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 붐이 다시 일 전망이다. 6월 이후 개봉 예정인 한국 영화들의 면면만 보아도 그 오싹한 기운을 감지할 수 있다. ‘장화홍련’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 ‘거울 속으로’ ‘4인용 식탁’ ‘아카시아’ 등 5편이 올 여름 무더위를 사냥할 복병들이다. 여기에 ‘생령’ ‘강령’ ‘주온’ 같은 일본 공포영화들과 할리우드의 이른바 슬래셔 영화(slasher movie·폭력 부도덕 등을 다루는 공포영화)까지 가세한다면 올 여름 한반도는 그야말로 공포영화의 왕국이 될 터다. 이 틈바구니 속에 좀 이색적인 공포영화 한 편이 끼여 있어 눈길을 끈다. 홍콩 뤄즈량(羅志良) 감독의 ‘이도공간(異度空間)’이 바로 그것.
요즘 홍콩영화는 좀 낯설게 느껴진다. 그만큼 주류권에서 밀려났다는 얘기다. 감독의 이름 역시 낯설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낯설지 않은 이름이 하나 있다. 바로 장국영(張國榮·장궈룽)이라는 ‘그리운’ 이름이다. 그는 4월1일 만우절 날 마치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났고, 이 영화는 그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나는 장국영을 원음 표기인 장궈룽이 아니라 장국영이라고 부를 것을 권한다. 대부분의 한국 팬들이 그를 장국영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나는 ‘이도공간’을 그의 49재 때 열린 시사회에서 보았다. 극장 무대에는 흰 백합이 놓여 있었고, 영화가 끝난 후에는 그의 열혈팬으로 보이는 젊은 관객 수십여명이 눈물을 흘리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한 배우의 영화 바깥의 삶과 죽음이 영화 속 캐릭터의 그것과 하나로 겹쳐지는 미묘한 순간이었다. 조만간 천도재(薦度齋)도 열린다 하니 그에 대한 추모 열기를 짐작할 만하다.
‘이도공간’ 속의 장국영의 캐릭터는 영화 바깥 세상에서의 그의 심란한 삶과 무관치 않아 보였다. 장국영은 극중 캐릭터 짐의 입을 빌려 “지금까지 난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어”라고 고백했고, 그 대사는 그의 자진(自盡·자살)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고 영화는 영화다. ‘이도공간’은 그저 한 편의 영화일 뿐이다. 그러니 애도의 마음을 잠시 접고 영화 속으로 들어가보자. 어느 날 몹시 창백해 보이는 한 처녀가 낡고 허름한 아파트로 이사를 온다. 얀(린자신 분)이라는 여자는 남에게 고백하지 못할 깊은 상처를 가슴에 품고 홀로 더없이 자폐적인 삶을 살아간다. 얀은 자신에게 원혼을 볼 수 있는 신통력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로 인해 그녀는 공포의 나날을 보낸다. 공포를 견디다 못한 얀은 결국 정신과 의사 짐을 찾아간다.
짐(장국영 분)은 촉망받는 젊은 의사다. 그는 소위 헛것을 보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치유책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고, 나름대로 귀신 퇴치법을 터득했다고 믿는다. 요컨대 귀신은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실체가 아니라 단지 사람들의 머릿속에 생겨난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결국 마음을 다스리는 일을 통해 헛것의 미망(迷妄)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판단이다.
치료를 통해 얀의 병세는 호전되어갔고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진다. 그리하여 마침내 완쾌된 얀과 짐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인생역전(?)은 현실보다는 허구 속에서 더 자주 일어나는 법이다. 그러니 섣부른 판단은 뒤로 미루고 끝까지 귀신 얘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도공간’은 우리 식으로 하면 ‘내부공간(inner space)’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자신만의 폐쇄된 공간 속에 숨어 세상과 단절한다는 뜻이다. 2000년 ‘창왕(倉王)’이라는 영화로 데뷔해 홍콩영화의 샛별로 떠오른 뤄즈량 감독은 이처럼 과거의 기억 속에 매달려 내부공간 속으로 움츠러드는 사람들의 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나아가 감독은 그것을 공포 체험으로까지 연결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다. 물론 이 영화는 단순한 공포영화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됐던 ‘성월동화(星月童話)’ ‘색정남녀(色情男女)’ 등과 같은 러브스토리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 출신답게 그의 영화에는 애잔한 멜로물의 향취가 진하게 배어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빛나게 하는 것은 역시 장국영이다.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면서 세계적 스타가 된 그의 내면연기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그저 삼류 공포물로 치부되었을지도 모른다.
