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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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 분석력 뛰어난 策士 …‘빅3 러브콜’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6-10-16 10: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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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들리지 말고 최선을 다해달라.”2002년 대선을 정확히 11일 앞둔 12월8일 밤, 한나라당 윤여준 의원에게 전화를 건 이회창 후보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했다.

    3월 당내 지도체제 개편 논란 때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주장했다가 보수파 의원들과 당 지도부의 미움을 사서 외곽으로 밀려난 지 근 10개월 만이었다.

    이 후보가 윤 의원을 부른 이유는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 카드 때문이었다. 역습을 당한 이 후보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쳤고, 기존 조직이 마련한 전략·전술은 백약이 무효였다.

    급기야 “책사 윤여준을 불러오라”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던 터라, 결국 이 후보가 윤 의원에게 전화를 건 것. 9회말 투아웃 상황. ‘구원투수’ 윤여준은 상황을 점검한 뒤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대선 후 그 말의 의미를 물었다.

    “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앞뒤가 꽉 막혀 있었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했다. 두 사람의 단일화 시점이 절묘했다. 2주일만 시간이 더 있었어도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책사 윤여준은 2004년 총선 때 다시 당의 부름을 받았다. 탄핵 바람 앞에 속수무책이던 한나라당이 그에게 다시 선대위부본부장직을 맡긴 것이다. 당이 그에게 내린 특명은 ‘개헌 저지선(100석)을 확보하라’는 것. 한나라당은 이 선거에서 121석(비례대표 포함)을 확보했다.

    2004 총선 이후 정치 접어 … “나중 상황은 나도 몰라”

    2004년 총선을 끝으로 윤 전 의원은 정치권을 떠났다. 산으로 들로, 때로는 외국을 돌며 여유를 만끽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여의도연구소장을 제의하고 몇몇 대선주자가 회동을 요청했지만, 그는 응하지 않았다. 한동안 그는 정치권을 떠나 자연인으로 살았고 그 생활에 잘 적응했다.

    그런 윤 전 의원이 다시 정치권의 조명을 받고 있다.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사람들은 대선주자 그룹이다. 특히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이명박 전 서울시장, 손학규 전 경기지사 등 ‘빅3’ 진영이 그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 홍보, 기획 등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을 확보한 빅3 진영은 조직을 이끌 좌장을 찾고 있다. 조직을 대표하는 ‘얼굴’ 역은 현역 의원들이 맡는다지만, 막후에서 선거전략 전반을 책임지고 이끌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현재 이런 역을 수행할 수 있는 인사로 거론되는 사람은 H, S 전 의원 등 3~4명 정도. 그 가운데 윤 전 의원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윤 전 의원은 정치적 판단력과 분석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등 3명의 대통령을 보좌하며 축적한 경륜에서 나오는 대안 제시 능력도 탁월하다. 60대 후반(39년생)으로 정치적 야심이 없는 것도 강점이다.

    빅3 진영의 관심 표명에 대해 윤 전 의원은 “가까운 분들이 좋은 말씀을 기대한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역량이 없다”라고 말한다. 정치를 재개할 생각이 없다는 태도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운을 남긴다.

    “지금 힘을 보탤 생각이 있다 없다라고 말한다는 게 우습다. 당은 아직 그런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 나중에 후보가 정해지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윤 전 의원은 7월 하순 중국의 동북 3성을 돌며 고구려, 발해 유적을 답사했다. 돌아온 즉시 고구려, 발해 관련 책을 샀다.

    9월22일 그는 독도를 방문했다. 공교롭게도 최근 여행지가 모두 주변국과 마찰을 빚고 있는 곳.

    “허허, 가다 보니 그렇게 됐네. 학문적 투쟁도 해야 하고 정부와 시민단체, 그리고 국민이 모두 나서야 해.”

    책사답게 그가 내놓은 응전의 수는 각이 두드러진다. 2007년 그는 과연 다시 돌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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