화도 한몫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 모두가 노대통령식 토론문화에 익숙해지면서 다른 수석과 보좌관들도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며 “문수석이 현안을 독점해 풀어가는 현상은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수석 본인은 ‘왕수석’이라는 언론 보도에 대해 “나는 왕씨가 아니라 문씨”라며 웃어넘기는 등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문수석의 생각처럼 상황이 여유로운 것만은 아니다.
과거 정권 시절 국정운영이 난조를 보일 때면 대통령은 한두 사람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아들 현철씨를 국가운영의 핵심 파트너로 삼았던 일이 그렇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박지원 전 비서실장에게 지나칠 정도로 의존했던 모습 또한 그렇다. 두 전 대통령은 2인자의 힘에 의지해 난국을 돌파하려 했으나 결국 2인자는 대통령의 족쇄가 되고 말았다.
노대통령은 이 같은 2인자의 병폐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시스템이 나라를 다스리게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의미 있는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난조에 빠지면 결국 국민들만 피곤해진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라고나 할까. 2인자 ‘왕수석’이라는 표현만으로도 국민들이 불안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