요즘 홍콩영화는 좀 낯설게 느껴진다. 그만큼 주류권에서 밀려났다는 얘기다. 감독의 이름 역시 낯설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낯설지 않은 이름이 하나 있다. 바로 장국영(張國榮·장궈룽)이라는 ‘그리운’ 이름이다. 그는 4월1일 만우절 날 마치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났고, 이 영화는 그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나는 장국영을 원음 표기인 장궈룽이 아니라 장국영이라고 부를 것을 권한다. 대부분의 한국 팬들이 그를 장국영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나는 ‘이도공간’을 그의 49재 때 열린 시사회에서 보았다. 극장 무대에는 흰 백합이 놓여 있었고, 영화가 끝난 후에는 그의 열혈팬으로 보이는 젊은 관객 수십여명이 눈물을 흘리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한 배우의 영화 바깥의 삶과 죽음이 영화 속 캐릭터의 그것과 하나로 겹쳐지는 미묘한 순간이었다. 조만간 천도재(薦度齋)도 열린다 하니 그에 대한 추모 열기를 짐작할 만하다.
‘이도공간’ 속의 장국영의 캐릭터는 영화 바깥 세상에서의 그의 심란한 삶과 무관치 않아 보였다. 장국영은 극중 캐릭터 짐의 입을 빌려 “지금까지 난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어”라고 고백했고, 그 대사는 그의 자진(自盡·자살)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고 영화는 영화다. ‘이도공간’은 그저 한 편의 영화일 뿐이다. 그러니 애도의 마음을 잠시 접고 영화 속으로 들어가보자. 어느 날 몹시 창백해 보이는 한 처녀가 낡고 허름한 아파트로 이사를 온다. 얀(린자신 분)이라는 여자는 남에게 고백하지 못할 깊은 상처를 가슴에 품고 홀로 더없이 자폐적인 삶을 살아간다. 얀은 자신에게 원혼을 볼 수 있는 신통력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로 인해 그녀는 공포의 나날을 보낸다. 공포를 견디다 못한 얀은 결국 정신과 의사 짐을 찾아간다.
짐(장국영 분)은 촉망받는 젊은 의사다. 그는 소위 헛것을 보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치유책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고, 나름대로 귀신 퇴치법을 터득했다고 믿는다. 요컨대 귀신은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실체가 아니라 단지 사람들의 머릿속에 생겨난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결국 마음을 다스리는 일을 통해 헛것의 미망(迷妄)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판단이다.
치료를 통해 얀의 병세는 호전되어갔고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진다. 그리하여 마침내 완쾌된 얀과 짐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인생역전(?)은 현실보다는 허구 속에서 더 자주 일어나는 법이다. 그러니 섣부른 판단은 뒤로 미루고 끝까지 귀신 얘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도공간’은 우리 식으로 하면 ‘내부공간(inner space)’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자신만의 폐쇄된 공간 속에 숨어 세상과 단절한다는 뜻이다. 2000년 ‘창왕(倉王)’이라는 영화로 데뷔해 홍콩영화의 샛별로 떠오른 뤄즈량 감독은 이처럼 과거의 기억 속에 매달려 내부공간 속으로 움츠러드는 사람들의 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나아가 감독은 그것을 공포 체험으로까지 연결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다. 물론 이 영화는 단순한 공포영화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됐던 ‘성월동화(星月童話)’ ‘색정남녀(色情男女)’ 등과 같은 러브스토리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 출신답게 그의 영화에는 애잔한 멜로물의 향취가 진하게 배어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빛나게 하는 것은 역시 장국영이다.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면서 세계적 스타가 된 그의 내면연기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그저 삼류 공포물로 치부되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